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에 대한 오해
사건의 발단은 이번에도 박@@어르신이었다. 평소에도 자주 당신 물건을 다른 환자들이 가져갔다 하거나, 간병사가 숨겼다며 의심이 많은 분이었는데, 어제 아들이 다녀가면서 주고 간 5만 원이 없어졌다며 병동이 떠나갈 듯 소리를 지르며 흥분한 상태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드님께 전화로 확인하니 5만 원을 주고 가신 건 맞다는 게 확인이 되었다. 그렇다면 어르신 몸에 지니고 있거나,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터인데 당신 물건은 건들지도 못하게 하시니 확인할 방법이 없던 차에 마침 이날 어르신의 목욕날이었다. 어르신 바지 안쪽에 항상 복주머니 같은 게 있는데 보통 돈이나, 반지등을 이 주머니에 보관하셨다. 목욕하면서 자연스레 바지를 탈의할 것을 기대하고 목욕탕으로 모셔 갔으나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어르신이 오늘은 옷을 탈의하지 않고 머리만 감겨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당신은 이번주에 목욕은 하고 싶지 않다며 말이다. 누가 봐도 수상할 일이었다. 그렇게 목욕탕으로 간 나는 어르신과 단둘이 독대를 했다. " 어르신 목욕을 안 하시려고요? 오늘 안 하시면 또 일주일 기다리셔야 하는데 몸이 간지럽지 않으시겠어요?"라고 묻는 날 한참을 보시더니 입을 연 어르신의 한마디 " 내가 오늘은 돈이 없어" 난 무슨 소린가 싶어 계속 캐묻자 " 저이들 이 뚱뚱한 할마시 씻긴다고 땀을 한 바가지 흘릴 텐데.. 오늘은 할 수가 없어. 저 이들 줄 돈이 없으니.."라는 말에 어떻게 된 일인지 알 것 같았다. 난 어르신에게 괜찮으니 오늘은 그냥 목욕하자고 말씀드리고 나와 1층 간병사님들을 다 모이게 했다.
" 어제 혹시 박@@s님 목욕시키신 분? " 아차.. 팀이 교대했지? 싶어 어제 근무자 연락처들 좀 주세요 하고 돌아 서렸는데, 구석진 곳에서 " 뭣 때문에 또 이 난리야? 원래 박@@냥반 맨날 당신이 우리한테 뭐 사다 달라고 줘 놓고 잊어버리고, 또 침대 밑에 숨기고 하는데 아직도 그걸 몰라서 지금 이 난린거야? " 하며 날 나무랏듯 치매환자말만 듣고 지금 이 난리냐며 내게 항의하듯 따지기 시작한다. 그 순간 바로 되받아 상대할 수도 있었지만 이번에도 나는 참았다. 일단 이 일을 해결하는 게 급선무였으니...
그렇게 받은 전화번호로 어제 근무했던, 간병사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침에 퇴근해서 주무시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신호음을 대기하고 있는데 대뜸 전화를 받자마자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 나 오늘 쉬는 날인데 뭐요? " 하신다. 상황을 설명하고 확인차 연락했다고 하니 한동안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있더니 한마디 " 그냥 반 내가 어제 목욕시켜 드렸는데..." 그래서 확인을 했다. 그러고 돈 받으셨어요?라는 내 질문에 한참을 뜸을 들이더니 " 그래 봤자 맨날 그걸로 어르신 간식 사드리고, 반찬 사다 드리고 오히려 내 돈을 더 많이 써요 " 하...
그렇다. 어르신이 유독 도둑망상이 있었던 이유, 사람을 잘 믿지 못했던 이유, 이제야 알 것 만 같았다.
이때까지 공공연하게 박@@어르신을 목욕시키고 나면 5만 원씩, 3만 원씩 돈을 받고 있었던 간병사님들...
어쩐지 어르신 반찬이며 간식을 간병사들이 사 오길래 이상하다 했다. 아무리 이런 것들을 사다 드렸다 쳐도 환자에게 금전적인 걸 받았다는 건 난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바로 간호부장님께 보고 했다.
그렇게 전체 공지가 내려졌다. 절대 환자에게 금품, 물품 받지 않도록, 혹 환자분들이 필요한 게 있다 해도 그건 간호사실에 알려서 보호자에게 전달해서 사 올 수 있도록 할 것!!
다음날 아침, 일부러 일찍 출근해서 간병사님들 교대 전 A, B팀 다 모았다.
"어제 저에게 치매환자 말만 듣고 난리냐고 뭐라 하셨죠? 치매어르신이 잘 잊어버리시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감정까지 잊어버리진 않아요. 툭하면 치매라서 그래, 치매환자가 뭘 알겠어, 치매니까 저런 거지라고 하시죠? 아니요. 치매를 가지신 분이시기에 간병사님들이 더 세심하게 배려하고 보살피셨어야지. 여기서 일하시는 거 어르신들 돌보려고 계시는 거지 않나요? 앞으로 제가 있는 한 어르신에 관해선 그 모든 것들을 저한테 먼저 이야기해 주세요. 만약 저는 모르는 일인데 이번처럼 일이 터지면 그 일은 간병사님들이 직접 책임지셔야 할 거예요. 선생님들이 어르신들 책임질 수 있으세요? 없으시잖아요. 책임은 제가 질 테니, 대신에 이제부턴 협조들 해주세요. "라는 내 말에 이번엔 다들 아무 말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박@@어르신에겐 간병사님께 도로 5만 원을 받아 돌려드렸다. 그러곤 앞으로 목욕해도 돈 안 주셔도 된다, 아드님이 이미 여기 계실 동안 목욕비 다 지불하셨으니 맘 편히 목욕하시면 된다고 설명드렸다. 그러자 갑자기 안색이 안 좋아지시는 어르신... 그러곤 " 그것들이 이젠 내 용돈도 안 주려고 그랬나 보지? 아들새끼들 키워 봐야 소용이 없어. 마누라 치마폭에만 둘러 쌓여서 흐이그.. 한심한 것들..." 하시며 갑자기 우시기 시작했다.
한참을 우시던 어르신 당신 이야기를 하신다. 남편을 30대에 사고로 먼저 보내고 혼자서 한복재단 일을 하면서 아들 둘은 남부럽지 않게 키웠냈다고, 그런데 막상 아들들을 장가보내고 나니 너무 외로웠다고, 며느리들도 무뚝뚝해서 전화 한번 안 한다고.. 그래놓고 지들 필요할 때 야금야금 내 돈만 노리더니 내 집도 지들 맘대로 팔아 버리고 난 이제 갈 집도 없는데, 여기서 이렇게 외롭게 죽어야 하는데, 이젠 용돈도 내 맘대로 못 쓰니 이젠 무슨 낙으로 사냐고 말씀하신다.
그랬다. 목욕 후에 그 몇만 원은 어르신의 자존심과 같은 것이었다. 그렇다고 계속 간병사님들에게 돈을 지불하게 할 수는 없고, 고민 끝에 어르신께 하고 싶은 게 있으시냐 물었다. 그랬더니 뭔가를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싶다는 어르신, 한복재단을 하셨으니 혹시 뜨개질 같은 것도 하시냐 물었더니 너무 좋아하신다. 그렇게 아드님과도 의논하고 통화 끝에 색색 별로 실들과 코바늘, 톳바늘을 사 오시도록 했다.
그 뒤 어르신은 틈틈이 수세미를 만드셔서 당신이 고마울 때마다 그 수세미를 하나씩 선물하시며 병원 생활에 활기도 찾으시고, 아드님한테 서운했던 감정들도 조금씩 내려놓기 시작하셨다.
뭣보다 늘 의심하며 뭔가가 없어졌다던 어르신의 도둑망상이 사라졌다. 라운딩 하던 어느날, 어르신 방에서 급하게 날 찾으셔서 들어갔더니 코바늘로 만드신 핸드폰 가방을 선물하시면서 " 서 선생~ 내 딸 하자.."라고 하셨다. 그렇게 난 어르신의 양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