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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상쓰기

분노 속 질서

by 안태현

마태복음 제2장에는 동방박사들로부터 아기 예수 탄생의 예언을 들은 헤롯왕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두 살 아래의 사내아이들을 죽였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 과정에서 마리아는 요셉의 뒤숭숭한 꿈을 따라 아기 예수와 함께 애굽으로 피신하며 다행히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아기 예수의 입장에서는 다행인 일이었지만, 그 화를 피할 수 없었던 다른 두 살 아래의 사내아이들에게는 전혀 다행일 수 없었다.


이것이 실제 있었던 일이냐 아니냐에 대해서 논하려고 한 많은 도전들이 존재했다. 2024년 전 일이라 증거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사실이 아니라고 하기에는, UFO의 존재를 주장하던 파파기아니스처럼 "증거의 부재는 부재의 증거가 되지 않는다"라고 말해버리는 이들이 존재해 입을 탁 막히게 만드는 거다.


이에 '코스모스'의 저자로 유명한 칼 세이건은 이른바 '내 차고 안의 용'이라는 유명한 비유를 칼로 들고 나왔다. 차고 안에 용이 산다고 주장하는 이에게 계속해서 용의 부재 증거를 들이민다고 하여도 그 사람은 끊임없이 또 다른 핑계들을 대면서 용이 존재한다고 주장할 것이라는 비유였다.


이는 "증거의 부재는 부재의 증거가 되지 않는다"라는 칼날을 오히려 뒤집으면서 "부재를 증할 증거가 부재한다고 그것이 실재의 증거가 되지 않는다"라고 얘기한 것이었고, 그러면서 칼 세이건은 증거가 없다면 어떠한 것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판단을 보류하고 "장래에 물리적 데이터가 쌓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현명한 접근법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판단법 덕분에 칼 세이건은 여전히 유명한 신의 존재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 불가지론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히고 있다.


우리가 겪어온 역사 속에서 사회적 혼란은 무엇인가가 부재하거나 사회가 합의한 정의가 부정당할 때 발생했다. 그리고 사회적 혼란이 지속되면 혼돈이 왔다. 혼돈을 한자 뜻 그대로 풀이하자면 '질서 없이 마구 뒤섞여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상태'다.


'혼란'을 막기 위해서는 질서가 필요했다. 법치국가에서는 법이 곧 질서였다. 하지만 법에 명시되지 않은 일들이 벌어질 때가 있다. 정확히 법에 '금한다'라고 적혀있지 않은 일이 벌어졌을 때, 우리는 사회적인 논의 과정에 돌입한다. 과연 '이것이 잘못된 일인가, 잘못되지 않은 일인가'에 대한 지루한 논의 속에서 사회는 발전하거나, 논의 속 혼돈에 파묻혀 퇴보했다.


그렇다면 이 경우에도 우리는 칼 세이건의 현명한 접근법을 사용해야 할까. "무엇이 잘못됐다는 것에 대한 항목이 없다면 미래의 데이터가 쌓일 때까지 기다리자"라고 얘기해야 할까.


단호하게 말하자면 '아니다'다. 칼 세이건과 같은 판단 유보는 '존재에 대한 증명'에만 한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판단 유보를 할 만큼 태평하지 않다. 재빨리 구성원들의 논의가 실시되고 '현 상황에 맞게끔 시의적절한 판단'이 필요하다. 혼란을 막겠다고 판단을 유보하는 순간 더 큰 혼돈이 오는 것을 우리는 오랜 시간의 역사 속에서 목격해 왔다.


사회는 '존재에 대한 증명'처럼 어떠한 '100%'의 수치를 향해 가는 게 아니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가 초기 형태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저 먼 미지의 어떠한 형태로 계속 진화하고 있는 것처럼 사회 역시 끊임없이 변화한다. 'OOO은 98% 사람입니다'라는 말이 어색하듯 '지금의 사회는 100% 맞지 않는 사회'라는 표현도 맞지 않다.


사회가 부재했던 적은 없다. 그냥 늘 다른 형태였으며, 그저 변화하고 있는 것뿐이었다. 그런 사회 속에는 합리적인 일도 있고 불합리한 일들도 있다. 정의로운 사람도 있었다면, 정의롭지 않은 사건들도 등장했다. 그럴 때 이 사회의 방향성을 선택한 것은 사회 외부에 있는 어떤 미지의 존재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이었다. 불합리한 일이 있다면 마땅히 그것을 고쳐나갔고, 부정한 일이 있다면 응당한 꾸짖음이 있었다.


지난 몇 년 우리는 수많은 분노들을 목격했다. 한 개인이 사회를 향해 내질렀던 분노와, 다수가 한 개인에게 향했던 분노, 다수가 또 다른 다수와 싸우며 냈던 분노들. 그 분노 중 어느 것이 옳다고는 말할 수 없더라도, '무엇이 잘못됐기에 분노했다'라는 것은 우리 모두가 명확하게 알고 있었던 날들이었다고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렇기에 그 과정에서 사회의 구성원들은 명확하게 목격했던 '잘못된 것'들을 피하지 않아야 했고, 명확하게 보이는 '잘못될 것'들을 피해야 했다. 이러한 경우에도 어떠한 이들은 말했다. '분노하지 말라. 짐짓 차분해 보이는 어떠한 이에게 분노로 다가가는 건 장작을 너무 넣어버린 아궁이 꼴이다, 결국 타는 건 내 집 장판 밖에 없다"라고.


하지만 우리는 과연 분노의 광기에만 사로잡혀 있는가. 차가운 이성의 날카로운 칼날을 꺼내든 수많은 구성원들이 운이 좋게도 우리 사회에는 너무나 많다. 물론 그들이 나와 같은 뜻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건 과거에도 수많은 분노와 이성들이 한 데 엮여 사회는 지금처럼 변화해 왔다는 것이다.


지난 토요일 밤, 뉴스를 보던 나는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직접 쓰레기를 정리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전혀 혼란스럽지 않았다. 분명 분노의 감정이 뒤섞인 목소리들이었지만 군중 속에서는 질서가 지켜지고 있었다. 어디선가는 혼란이 온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어디선가는 이미 질서를 지키며 사회를 지탱하고 있었다. 사회는 그렇게 또 형태를 바꾸고 있었다. 그게 옳은 방향이든, 옳지 않은 방향이든 초침과 분침, 시침은 바쁘게 움직이며 나아갔다.


사회주의자였던 버트런트 러셀도 에세이 '사회주의를 위한 변명'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나는 어떤 주어에도 술어에도 나만의 해석을 덧붙이지 않겠지만 그냥 이렇게 말한다. "민주주의의 약점이 어떤 것이든, 사회주의가 영국이나 미국에서 성공하기를 희망할 수 있으려면 오직 민주주의에 의해, 또한 대중의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할 때만 가능하다. 고의든 아니든, 민주적 정부에 대한 존경심을 약화시키는 자는 사회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닌 파시즘의 가능성만을 높여 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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