그렇게 시작된 끝없는 릴레이
치매병동은 처음이라
치매어르신과의 첫 만남이었던 그날,
내가 놀랐던 이유는 어르신 때문이 아니었다.
간병사의 태도 때문이었다. 날 어느 환자분의 보호자로 착각한 듯 친절한 말투였으나 어떻게 환자분이 들을 수도 있는데 그렇게 큰소리로 저 냥반 치매라서 그래요 라는 말을 아무렇게나 할 수 있는지 그 순간 난 무조건 이 병원에 입사를 해야겠다 다짐했다.
그렇게 일주일 뒤 나는 노인전문병원에 입사를 했다.
처음엔 중환자실, 내과병동 엑팅 간호사로 배정받았으나 4일 만에 1층 병동을 새로 open 해야 하니 1층 책임자로 내려가라는 지시를 받고 운명의 1층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일로 나는 일부간호사들의 미움을 사게 되었다. 이미 1년 전부터 1층 강당을 병동으로 만든다는 계획이 있었고, 그래서 기존 간호사들 중에 여러 명이 이 자리를 지원했었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 들어온 지 며칠 되지도 않은 내가 이곳 세팅을 맡게 됐으니)
1층을 맡으면서 제일 처음 내가 한 일은, 간병사들 교육이었다. 이 시간 이후로 절대 어르신들이 들으시는 곳에선 치매라는 단어를 포함한 어르신 상태에 대한 그 어떤 말도 하지 말 것, 수면시간을 제외하고는 모든 어르신들이 나와 활동할 수 있도록 할 것, 화장실 갈 수 있는 어르신은 무조건 화장실에 가서 볼 일 볼 수 있도록 하라는 것 이 3가지는 꼭 지켜 달라고 말이다.
그렇게 1층 병동에서 치매 어르신들과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나마 1층은 어느 정도 인지기능은 좋은 분들이었지만,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심하셨다. 일부 어르신들은 내가 드리는 약조차 거부 하시고, 기존 간병사가 약을 수저에 올려 줘야지만 약을 드셨다. 특히, 그날 화장실에서 마주쳤던 박@@어르신은 2인실에 혼자 계셨는데 (옆에 들어오는 환자마다 다툼이 일어나 혼자 사용 중이셨다) 내가 노크하고 들어가도 대놓고 불쾌해하시며 필요한 거 있음 벨 누를 테니 들어오지 말라며 혈압 측정 및 투약도 다 거부하셨다.
사실 치매어르신은 나도 처음이라 그저 친절하게 대해드리면 될 것이라 생각했으나, 나의 노력에도 어르신들은 쉽사리 내게 맘을 열어 주시지 않았다. 문제는 어르신들이 날 거부하시니 간병사님들에게 내 말발이 먹힐 리가 없었다. 아무리 아침마다 반복 교육해도 여전히 어르신들은 침상에 누워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었고, 화장실을 갈 수 있는 어르신들 조차 밤에는 기저귀를 착용하고 있었다. 어느 날은 라운딩 돌면서 보니 어르신들 입이 다 말라있어 아침에 교육하면서 어르신들이 아침에 일어나시면 수분 섭취부터 할 수 있게 물통을 침상 옆 서랍장 위에다 각각 올려 달라고 이야기하자마자 " 온 지도 얼마 안 된 게 맨날 이래라저래라 지적질이야 내 딸보다도 어린 게 말이지"라며 내 면전에다 두고 이야기하는 간병사님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해서 계단을 오르고 있는데 1층 간호사실 앞쪽에 간병사님들이 다 몰려 있었다. 각자 방으로 들어가 환자분들 보시라고 소리 지르며 다가갔더니, 어르신 한분이 바닥에 쓰러져 경련을 하고 계셨다. 이미 당직의사와 밤 근무 간호사 1명과 조무사 1명이 있는 상태였으나 다들 엉거주춤 구부려 어르신 몸을 만지고만 있었다. 나는 바로 바닥에 앉아 어르신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서 틀니를 제거하고 입에다 에어 웨이를 물렸다.(경련 시 거품처럼 침이 흐르는데, 이걸로 인해 사레들려 질식할 수 있기에 반드시 고개를 옆으로 돌려서 침이 흐르도록 해야 한다. 또한 혀가 말려 들어가 기도를 막을 수도 있기에 서랍자 등을 이용하여 에어웨이로 기도 확보를 용이하게 해야 한다) 그러곤 당직의사를 쳐다보며 "아티반 드릴까요?" 했더니 아까 오더 했는데 혈관을 못 찾아서 아직 주사가 안 들어갔다고 한다.(보통 응급상황엔 근육주사로 주기도 하지만, 굳이 당직의사는 혈관주사로 주자고 한다) 환자 옆에 놓여있던 주사를 들어 바로 혈관을 찾아 수액을 연결하고 안정제 주사를 놓자마자 어르신 경련이 멈췄다. 어르신을 이동 침상으로 병실로 옮긴 뒤 바로 산소 주입을 시작했다. 이 모든 게 내가 도착해서 2분 만에 이루어진 일이다.
이날 이후 간병사님들은 물론이고 모든 직원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쉬는 날이면 날 찾는 보호자, 어르신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은 , 어르신들이 날 거부했던 이유가 내가 내려온 후 간병사님들이 틈만 나면 나 때문에 일이 늘어서 짜증 난다며 내 욕들을 하는 통에 , 어르신들 입장에선 나 때문에 간병사들이 힘들어한다고 생각해서 나는 간병사들 괴롭히는 나쁜 간호사로 찍혔었다고 한다.
그렇게 나는 거의 대부분의 어르신들과 익숙해져 갔지만, 박@@어르신만은 여전히 날 거부 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혈압체크 위해 노크 하고 방에 들어 가자 어김없이 나가라고 소리 지르며 베개를 던지시던 어르신, 얼굴이 상기되어 있고 식은땀을 흘리고 계셨다. 다가가는 내게 침을 뱉고 주먹을 휘두르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가가 " 어르신 불편 하신데 있으세요? 혹시 지금 춥거나 더우세요? "하며 열을 체크하자 열감이 느껴졌다. 침상에 누워야 확인하는데 흥분한 어르신은 좀처럼 내게 당신 몸을 내어 주지 않으신다. 그러다 자꾸 손이 아래로 향하는 게 보여 "어르신 지금 화장실 가고 싶으신 거예요? 화장실 갈까요? " 했으나 계속 나에게 나가라고만 하신다. 이번엔 나도 물러설 수 없어 " 어르신 제가 어르신 볼 수 있게 해 주셔야 해요. 지금 어르신 많이 힘들어 보여요 " 하곤 어르신을 눕혔다. 그러나 연거푸 내게 침을 뱉으시자 간병사가 들어와 어르신 입을 막으려 하길래 " 간병사님은 그냥 나가세요" 하곤 혼자 다시 한번 어르신께 단호한 목소리로 차분하게 설명을 했다. " 박@@ 어르신, 지금 제가 어르신 두고 그냥 나가면 어르신 더 힘드실 거예요. 전 어르신 도와드리고 싶어요. 제가 어르신 살펴볼 수 있게 해 주세요"라고 어르신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이야기하자 그때서야 어르신은 조용히 당신 몸을 내게 맡기셨다. 박어르신은 잡아주거나, 보행보조기의지 하면 걸어서 화장실 이용이 가능하신데도 밤에는 낙상 위험 있다고 기저귀를 채우니, 밤새 자가 소변을 보지 못해 힘들어하셨던 거였다. 단순 도뇨를 통해 소변을 1100ml나 빼낸 후에야 어르신은 안정되셨다. 이후 여전히 날 못 마땅해하시긴 해도 이제는 내가 방에 들어가거나 케어하는 걸 거부하진 않으시게 되었다.
그렇게 내가 1층에서 근무한 지 3주가 지나가던 어느 날, 또 하나의 큰 사건이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