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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발 자전거 삼수생

바퀴를 구르며

by 네버마인드

저는 자전거를 삼수했습니다.

다른 걸 삼수 안 해서 다행이랄까요

저의 자전거 극복기가 오늘의 주제입니다.


사촌 오빠의 배신

초등학교 이전엔 알파벳과 기본 영문법,

중학교 이전에 미적분 기초를 마스터해야 한다면,

자전거 세계에서도 네발자전거를 졸업 후

바로 두 발자전거를 시작해야 한다는

암암리에 퍼진 기초 이론이 있습니다.

저는 그 시기를 놓친 안타까운 케이스입니다.


제 세 발 자전거를 사촌오빠(초4)는

반 여자아이들에게 허세를 부리기 위한 플러팅 기술로 활용하곤 했습니다. 멋진 드래프트를 선보이며

앞에 멈춘다던가, 자전거를 세우고 잠깐 기대어

사색에 잠긴 어른스러운(초6 바이브)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루,, 이틀,,, 오빠의 멋짐이 명성을 얻을수록

저는 제 자전거를 점점 볼 수 없었고

어느새 제 세발자전거는 두 발자전거로

커스터마이징 되어 오빠의 집으로 보내졌습니다.

저는 그래서 세발자전거 그 이상의

감각을 기르지 못하고 20살이 되었습니다.


자전거 마스터의 자부심

다행히도 제 절친은 자전거 마스터였습니다.

항상 마트를 갈 때도, 학원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도 그녀는 자전거를 타며 바람을 가르곤 했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저는 마지막으로 남은 과제였죠. 22살, 넘치다 못해 무료한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하던 우린, 자전거 강습 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자전거를 뺏긴 어른이었기에

보유한 자전거가 없었을뿐더러

남의 자전거로는 도저히 타기가 두려웠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방법은 단 하나, 바로 따릉이.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단점, 따릉이의 무게.

왜 다들 가볍게 다루는 그 자전거가 내 손에만 닿으면

금덩이처럼 변하는 것인지,

도저히 페달에 다리를 올릴 수조차 없었습니다.

저는 “한 발 올리고 나머지!”를 외치는

엄한 절친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그다음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방관형 지도자와의 만남

23살 저는 남아도는 여름 방학을 이용해

다른 친구에게 다시 한번 강의를 요청했습니다.

이 친구는 심드렁한 태도로 대충대충 알려주었는데요.

같은 따릉이지만, 이번엔 장소에 변화를 주었습니다. 바로 좁은 아파트 운동장이 아닌 자전거 공터였습니다. 확실히 실패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기니

마음껏 발을 구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퀴 하나가 구를 때마다 제 자전거가

미친 듯이 고개를 젓는 모습을 보고

더 이상 절 태울 수 없다는

무언의 거부로 받아들였습니다.


22살과 비교해 딱 하나 성장한 점은,

그래도 페달을 밟고 2번 정도 바퀴를 굴렸다는 점.

두려운 마음에 핸들을 꼭 쥐면 더 흔들리고,,

꼰대 같지만 지금 생각하니

인생도 가끔은 이런 것 같습니다.

넘어질까 노심초사한 마음에 핸들을 꼭 쥐고

길을 가다 보면, 마음도 결정도 더 흔들립니다.

어느새 자전거를 타는 게 아닌,

자전거의 움직임에 제가 휘둘리기 시작합니다.


넘어지는 게 무서웠던 23살의 저는,

직선으로 두 번 발을 구르고 이만

자전거에서 내려옵니다.

“난 자전거 안 탈래. 평생 안 타도 문제없을 것 같다.

난 이미 배울 시기를 놓쳤어”


참스승의 가르침

장인은 도구 탓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쫄보면서 초보이기 때문에

도구 탓을 합니다.

차도 비싼 게 좋다더니,, 자전거도 다르지 않습니다.


제 앞 동에 살며, 동시에 회사에서도

제 앞줄에 계신 참스승의 비싼 자전거로 교육을 받고

저는 새롭게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무게 중심을 잡지 못할 땐

넘어지는 방향의 반대로 핸들을 꺾으라는 전문적인 조언도 받으며 저는 처음으로 동네 공원 한 바퀴를 돌 수 있었습니다.


어렵기만 하던 자전거 바퀴의 움직임이,

무섭기만 하던 핸들의 조정이,

조금씩 스승님의 가르침대로 움직이며

고쳐지기 시작했습니다.


신기하게도 페달을 구를 때는 속이 시원했고

쌩쌩 달리는 속도엔 심장이 두근거렸습니다.

(사실 어쩌면 그 심장의 두근거림은,, 공원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는 남학생들 때문일 수도 있었을 겁니다.

가벼우면서도 화려하게 자전거를 타는 그들의 젊음과 기술에 기가 죽었기 때문이지요.)


비록 자전거와 친해진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회색의 벽돌이 줄지은 도로가 아니라 나무가 우거진 숲에서 자전거를 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심성이 유독 많은 제가,

상처 나는 걸 극도로 피하는 제가

단 한 번도 안 다치고 3수 끝에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도와준 3명의 스승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자전거 하나 배우는데 유난을 떤다고 할 수도 있지만,

사실 평생의 숙제로 가져온 저의 허들을

간신히 하나 넘은 기분입니다.


그리고 자전거를 타면서 한 가지 생각한 점은,

역시나 처음이 제일 어렵다.라는 점입니다.


페달에 발을 살포시 얹어보는 것도,

두렵지만 두 발을 페달에 다 올려보는 것도,

다리에 힘을 주고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갖는 것도

결국엔 사소하지만, 바퀴를 구르는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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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