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섬 명씨 문중 경로잔치
쑥섬 고향집에는 귀한 사진들이 아직 보관되어 있습니다.
모두 아버님이 생전에 잘 챙겨 두신 사진이며 그것들은 뒷면에 찍은 연도와 내용들을 짧게 적어 놓아서 사진에 대한 개략적인 내용을 알 수가 있게 되어 있는 앨범에 들어 있는 사진들입니다.
그 중 하나가 쑥섬 명씨 문중의 경로잔치를 하고서 찍은 사진입니다.
사진의 뒷면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져 있습니다.
‘西紀 一九六九年 正月 貳拾日(서기 1969년 정월 이십일),
‘艾島(애도) 明門(명씨문중) 敬老會(경로회) 撮影(쵤영)
그러니까 1969년도에 쑥섬에서 살고 계시는 명씨(明氏) 문중(門中)의 여러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모시고 한 상 차려 올리고서 찍은 사진인 것입니다.
그리고서 다시 27년이 지난 뒤에 옆에다가 이렇게 써 놨습니다.
'一九九六年(1996년) 現在(현재) 몇 분이나 生存(생존)해 계실까'
'아-, 歲月(세월)은 無心(무심)하고나'
아버님 또한 70에 접어들면서 이 사진 속에 계시는 어른들 대부분 돌아가시고 안 계시는 것에 대한 세월의 무상함을 그렇게 써 놓으셨으리라 생각을 합니다.
다시 27여 년이 지난 뒤에 돌아보니 이 사진 속에 들어 있는 여러 어른들이 많이 돌아가셨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사진 속에서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확인을 합니다.
우선은 20 가구의 나이 많은 어른들과 당시에 젊은 새댁들이 함께 사진 속에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작은 쑥섬이라는 공간에서 집성촌을 이루며 명씨 집안 어른들을 모시기 위해 젊은 새댁들과 어른들이 함께 음식을 장만하고 옷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나와서 정월에 사진을 찍은 것입니다.
'한 때는 100여 가구가 살았다'라고 한 쑥섬의 한창때를 지나서 많이들 대처로 나가 살고 있었을 시점이었음에도 아직까지도 20 가구 이상이 쑥섬에서 살고 계셨던 거 같습니다.
한 핏줄이라는 것이 대단한 것 같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저는 사진 속에 계시는 명씨 문중의 여러 어른들의 면면이 어렴풋하게 생각이 난다는 것입니다. 젊은 분들은 다 아는 집안 어머니 뻘 되는 분들이시구요.
당시 저의 나이가 여섯 살이었는데 그 이후에도 몇 년을 더 살아계셨다는 전제로 하면 초등학교 들어가고서도 이분들이 생존해 계셨던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설명절이면 집안 어른들에게 세배를 한다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세배를 드리고 세뱃돈을 받던 기억들이 아련하게 떠오르는 것입니다.
아침저녁으로 오가면서 만나면 어린 나이에도 ‘저녁 드셨으께라?' 하고 인사를 올렸던 기억도' 떠 오릅니다.
경로잔치를 한 것도 고마운 마음일진대 잔치음식을 들여다보면 작은 섬에서 차린 음식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걸게' 차렸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집안의 젊은 며느리들이 합심해서 차렸을 것 같은데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갖은 음식을 장만하고 소주도 '댓병'으로 앞에다 놓고 찍은 후에 둘러앉아 맛나게 드셨을 쑥섬의 명씨 문중 어른들의 모습이 연상이 됩니다.
그리고 사진 배경으로 뒤에 보이는 두 가지 흥미로운 것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기와집입니다.
그 당시에는 쑥섬에 기와집이 제법 있었는데 그 사실을 사진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창때에 쑥섬은 '돈섬'이라고 불렀다고 했다는 말은 그냥 나온 말은 아니었다는 생각입니다.
나머지는 배경이 '사양도 선산'을 사진 속에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월이면 남도지방도 많이 추운 날이었을 것입니다. 음식을 바깥에 진상을 하고 문중의 어른들과 젊은 며느리들을 모셔서 뒤에 '사양도 선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의미를 되새겨 봅니다.
아버님의 말씀처럼 어른들은 모두 돌아가시고 아니 계시다고 적어 놓은 시점에 저는 그만큼의 시간이 지난 뒤에 이 사진을 들여다보며 새로운 사실을 확인합니다.
그것은 사진 속에 등장하는 두 분이 아직 생존해 계신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제일 왼쪽에서 두 번째 '문경이 작은 어머니'하고 오른쪽 두 번째에 계시는 '부산 작은 어머니'입니다.
그간에 해외를 떠도느라 찾아뵙지를 못하였는데 인천 요양원에 계신다고 최근에 전자족보 만드는 것을 알리려 연락하는 과정 중에 확인된 '문경이 작은 어머니'를 먼저 찾아뵙고 그리고 부산에 계시는 '작은 어머니'도 머지않은 시간 안에 찾아뵈어야겠다는 계획을 세워 봅니다.
쑥섬에 처음 입도하신 할아버지가 처음으로 일가를 이루시고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은 쑥섬에 두 가구가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하면서 다시 언제 쑥섬에 일가들이 저렇게 많이 서로를 위하며 '경로잔치'를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그럴지라도,
쑥섬에 남아 있는 어른들을 모두 모시고 '쑥섬 경로잔치'를 계획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것은 저 어려운 시절에도 어른들을 모시고자 했던 '귀한 마음'이 가슴에 와 닿기 때문입니다. 그 분들의 마음을 읽기 때문입니다.
쑥섬 경로잔치
추운 정월에 어른들 다 모시고
차린 문중 경로잔치
술 한 잔에 오가던 웃음소리
다른 문중 어른들 다 모셔다가
쑥섬 경로 잔치를 하였으리
소주 댓병에 민어 안주에
하루가 흥청거렸으리
어찌 그냥 음식만 드셨으랴
동각에서 풍물이 일고
시조 한 수 청아하게 읊어졌으리
창가 한 가락 뽑아 올렸으며
어른들 업고서 춤도 췄으리
쑥섬 큰집 양지바른 곳에서
잘 차려 입은 문중 어른들
사양도 선산에도 한 잔
정성으로 먼저 올렸으리
출처 : 제1집 '돌부처 도서관 나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