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태어날 때부터 불덩이로 태어났다. 핏기 어린 불덩이인 나를 받아 올리던 의사의 손길에는 갓 태어난 생명이 뿜어내는 뜨거운 숨과 열기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이라도 해내듯, 타오르는 작은 불꽃 하나가 이 세상에 켜졌다. 갓 태어난 모든 생명들이 그러하듯 아직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상태로 나는 부모님 손에 받아졌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들고 있는 존재가 훗날 어떤 사람이 될지 모른 채 그저 받아 올린 손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감촉만을 느낄 뿐이었다.
그래서였는지 나는 어릴 적부터 화가 많았다. 천성적인 예민함으로 부모님께 짜증도 많이 부렸고, 학교 선생님들의 머릿속엔 말 한마디에 꼬치꼬치 캐묻길 잘하는 학생으로 기억되어 있을 것이다. 하는 행동마다 썩 유쾌하진 않은 존재였다. 나는 내가 악마라고 생각했다. 지금껏 여러 사람을 힘들게 했는데, 그중 가장 큰 피해자는 당연히 옆에 있던 부모님이었다. 내가 쏘아 올린 불씨 하나로 인해 막을 수 없이 번져가는 불길 속에서 어머니의 마음은 화상 자국들로 가득했다. 나는 언제 다시 화력이 커질지 모르는 재난과도 같았고, 내가 폭발할수록 나는 점점 밝은 세상과 멀어져 갔다. 스쳐 지나갈 작은 것들에도 어김없이 지적하며 상대를 쏘아붙이는 나 자신이 싫었다. 무언가 잘못되어감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지만, 태생적인 나의 근원 앞에 나는 매번 좌절되었다.
내 안에 끓어오르는 분노라는 재앙은 한번 폭발하면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을 연쇄적으로 폭파시켰고, 그 거대한 화염의 크기는 모든 것을 재로 만든 후에야 비로소 사그라들었다. 나는 스스로 재앙이 되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괴로웠고, 점점 방문을 열고 세상에 나가는 것이 두려워졌다. 그 당시 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기피하면서도 어린 마음에 사람 간의 온기를 무척 그리워하며 살아갔다. 한마디로 내 어린 시절은 혼란과 번뇌 그 자체였다. 그 후 오랜 시간이 지나 혼자 있음이 더 이상 어색하지 않은 나이가 되었을 무렵에 나는 어두운 방 안에 놓인 책상에 앉아 가만히 생각했다. 덮어두었던 어린 날의 내 모습을. 나는 이제 조용히 타오르는 촛불이었다.
문득 한참 동안 고요하던 내 눈동자가 일렁였다. 나는 눈을 감고서 고등학생 시절을 떠올렸다. 그날도 어김없이 별것도 아닌 일로 부모님께 화를 내고서 무작정 밖으로 향했다. 씩씩거리며 걷다 보니 집 앞 공원이었고, 나는 아무도 없는 정자에 털썩 주저앉아 화를 삭이고 있었다. 그리고 한참 만에 고개를 들어보니 구름 한점 없는 파란 하늘 가운데로 눈부시게 내리쬐는 태양이 보였다. 그 순간, 내 안에서 원인 모를 서글픔이 차올랐다. 나는 알 수 있었다. 내 머리 위로 타오르는 태양과 나의 근간이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우린 모두 태초에 조그마한 불씨에 불과했다. 그러나 어느새 우리가 변화된 모습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처음으로 간절히, 또 간절히 바랐다. 부디, 내가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용암이 아닌 세상을 따사로이 비추는 태양빛이었으면. 빨랫줄에 걸린 축축한 옷가지들을 기분 좋은 쾌적함으로 말려주는 맑은 날의 햇볕이었으면. 밝은 태양 아래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람들이 이웃과 나누는 첫인사가 화창한 날씨 이야기로 정다운 안부 인사가 오갈 수 있는 햇빛이었으면. 아무런 빛도 스며들지 않는 어두운 방안까지 언제나의 아침이면 밝은 햇빛을 비추는 태양이었으면. 내가, 당신의 어두운 마음까지 스며드는 은은한 불빛과도 같은 사람이었으면. 그래서, 그 모든 따뜻함에 감화되어 당신을 괴롭히던 모든 아픔들이 눈 녹듯 녹아내린다면 나는 내 존재의 이유를 그제야 깨닫게 되리라. 내가 이 세상에 불꽃으로 태어난 이유를.
그리하여 당연한 따스함으로 언제나 당신 주위를 맴돌다 어느 평범한 저녁에, 온 힘을 다해 마지막 불꽃을 발하며 뜨겁게 인사하고 싶다. 저 멀리 서서히 저물어가는 석양처럼 당신의 마음에 잔잔한 여운으로 남고 싶다·······. 나는 천천히 눈을 뜨고서 방안의 전구를 켰다. 내가 해야 할 일이 남았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