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인민군이, 며칠있다가는 국군이 와서 와서 자기네 쌀을 빻아달라고
한국전쟁(1950년)
조만간 난리가 날거라는 소문을 오빠들이 들었거든. 조만간 인민군이 쳐들어온다고 하니까 전주 노송동이라는 데에 산 위에 피난갈 집을 지었어. 방 한 칸에 부엌 하나씩 여섯 개의 방이 있는 집을 지었어. 쌀이랑 가재도구를 우마차랑 트럭으로 전부 실어 날랐어. 그러고는 미리 집을 지으면서 둘째오빠가 현미를 까놔야 벌레 안 먹는다고 해서 백가마니를 그렇게 만들어서 창고에 저장해놨어. 그걸 갖다가 노송동 집에다가 쌓아놨어. 다 찧어서 쌀을 만들어서 밥을 해먹고 각자 방으로 들어가는 거야. 전쟁 때도 밥걱정은 안했지. 넷째 오빠는 한양대를 다니다가 한강 끊어지기 직전에 뛰어서 한강을 건넜는데 담요하나가지고 나와 걸어서 전주를 왔어.
나머지 가족들은 그렇게 피난갈 집에 보내놓고 머슴들도 다 보내버리고 아버지, 엄마만 전주방앗간에 남아 있었는데 인민군이 와서 저희들이 쌀이랑 곡식 볶아갖고 온 것을 가지고와서 빻아달라고 했대. 그래서 빻아주고...또 하루는 개 한마리를 기르는데 거멍이라는 애야. 아 인민군이 어디서 총을 가져오더니 무릎을 딱 꿇더니 개를 겨냥하잖아. 할아버지가 속상하다고..내가 이렇게 멕여서 키운 개를 니놈들 아가리에 넣겠냐 안 된다. 굴을 깊게 파가지고 개를 짚어 넣으려고 했었지. 그냥. 전쟁 내내 학교도 못나가지. 그런데 인민군들이 소집을 해서 갔지. 아침은 빛나라 이 강산, 이북애국가를 가르쳐주잖아.
전쟁 끝나고는 그때는 또 어떤 걱정이 생겼나하면 외갓집할머니 동생되는 분이 경찰이었어. 군수관사 옆에 살았거든. 중앙동 복판에 살았는데 그 근처 군수관사 마당에 굴을 파서 사람들을 총을 난사해서 죽였어. 인민군들이 젊은 사람들을 굴에다 놓고 막기 전에 따발총을 따다다닥 쐈어. 쏘니까 정통으로 맞은 사람은 다 죽고, 안쪽에 있던 사람은 살아서 나오고. 사람들이 피투성이로 누워있지. 시신이 20구도 넘을 거야. 시체를 전부다 꺼내가지고 가마니만 덮어놨는데 몸에 빵구도 나고. 파리가 얼마나 많은지. 그 시체냄새. 상하는 냄새. 열어보고 자기식구가 아니면 두고 식구면 찾아가고. 그렇게 해가지고서는 시신들을 전부 찾아갔잖아. 빨치산 갔다가 나와서 다락방에 숨어계시다 없어진 우리 외삼촌 거기 있나 살짝 열어봤는데 안 계시더라고.
경찰관이 인민군을 하나 잡았어. 소를 잡아먹고 어떻게 했냐 했더니 소를 잡아먹고 가죽을 땅에 묻어놨대. 그때가 7월인데 파니까 썩는 냄새가 나더라구.
아버지의 죽음(1951년)
우리 집 앞에 농협창고가 하나있었어. 그 창고에 설탕, 실, 애들 학용품, 우리가 필요한 물건들이 있어서 갖다가 썼어. 경찰관이 또 나를 부르네. 그래서 벌벌벌 떨면서 또 갔어. 가서 불으라는 거야. 빨치산이 공공물건 뭐뭐 갖다 썼냐고. 설탕 조금하고 연필, 실 조금 가져오고 그것밖에 모른다고 했더니 무릎을 꿇게 하더니 뺨을 때려. 그러다 보내주더라고. 밤중에 왔지. 나중에 국군이 수복하니까 경찰관이 와서 인민군한테 뭐해줬냐 하길래 미숫가루를 빻아줬다고 하니까 아버지를 잡아가네. 셋째 오빠를 영창에 가두고 영감이 뭣을 안다고 그러냐고 엄마가 울고 나도 울고. 유치장에 가서 매를 실컷 맞고 오셨어야. 일흔 먹은 노인이 경찰서에 가서 매를 맞고 왔잖아. 관절을 막 차고, 주리를 틀고, 고문을 한거야. 내가 열여섯살인가 되니까 나를 불렀지. 설탕 좀 가지고 연필내가 쓸려고 가져오고 플라스틱 대야, 정도 가져왔다고 했더니. 허벅지를 밟더라고. 그래서 가라고 해서 왔어. 할아버지는 그 후로 시름시름 앓으시는거야. 일흔 두세살인데. 음력1.9.. 교장선생님을 오시라고 했어. 요셉이라고 대세를 받고.
인민군들어왔다가 맥아더 장군이 인천상륙작전할때야. 삐라가 수북이 떨어졌어. 인천으로 들어갔다고. 인민군들이 왔을 때는 학교에서 이북애국가를 가르쳐주더니, 또 인민군들이 없어지니까 우리나라 호국단이 생겼어. 학생들이 등교를 하니 호국단을 만들래. 내가 그때 중대장을 했지. 우향 앞으로가, 좌향 앞으로 가, 그런 걸 하고. 생물, 국어. 개구리 실험 같은거 잘하고. (싫어했던 과목은) 수학. 수학이 그렇게 어렵더라고. 우리를 누가 이르거나 고아 바치거나 하지는 않았지. 우리 가족은 인심을 잃지 않았지. 무사하게 전쟁을 넘기고 복구가 됐지. 예전과 같이 장사도 잘하고 방아도 잘 찧고.
어머니의 죽음(1951년)
우리 어머니 이름은 김동수.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니 가금 영감 영감 하고 울면서 묘소를 찾아가시고. 그러다가 장티푸스가 왔어. 엄마가 아프시니 앵두나무가 옆에 있는 내 방에 모셔다 놓았어. 그때 같이 장티푸스에 걸렸던 넷째 삼촌하고 같은 방에 격리수용을 한 거야. 아무래도 한 집에서 두 명이 앓게 되니. 나중에는 풍남동 셋째 오빠네 집으로 넷째삼촌을 보냈지. 엄마는 한 달 정도 앓으셨나봐. 약을 암만 써도 안 들어. 병원도 가고 한약방도 가고 했어.
중학교 다닐 때인데 가방 들고 나가려고 하는데. 가방을 놓고서는 엄마, 나 학교 갔다올라 그래, 하는데 가만히 계시는 거야. 갔다 오라 소리도 않고 가지 마라 소리도 않고. 가방을 놔두고 조금 기다리고 있는데 아무래도 숨소리가 이상하신거야. 그때 강경언니도 와서 계셨거든. 언니, 엄마가 이상해. 빨리 와봐. 했는데. 언니하고 나하고 봤다니까. 그냥 주무시듯이 돌아가셨다니까. 아이고 아이고 언니가 우는 거야. 나도 개평으로 같이 울었지 뭐. 중학교 3학년 때야. 머리맡에 있는 생수를 따라서 세례를 해드렸어. 엄마가 세례를 받으려고 교리를 받으시던 중에 아프셨던 거거든. 엄마 돌아가실 때 나이가 64세였네.
아버지 돌아가신지 석 달 됐는데 또 부고장 내기가 그렇다고 가까운 사람들만 알리자고 했어. 우편으로 해가지고 아는 집마다 보내는 거야. 장례미사는 성당에 모시고 가서 크게 했어. "나 언제 영세 받니, 나 언제 영세받니" 하다 돌아가신 거니까. 예비신자여도 장례미사를 해주셨어. 아버지 모신 묏자리 그 옆에 모셨어.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는 성심여고 교장선생님이 오셔가지고 대세를 주셨었지.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에는 학교 갔다와도 집에 오기가 싫었어. 육수녀(친구)집으로 많이 갔어. 거기 가서 밥도 먹고 놀기도 하고. 그때 왜 쌀 한 됫박 왜 안 갖다 드렸나 몰라. (정미소집 딸이 남의 집 가서 밥 얻어먹었네) 그러게. 그래서 내가 육수녀 이번에 휴가 나왔을 때 밥을 샀지.
수녀원에 가고 싶었던 여학생
이듬해 전주 성심여고에 들어갔어. 사범학교 원서쓰려고 하니까 선생님이 원서를 안 써줘. 키도 작고 인물이 별로라고. 19살 때 멘스가 있으면서부터 키가 안 크더라. 그래서 사범학교는 원서를 못 썼어. 조카들한테 선생노릇은 했지. 조카들도 다 내가 다 한글 가르치고 그랬거든.
비가 오려고 하면 올케 언니들이 피곤하니까 들어가서 자. 그러면 나는 밭에서 부추, 배추 이런 것들을 뜯어오거든. 부침개를 부쳐서 일꾼들방에도 한 바구니, 작은 올케 방에도 한 바구니, 조카들 방에도 한 바구니 넣어놔. 저녁때 다 빈 바구니로 나와. 나중에 시집가기로 정한 다음에 오빠가 ‘이제 우리 집에 부치개 누가 해주나’ 하면서 우시더라. 나는 오빠들한테나 올케들한테나 속상하게 하지 않았어. 사랑받을 짓을 내가 스스로 했어. 시집가면 잘 살 거라고 그랬어.
언젠가는 도둑이 왔어. 우리 조카가 공부를 하다가 화장실에 가려고 하는데 그림자가 휙 지나가드래. 야구 방망이 절구를 들고 조카들이 다 나섰어. 누구야!! 하고 쫓아가는데. 쌀이 많으니까. 가지러 온거지.
수녀님들이 내가 교리공부도 잘하고, 학급에서 4등 정도 하니까 나를 예쁘게 보고 수녀원에 가라고 하시는 거야. 그래서 나도 수녀원에 가야겠다해서 오빠들한테 말했더니 수녀원은 안 된다. 오빠들이 절대 반대를 해. 수녀원이라는 데가 한번 들어가면 못나오는 데 아니냐, 끝까지 성공하지 않으려면 폐인처럼 되면 어떡하냐. 그런 걱정을 하신거야. 그래가지고서. 언니도 나한테 뭣 하러 수녀원 가려고 하냐 좋은 사람 있으면 시집을 가라. 막내딸을 엄마 없어도 결혼 시켜야 된다는 책임감이랄까. 오빠들이 그런 생각을 했겠지.
고등학교 졸업하고 결혼할 때까지는 넷째 오빠네 집에 가서 올케 살림 도와줬지. 1년동안 유치원 교사 생활도 하고. (월급 같은거도 줘요?) 옷 같은거 올케언니가 해주면 입고, 성당에 나가고 하는 거지. (짝사랑했던 사람은 없었나요?) 그런 것은 전혀 몰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