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담긴 예술적 리듬
자연에는 예술적 리듬이 담겨 있다
하늘은 자연에 예술의 소재를 숨겨 놓았다.
햇빛은 자연에 색깔과 형태를 부여해 미술이 되게 한다. 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 바람이 휘익 휘익 스치는 소리는 음악이 담겨 있고, 동물, 식물의 움직임에는 무용이 담겨 있다. 이곳 저곳에 식물의 싹이 트고 줄기가 뻗어가고 꽃이 핀다. 자연의 그림이다. 꽃에 벌이 날아드는 소리, 나비의 날갯짓에서 나는 소리, 새가 지저귀는 소리, 바람에 살랑거리는 나뭇잎 소리 그 모든 것은 자연의 음악이다.
계절에 따라 식물의 꽃이 피고 지는 가운데, 주변 식물도 그러하다. 시간 간격을 두고 피고 지는 것이 마치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것과 같다. 이 식물에서 잎이 돋은 며칠 후 그 옆 식물에서 잎이 돋았다. 나무마다 잎이 처음 돋았을 때 건반을 두드린다면 자연의 교향곡이 되지 않을까?
경북 봉화 청량사 (2018년 7월)
해 질 녘, 산사 마루에 걸터앉아 자연의 공연을 본다. 사찰 주변의 나뭇잎들이 바람에 살랑거린다. 나무가 보여주는 무용이다. 지저귀는 새소리가 청아하다. 새들의 합창이다. 산속 산사에서 자연이 보여주는 공연이다.
인간은 자연에 담긴 예술성을 드러낸다
하늘의 마음은 자연에 드리워졌지만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인간의 예술적 감성이다. 자연은 자연 그 자체일 따름이다. 하늘에서 햇빛이 내리쬐며, 비가 내리거나 바람이 불 따름이다. 땅에서는 풍화나 침식작용이 일며, 꽃이 피고 지고 열매가 맺을 따름이다. 하늘과 땅은 그 자체 이치에 따라 움직일 따름이지만 인간은 자연에서 드러나는 아름다움을 잘 포착하는 것이다. 그 사람이 바로 예술가인 것이다. 그는 '확장된 또 다른 나'인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표현한 작품을 잘 감상하는 방법은 그들과 일반인 사이에 연결된 예술적 관계망을 잘 이용하는 것이다.
자연의 차이성이 예술의 원천이다
하늘은 공평무사하지만 땅에는 차이가 드러난다. 하늘은 공평하다. 자연의 순리대로 드러낼 따름인데, 땅에서는 차이가 드러난다. 차이를 활용하는 것은 오로지 인간의 몫이다. 하늘은 공평무사公平無私하고 자연은 있는 그대로일 뿐이나, 인간은 가치판단이 있다.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이 있는 것이다. 볼록하거나 오목함이 있으니 밝은 것과 어두움이 구별되고 형태의 차이가 생겨난다. 이 차이는 색채와 구도의 미술의 원천이 된다. 볼록하거나 오목한 형태에 부딪쳐 나는 소리의 차이가 생겨나니 음악의 원천이 된다. 사물이 높은 곳에 있기도 하고, 낮은 곳에 있기도 한다. 이것을 추상화된 기호로 표현할 수 있으니 형상 문자(한문)의 원천이 된다. 하늘의 기운이 땅에 드리워져 산이 있고 바다가 있고 꽃이 있고 인간이 있다. 풍취 좋은 자연 정경은 그 자체가 입체적인 사수화요, 4D 입체의 풍경화이다. 사람이 바라보며 느껴지는 감동은 가슴을 울렁이게 하고 탄성이 나오게 한다. 바로 풍경에서 자연의 음악이 나오는 것이다. 자연은 미술과 음악의 무궁무진한 소재가 되는 것이다. 하늘에서 햇빛이 내리쬐고 비를 내리면 땅에서는 초목이 자란다.
자연은 영감의 원천이자 감동의 수원지이다. 붉거나 노란 꽃, 쭈욱 뻗어 오른 가지, 촤악 퍼진 작은 가지들, 쑤욱 날아오르는 새들 올록볼록한 산의 자태, 시인과 음악가의 감성판을 울리고, 화가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 감동이 글로 나오면 시요, 가락과 선율로 나오면 음악이요, 색채와 구도로 나오면 그림이 된다.
자연은 예술가의 해석을 통해 작품으로 창조된다. 대중들은 예술가를 통해 하늘이 자연에 내려놓은 아름다움을 감상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산과 들의 여기저기에 있는 돌과 나무 그리고 꽃들. 예술가에 의해 어떻게 다듬어지고, 배치되느냐에 따라 아름다움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예술은 이미 자연 속에 감춰져 있다. 화가는 그것을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도록 드러낼 뿐 이다. 음악가는 자연 속에 흐르는 리듬을 소리로 나타내고 무용가는 춤으로 표현해내는 것이다.
시대와 국가에 따라 뛰어난 예술가는 그 아름다움을 찬미하였다. 소리에 감각이 있는 자는 음악으로, 색채와 구도에 감각이 있는 자는 미술로, 몸짓에 감각이 있는 자는 무용으로 자연이 인간에게 던져주는 예술성을 드러냈다.
이렇게 느껴보자
감상할 때, 제 자리에 몸이 머물러 있을수록 울림의 폭이 커진다. 그림을 보면서 어떤 감흥이 일어날 때는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게 된다. 음악 감상도, 독서감상도 그러하다. 몸이 가만히 있게 되면 마음의 울림이 커지기 때문이다.
감상의 대상이 자연의 꽃이나 나무이든, 미술관의 그림이든 역사의 유물 유적이든 그 자리에서 최소 5분 이상 가만히 있어야 한다. 몸이 가만히 있으면 시선이 대상물에 세밀히 닿게 된다. 시선이 머물면 마음속에 잠재된 자신만의 예술적 감응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때론 커피 향처럼 강렬하게 때론 전통차처럼 은은하게 스며드는 저마다의 느낌이 있다. 그 느낌의 흐름에 마음을 내 맡기면 몸 안의 울림이 일어난다. 울림은 경험할수록 깊고 강렬해져 자신만의 수행, 자신만의 종교가 된다.
인간이 만든 그림이나 음악은 고정된 것이지만 자연 풍광에서 느껴지는 그림이나 음악적 요소는 감상자의 기분이나 시선이 이동하는 방향에 따라 순간순간 달라지는 역동성, 변화의 美가 있다.
가만히 오래 마물러 보면 마음이 침잠해진다. 작품이 세밀하게 보인다. 보이지 않은 이면까지 보이면 작가의 마음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작품을 통해 작가와 감상자의 교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눈길이 가면 마음이 가고, 마음이 가면 손길이 간다. 손 길이 가면 대상과 나와 접촉을 통해 교감이 이루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