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놈이 저놈이고 저놈이 이놈이다

부제: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

by 개미

나는 원래 불안과 걱정이 많던 아이였다. 나이를 먹어가며 무뎌지길 바랐지만 그건 내 바람뿐이었다. 이러한 성향이 온갖 이별에 더욱 취약했다. 사람과의 이별, 내 꿈과의 이별. 세상엔 이별이라는 단어가 왜 이렇게 많은 것인지.


아빠는 내가 26살, 석사 졸업을 앞두고 정신없이 논문을 작성하고 있을 때 병환으로 돌아가셨다. 위암 재발로 말기에 발견해 딱 1년을 살다 가셨다.


아빠의 위암 진단을 듣고 졸업을 미루려고 마음먹었고 지도 교수님께 이야기를 했더니 '사람은 다 죽는다, 결국 치러야 하는 것들은 넌 좀 빨리 치른다고 생각해라.'라는 답변을 받았다. 황당했다.


나의 지도 교수는 성격이 불같았다. 화를 주체하지 못할 땐 내 옆의 벽을 주먹으로 칠 때도 있었고 소리칠 때도 있었다. 사람을 들들 볶아 질리게 했었고 집에 못 가게 했었다. 다들 대학원생은 그렇게 산다 했고, 이 정도면 괜찮은 편이라 생각했었다.

그래도 내 지도 교수는 미디어에 나오는 교수들처럼 성추행은 하지 않았으니까, 쌍욕은 하지 않았으니까, 내 계좌를 탐내지 않았으니까 좋은 스승이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지금도 '그런 면'에서는 좋은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 말이 교수 입에서 나올 땐, 나에겐 세상에서 제일 나쁜 사람이 되었다.

아, 그래서 이놈이 저놈이라고 하는구나.


잠깐 주제를 바꿔보자.

그때 우리 집 상황은 수입이 없는 상태였고, 그나마 대학원에서 나오는 학비, 조금의 생활비, 생활비대출금으로 5명의 일가족이 살아가고 있었다. 난 아빠를 미워했었다. 어릴 적부터 미워했었다. 아빠의 무능력함, 무책임감, 그리고 알코올 관련 문제들도. 아빠를 미워하기엔 충분한 이유였다. 아빠가 우리 곁에서 숨이 멎을 때까지도 사랑한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하였다. 염을 할 때에도 사랑한다는 말은 못 했다. 새까만 아빠를 바라보며 그저 미안하고 잘 가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아빠가 떠나고 난 뒤, 난 이제야 애도라는 단어를 알게 된다. 여태 나는 아빠를 애도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야 아빠를 떠올리면 아빠도 아빠대로 외로운 존재였구나라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서로가 외로운 사람들이었는데 왜 서로를 보듬어 주지 못하고 그런 세월을 보냈나 또 마음이 아파져 목이 메어오고 흐르는 눈물을 참기 위해 또다시 질끈 눈을 감는다. 아빠의 죽음이 나에겐 큰 허망감으로 다가왔다. 아빠의 죽음 이전에 친구와의 이별이 있었더랬다. 친하게 지내다가 서로 가는 길이 달라져 소원해진 친구였는데 살해를 당했다. 우리는 매우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고 얽힌 인연들도 많았다. 왜 사람은 이렇게 허망하게 떠나가야 하는가. 인간은 죽음이라는 종착지로 달려 나가는 그저 체스판에 놓인 말 같았다. 혐오스러웠다. 역겨웠다. 한동안 이런 허무함에 혐오를 버무린 그런 혼돈의 감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지금도 잘 모르겠다. 인간이란 존재는 왜 이렇게 저버려야 하는가.


아빠는 나에게 미움, 분노, 동정심, 미안함, 허무함을 알려주고 간 사람이다. 아빠는 우릴 통해서 무얼 배워서 떠났을까. 난 여전히 내 방식대로 아빠를 애도하는 법을 배워나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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