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을 읽고 맺힌 속마음들 -1
좋은 책은 사람들로 하여금 말을 내뱉게 한다.
뭔지도 모르는 게 목에 걸렸다가 헛기침에
튀어나오듯이.
그래서 새롭게 빠진 내 취미인 수영에 대해서 쓰려다가 황급히 목차를 수정했다.
당장이라도 읽었던 단편 소설들 문장 끝에 맺힌
내 생각들을 정리하고
사람들에게 동의를 구하고 싶었다.
나만 단편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여러 삶의 형태가
망막에 상이 맺히듯이 선명한지.
내가 주로 마주하던 책은 나이에 따라 달랐다.
어릴 땐 하루에 10권씩 엄마가 읽어주던 그림책이었고
학창 시절엔 유명 소설의 영어 번역본,
대학생 땐 울며 겨자 먹기로 읽던 프랑스 소설들,
직장인이 되면서는 주로 심리학, 주식 초보 안내서.
그래 책이란 결국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사안들을 다루는 것들이었다.
즉 내가 어떤 사회적, 물질적 발달 단계를 지나고 있는지 보여주는 지표였다.
근데 나는 어쩌다 단편소설에 빠진 걸까?
폭풍 같은 인연은 사실 미약한 만남에서 시작하듯,
내가 단편소설에 빠진 계기도 단순했다.
그저 회사 라이브러리에 줄지어 꽂힌 소설 특집이었다.
짧고 문장이 적당한 여백으로 작은 책에 담겨 있어서인지 나는 1시간 만에 1권씩 해치웠다.
그리고 중간에 멈추기라도 하는 순간엔 다음 전개가 궁금해서 미칠 거 같았다.
마치 내가 그 작품 속 주인공처럼 그 순간을 살다가
시간이 멈춘 것처럼 얼른 이 소설을 끝을,
그 짧은 전개 속에서 벌어지는 주인공의 성장을 보고 싶었다.
나는 왜 하필 단편 소설에 빠졌을까?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아직 단편 소설을 재밌는지 모르겠는 분들 중
아래 이유가 나와 겹친다면 한 번만이라도
단편 소설을 시도해 보는 것을 적극 추천한다.
1. 도파민 중독
나는 모든 밈을 알고 어쩌면 심연의 밈마저 습득한
도파민 중독자다. 출퇴근 길엔 친구와 주고받는 릴스로시간을 때우고, 퇴근 후엔 침대에 누워서 릴스의 홍수 속에 잠겨 버린다.
이렇게 숏폼에 익숙한 나에게 단편 소설은
아주 점잖고 짧은 도파민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위안도 얻을 수 있다. 단순하게 모든 걸 보여주는 소셜 도파민보다 단편소설의 도파민은
나에게 여운도, 가르침도 더 깊다.
2. 삶은 길다 소설은 짧고
하루가 길다고 느낀 적이 있는가?
나는 가끔 내 하루가 페르마타를 등허리에 진 것 같다고 느꼈다. 아주 길게 늘어지는 작은 음표처럼.
그럴 때 짧고 빠르게 끝나는 단편소설을 읽으면
내 하루의 페르마타는 이내 끝나고 아주 짧고 강력한 단막극처럼 느껴진다. 즉 단편 소설은 긴 연극을 중간중간 쉬게 해주는 인터미션의 장막이다.
* 페르마타: 음표나 쉼표를 더 길게 연주하라는 뜻
3. 숨겨진 인류학자
단편소설은 짧은 내용 안에 전개를 마쳐야 하기 때문에
긴 설명으로만 이해되는 복잡한 인물보다는
우리 삶에서 스쳐 지났지만 인상 깊은 인상 군상들을 다룬다. 혹은 가끔은 내가 다뤄지는 것 같기도 하다.
서울에 자가를 구하고 싶은 주인공, 가장 친했던 10대 시절 단짝과 서서히 멀어지는 주인공 등등
결국 단편소설에서 우린 인류학자처럼 다른 삶들을
발견하면서 킬킬 거리며 웃을 수도, 너무 날것 그대로 분석된 스스로를 보면서 낯부끄러워 할 수 있다.
직장인일수록 그래서 단편소설을 읽어야 한다.
우리가 성과와 네트워킹으로 평가받는 시험대가
아니라 우린 어떤 인간인지, 주변은 어떤 삶인지 둘러볼 기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글을 마치고 또 다른 단편 소설을 찾으러
떠날 것이다. 긴 일주일을 또 준비해야 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