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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영 Mar 22. 2024

연구를 꼭 해야 하는 이유

2013년 10월 기록

친구와 다투다 턱을 맞은 이후로 일주일 내내 심한 두통에 시달리던 14살 남자아이가 입원했다.


그런데 입원해서 진행한 MRI 검사에서 brain tumor가 발견되었고, 다음 날 수술을 받았다. 친구와 다퉈서 생긴 두통이라고만 생각했던 가족들은 생각지도 못했던 진단에 충격을 적잖이 받았다. 아이도 그러했으리라.


수술 후에 방을 옮기면서 아이를 담당하게 되었는데, 밝은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말수가 적고 조용한 모습이 항상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아이 방에 가면 옆에 앉아서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친구들과 놀 때 무얼 하는지,

무얼 먹고 싶은지,

야구는 좋아하는지,

어느 팀을 좋아하는지.

삼성 야구팀을 좋아한다고 했고,

사골만둣국이 먹고 싶다고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수술받은 오른쪽 얼굴이 아닌, 왼쪽 얼굴이 더 부어 있길래 부은 얼굴이 아픈지 물었다. 지난밤 욱신거렸다고 답했다. 그래서 10점 만점에 몇 점 정도냐고 물었더니, 8-9점 정도로 아팠다고 했다. 언제부터 아팠느냐는 질문에는 수술을 받기 훨씬 전부터, 집에서부터 아팠다고 했다.


옆에 계시던 엄마가 깜짝 놀라며 왜 그전에 말하지 않았느냐고 하셨다. 그러자 아이는 예전부터 말했었다며 조용히 답했다.


그 말을 들은 엄마는 한숨을 내쉬며 내게 말씀하신다. 집에 치매 증상이 있으신 할머니가 계신 터라 아이들은 2순위였다고. 그래서 아이가 아픈 줄도 모르고 할머님 돌보는데 정신이 팔려있었다고.


아이에게 그랬다. 병원에서는, 그리고 나는 네가 지금 어떤 기분인지, 오늘은 무얼 가장 먹고 싶은지, 불편한 곳은 없는지, 항상 그리고 매 순간 궁금하고 신경 쓰고 있다고. 그러니 무엇이든 다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네게 이만큼이나 관심이 많으니,

꼭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네 곁에 있는 엄마에게도 꼭 알려달라고 했다.


아이는 그제야 수줍게 웃으며 알겠다고 했다. 이후로는 지나가다 눈만 마주쳐도 아이가 먼저 웃으며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랬는데.

그랬는데.

수술하면서 나갔던 Pathology 결과가 나왔다.


Glioma 란다.

그것도 빠르게 진행 중이라고 한다.


학회로 부재중이신 교수님이 돌아오시면 직접 말씀해 주실 부분이라서 레지던트도, 우리도 아직 가족들에게는 전달하지 못했다.


나는 또 속상하다.

많이.


그리고 오늘도 다짐한다. 암 진단을 받은 환아들과 그 가족들을 위한 연구를 꼭 할 거라고.


/ 간호사 김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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