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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상쓰기

추억이라는 냄새

by 안태현

요즘은 지하철에서 가판대 신문을 찾아보기 힘든 시대가 됐다. 전봇대에 철사로 보관함을 묶어두고 '아무나 가져가세요'라고 배포하던 벼룩시장도 구시대의 유물처럼 쉽게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어쨌든 종이의 시대에서 스크린의 시대로 변화한 지금이기에, 흐름에는 순응해야 하지만 가끔씩 그것들이 존재하던 시기가 그립다는 생각을 문득 하곤 한다.


여전히 내가 전자책을 거부하고 종이책을 끌어안고 사는 이유도 맥락을 같이 한다. 아무리 종이를 넘기는 질감과 비슷하다고 하더라도 새책을 펼칠 때의 잉크 냄새와 오래된 책을 펼칠 때의 쿰쿰한 먼지 냄새를 구현하는 건 없다고 생각한다. 두꺼운 책을 읽을 때면 손목이 아파오고, 가끔씩 빠르게 책장을 넘기다가 검지 손가락의 끝단이 베이는 사고가 일어나기는 하지만 그 역시 종이책의 묘미다.


다만 이 책들이 쌓이고 쌓여 사는 곳의 공간을 위협해 오는 때도 있다. 예전에는 어느 정도 모인 책들을 중고서점에 팔기도 했다만, 어느 순간 '그때 그 문장이 뭐였지?'라는 물음표를 채워줄 수 없다는 이유로 중단했다. 덕분에 얼마 전 서브로 마련해 뒀던 책장까지 가득 찼을 때는, 그냥 그 옆에다 책으로 산을 쌓아야겠다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스무 살의 내 자취방 풍경도 비슷했다. 책장도 없이 책들을 쌓아둔 벽면은 마치 태백산맥을 형상화하듯 우아한 분위기를 만들어냈었다. 물론 그때의 몇몇 책들은 어느 날 자다가 쏟아버린 자리끼의 침범으로 영영 만날 수 없는 처지가 되기도 했다.


얼마 전, 고향에 내려갔다가 서울에 가져오지 못했던 몇몇 책들을 골라 캐리어에 넣어왔다. 내 방은 이미 치워진 지 오래였기에 그 책들은 옥상 한편의 박스들에 차곡차곡 들어가 있었다. 스물다섯 살까지였나. 책을 다 읽고 나면 맨 앞 장에 나의 감상문을 써놓기도 했는데, 가지고 온 책들의 앞 장에도 착실하게 내가 써두었던 치기 어린 문장들이 있었다. 지깟게 뭐라고 평가 아닌 평가를 써둔 것도 있었는데, 읽다가 얼굴이 빨개지기도 했다.


지금은 책을 읽어도 따로 감상문을 쓰지 않는 편이다. 워낙 중구난방으로 책을 읽는 편이기도 하고, 써두었다가 괜히 누가 내 책을 빌려갔다가 그 문장들을 읽기라도 하는 경우에는 부끄러움이 치사량까지 올라갈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감상은 정제되지 않은 언어들로 쓰인 것들이 많았기에 그런 걸 누군가에게 내보인다는 건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다.


그래도 가끔은 그때의 버릇을 살려서 포스트잇에 짤막한 감상을 남겨서 책 앞장에 붙여놓기도 했다. 그건 누군가에게 빌려주기 전에 떼어버리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순간에는 그만두게 됐다. 스마트폰 메모장에 그냥 짤막하게 내 머릿속 생각을 적어두는 걸로 버릇이 바뀐 때부터였다. 편했고, 언젠가 그 메모를 열어보더라도 수정하기가 용이했다.


지난밤에도 다 읽은 책에 대한 메모를 마치고, 그동안 써두었던 메모장들의 문장을 다듬었다. '이 문장은 다음에 어떤 글에다 써먹어도 되겠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문장도 더러 있었다. 그래서 혹시 몰라 치기 어린 시기에 썼던 저 문장들이 적힌 오래된 책의 앞장들도 굳이 뜯지 않고 뒀다.


항상 그랬다. 그리워서 꺼내보거나 '그런 게 있었지'라는 생각을 할 때. 당시에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유의미한 것들이 있다. 굳이 구인구직을 볼 필요도 없는데 '벼룩시장'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있다 없으니깐 허전한 것들. 그래서 여전히 책들을 처분하지 않고 끌어안고 산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도 될 것들을 굳이 사서 읽는 이유도 그것들을 보내기 싫다는 아집 때문일 터다.


그래서 한 번씩 길을 가다가 지하철 매점에서 가판대에 신문을 팔고 있으면 하나씩 사서 읽어보고는 한다. 비릿한 잉크 냄새와 기름 냄새가 어우러져서 머리가 아찔해지기도 하지만 그걸 굳이 옆구리에 끼우고 걷다 보면, 잃어버린 언젠가의 시대를 부여잡고 있다는 낭만을 느낀다. 대학 시절 영화 잡지들을 늘 옆구리에 끼고 걸었던 순간들을 떠올리기도 한다. 그러면서 '난 여전히 추억을 갉아먹고 살고 있구나' 한다.


오늘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가판대에 놓인 신문 하나를 샀다. 옆구리에 꽂고 집으로 돌아와 펼쳐보니 옛날 그대로의 냄새다. '혹시 십자말풀이도 있나?' 싶어 찾아봤지만 없었다. 그대로 신문의 활자 몇 자를 읽다가 저 옆으로 치웠다. 추억은 있었지만 감흥은 없었다. 아련하게 저 멀리서 풍기는 신문 냄새를 맡으며, 괜스레 내가 남겨뒀던 책 앞장들의 메모들을 다시 뒤적였다. 그러면서 '어쩌면 이건 애처로움의 냄새가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그 덕일까. 유난히 책장에 꽂힌 책들이 슬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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