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나라를 들고 온 테이블

포트락 파티와 눈물

by 사이의 삶

서툰 영어를 배우러 모인 ESL 교실.

그곳에서 만난 인연들이 우리 집 거실에 모였다.


멕시코와 쿠바의 정열, 프랑스의 우아함, 일본의 단정함,

한국인인 우리까지

다섯 나라의 문화가 한 테이블에 놓였다.



각자의 나라에서 가져온 술과 음식이 식탁 위에 올랐다.

멕시코의 테킬라, 프랑스의 와인, 일본의 사케 그리고 한국의 소주.

잔은 각자의 언어로 부딪혔고,

우리의 웃음은 끊이지 않았다.


흥미로운 건 남편들이었다.

서로의 말이 100프로 통한건 아니겠지만,

타지에서 일하며 가족을 부양한다는 공통점 앞에서는

문법이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서로의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이 자주 겹쳤다.


하지만 그날 밤,

가장 오래 남은 장면은

식탁 한쪽에서 흘러나온 여자들의 눈물이었다.

우리는 모두 비슷한 이유로 낯선 땅에 도착한 사람들이었다.

누군가 눈시울이 붉어지자

국적이 다른 네 명의 여자가 약속이라도 한 듯 눈물이 맺혔다.




며칠 뒤, 우리는 프랑스 가족의 집으로 초대받았다.

우리 집의 포트락 파티와 달리,

식사는 에피타이저부터 시작해 메인 요리, 디저트까지 접시와 식기가 매번 바뀌며 이어졌다.

느릿한 시간 동안 우리는 서로의 문화를 천천히 소화시켰다.


밤이 깊어지자 음악이 흘렀다.

각자의 나라 춤이 하나씩 나왔다. 그리고 한국 노래 '아파트'가 나왔는데,

다양한 얼굴들이 같은 리듬 안에서 섞였다.

프랑스식 정찬 코스를 즐기며 대화하던 우리가, 결국 마지막엔 한국의 '아파트' 노래에 맞춰 정신없이 춤을 추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 안에서 각자의 국적은 흐릿해지고, 우리는 그저 타지에서 살아가는 친구가 되어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우리가 나눈 것이 음식이나 춤이 아니라

다시 적응해 낼 힘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낯선 땅은 여전히 편안하지 않고, 언어의 벽은 여전히 높다.

그래도 그날 이후로 미시간에서 나의 '미국 지인'들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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