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미국, 다른 나라

두 번째 시작, 거대한 태양과 낯선 위도 위에서.

by 사이의 삶

미시간의 겨울은 길고 정직했다.

눈 덮인 창가 너머로 아이들을 실어 나르던 노란 스쿨버스와 무료 급식은,

이제 낯선 위도의 강렬한 태양아래 전혀 다른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텍사스의 삶은 모든 것이 거대함으로 요약된다.

미시간 보다 훨씬 커진 학교 규모, 끝이 보이지 않는 도로,

압도적인 양의 텍사스 바비큐까지.

하지만 나를 당황하게 한 건 특유의 느릿하고 묵직한 남부의 억양이었다.

영어가 유창하진 않아도 조금은 들릴 거라 생각했는데, 좀처럼 귀에 감기지 않았다.


아이들은 이사 후 이틀 만에 등교했다. 나의 일상에도 변화가 생겼다.

미시간과 달리 무료 급식이 아니기도 하고, 아이들이 원해서 매일 아침 새벽도시락을 싸야 했고,

학교와의 거리가 가까워져 스쿨버스 대신 직접 아이들의 등하교를 책임지는

운전기사로서의 삶이 추가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경력직 정착자였다. 그간의 미국 생활로 마음의 근육도 제법 단단해져 있었다.

아이들은 걱정이 무색할 만큼 빠르게 친구를 사귀었고,

나는 짐을 풀자마자 스스로의 성장을 위해 도서관 ESL 프로그램부터 찾아 나섰다.

하지만 여기 동네에서는 영주권자나 시민권자에게만 수업이 허락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미시간에서 따뜻했던 배려가 스치며 잠시 멈칫했다.

같은 미국 땅인데 이번에는 교실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래도 방향은 다시 찾으면 된다.

도서관 자원봉사를 신청했고, 영어 수업을 알아듣지 못할 까봐 두려웠던 필라테스도 시작했다.

ESL수업 대신 개인 튜터 프로그램에도 정성스레 메일을 보냈다.


사실 나의 마음에는 아직 미시간의 풍경이 남아있다.

하지만 진정한 적응이란, 이전에 시간을 지우는 게 아니라,

그 위에 새로운 시간을 덧칠하는 일임을 이제는 안다.

그리움을 품은 채 이 거대한 땅 위에서 나만의 새로운 문장을 써 내려가려 한다.

이 광활한 텍사스에서 조금씩 자라나고 있는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