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
내가 사랑하는 것에 대한 자랑으로 시작하겠다.
어떻게 돼먹은 지는 모르겠지만, 시는 인생을 바꾼다. 이야기엔 삶을 끌고 나가는 힘이 있다. 바뀐 쪽이 이전보다 나은지, 그렇게 흘러가다 보면 결국 어디에 다다르는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변화는 몇 걸음 더 걷게 만든다. 더는 발을 뗄 힘이 남지 않은 사람도, 혹은 앞날에 대한 기대를 상실한 사람도 조금 더 살게 만든다. 원리는 이해할 수 없어도 누군가를 하루 더 내딛게 만든다면 그것이 위로고 공감이 아닐까.
술과 담배처럼 밖에서 주입되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부터 끓어오르게 만드는 시의 발디딤이 좋다. 술에 취하고, 분주함에 취하고, 약에 취해 겨우 잠들다 이젠 정말 고갈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면 적기다. 잊고 있던 삶의 자연스러운 충동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시는 무진장 멋있다. 매 순간 즐길 만한 것은 아니어도, 모두가 사랑하는 것은 아니어도. 아는 모든 미사여구 갖다 붙이는, 유치원생으로 되돌아갈 정도로 멋있다.
한 번 멋진 세계를 발견하고 나면 무엇을 봐도 그곳에서 그 풍경을 본다. 재즈 연주자들의 뜨거운 무언가를 발견한 주인공(다이)은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그가 목격한 세상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어 한다. 그러나 가사가 없고, 밴드 뮤직이 한창 인기인 시대에 공감받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는 묵묵히 재즈를 사랑한다. 수동적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의도하지 않아도 그 사랑의 불똥이 주변에 튈 정도로 강렬하게 재즈를 사랑하며 산다. 그가 골라준 재즈 연주를 듣고도 감흥이 오지 않는다던 친구들도 새벽마다 강가에 나가 색소폰을 불고 학교 축제의 무대를 홀로 채우는 다이의 모습을 보고 가슴이 두근거림을 느낀다.
우린 타인이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가 무언가를 실로 중요하게 여기고 있구나만은 전해진다. 예술을 견인해 가는 것은 그 개개인의 충동과 생명력이다. 도대체 그는 무엇을 보았길래 인생을 바쳐가며 멍청해 보이는-여타 직업들을 포기하고 사회적으로 무가치한 커리어를 택하는 등- 선택을 내렸을까? 예술가, 개인에 대한 호기심은 그 예술 분야에 대한 관심의 시작이다. 사람은 사람에게 끌린다. 다이가 연주에 더불어 그가 살아내는 삶으로 주변 인물들에게 재즈의 문을 열었듯이! 이런 떨림과 생동을 전할 수 있다면 그것이 어떤 형식의 예술이어도 상관없으리라. 또 그것이 어떤 행위든 예술이라 불릴 것이다.
이웃을 사랑하라 - 그리고 그 시작은 자신의 충동을 멋지게 발현해 내는 일일 터이다. 공유 가능하고 아름다운 형태로. 시시각각으로 우리의 생명, 그 도화선은 짧아져간다. 불을 붙이지 않아도 줄어든다는 것이 재미난 점이다. 이를 뜨겁게 태우든, 잔잔하게 그을리든, 그저 줄어가는 것을 지켜보든 그것은 상관없다. 단, 자기 인생을 재밌게 사는 사람은 분명 주위에 불씨를 옮긴다. 그리고 한 번 불이 붙어 그 따뜻함을 느끼면, 다시 전과 같은 냉기 속으로 돌아가기 힘드리라.
이 메타포의 더욱 재미난 점은, 불이 붙더라도 도화선이 더 빨리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매번 속을 끄집어내서 최선을 선보여도 다음 날이면 다시 채워지는 충만함을 경험하면, 생각보다 강인한 생명이 자신에 깃들어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부어내는 과정에서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공허함도 같이 쓸려나갔음을 알 수 있다. 불씨만 남아있다면 어떤 젖은 장작도 다시 불태울 수 있다는, 혹은 어떤 불씨도 없던 곳에서도 불을 시작할 수 있다는 깨달음은 삶을 보다 살 만하게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