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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그배나무 Jul 26. 2021

꽃과 나무에 취하다

자연이 주는 울림

식물에게도 삶의 역사가 있다 

그 식물이 있기까지 윗대 식물은 씨앗이 뿌리 내리고 움텄다. 햇빛과 비바람에 맞서 꽃을 피웠다. 씨앗을 통해 다음 세대에 자리를 넘겨준다. 그 식물 자체는 한 세대를 경과하는 것이지만 먼 옛날 그 식물의 조상이 지구 상에 나타난 이후로 세대를 거쳐 이 자리까지 있게 된 것이다. 식물은 자신의 정보를 DNA에 담아 씨앗 속에 잘 저장했다가 후손에게 넘겨주는 것이다.


과연 식물은 아름다운 꽃을 누구에게 보여주고 싶을까? 자신은 아름답게 보아주는 그 누군가에게 고마움과 행복감을 느낄까?


꽃은 보이지 않는 하늘의 기운과 땅의 질감이 버무려져 색깔과 형태로 구현된 것이다.

햇빛은 한 색깔로 보이지만 프리즘을 통과하면 8가지 무지갯빛으로 나타난다. 만져지지도 보여 지지도 않는 하늘과 땅의 기운이 각 식물의 꽃과 열매를 통해 요모조모의 색과 형태로 발현된다.



장수의 위용, 보랏빛 투구꽃


투구꽃 (강원도 화악산 2015년 9월)


해가 저물어 가는 어느 가을날 늦은 오후, 나무 더미 근처에 피어 있는 꽃, 투구꽃이다.  

꽃을 보면 마치 보랏빛 화장을 한 오리들이 나를 발견하고 무리 지어 꽥꽥거리는 것 같다. 일부는 서로를 바라보며, 누군가 신기한 존재가 나타난 듯 고개를 주욱 내밀고 쳐다보는 듯하다. 앞의 잎들은 마치 날개를 좌악 펴고 위세를 펼치는듯하다.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일까?


보랏빛 투구꽃. 기품이 담겨 있다. 

자연의 원색에는 사진이나 그림에서 도저히 느낄 수 없는 고상함이 있다.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다. 식물이 말할 때는 바람의 힘을 빌어 나뭇잎의 흔들거림으로 표현한다. 늘 제 자리에 고정되어 있지만 계절의 흐름에 따라 자기표현을 한다. 봄에는 새 순으로, 여름에는 무성한 잎사귀로 가을에는 아름다운 꽃으로 초겨울에는 열매로 나타낸다.    



새악시같은 땅꼬마, 족도리풀


족도리풀 (경기도 파평산 2014년 4월)


쬐끄만 보랏빛 병아리들이 엄마 닭 아래에서 입을 크게 벌리고 삐약 삐약 하는듯하다. 봄기운이 완연한 4월 경기도 파평산 족도리풀의 꽃이다. 뿌리는 몸을 따뜻하게 해 비염 콧물에 효과가 좋은 세신細辛이라고 한다. 특이하게도 다른 식물의 꽃과는 달리 유독 줄기 아래쪽에서 피어난다. 유심히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쳐버리기 일쑤다.



작은 꽃들의 군무, 큰까지수염


큰까치수염 (강원도 화악산 2013년 7월)


폭포에서 꽃들이 무리 지어 떨어지는 듯하다. 윗부분에서는 완전히 핀 꽃들이, 아래로 내려갈수록 곧 피기 시작할 준비를 하려고 꽃봉오리를 벌릴 준비를 하고 있다. 끝부분의 자그마한 꽃봉오리들은 가까운 미래의 만개할 꽃이 될 것이다. 이미 핀 꽃과 곧 피려고 하는 꽃봉오리들의 공존, 여기에도 현재와 가까운 미래가 같이 있는 것이다. 


큰까치수염은 꽃이삭에 있는 털이 수염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별 모양의 흰 꽃들이 한 군데 모여 있다. 아무리 작아도 꽃잎이 다섯 개로 갈라져 멋을 부리고 암술과 수술도 어엿하게 갖추었다. 사람은 얼굴로 서로 쉽게 구별하듯이, 식물은 꽃을 보면 쉽게 구분이 된다. 특히 큰까치수염은 일반적인 꽃들과 달리 작은 꽃들이 촘촘히 모여 있는 독특한 모습 때문에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약초 관찰을 하다 보면 이 식물과 자주 만나게 된다.

산길 가에 갑자기 흰색의 커다란 혀가 불쑥 나오는 것 같기도 하며,  여우가 수풀에 고개를 처박고 길가로 흰 꼬리를 내놓은 것 같기도 하다.


한방에서는 진주채(珍珠菜)라고 하며, 생리불순·인후염·유방염·타박상·신경통에 효과가 있다. 어린순은 나물로 먹기도 하는데 맛이 시큼하다. 시골에서는 배고플 때 곧잘 뜯어먹기도 한다.


꽃의 형태를 보자. 식물에게도 질서가 있다. 접시꽃처럼 줄기에 꽃 하나가 있는 식물이 있기도 하지만 짚신나물이나 큰까치수염처럼 작은 꽃들이 모여 있는 것도 있다. 큰 꽃 하나가 있든 작은 꽃들이 모여 있든, 가지의 탄성력 범위 내에서 매달려 있다. 많은 꽃들이 매달려 있다고 해서 땅으로 축 늘어지지는 않는다. 꽃이 매달려 있는 결속력과 가지의 탄성력의 비율 속에 자기 존재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숲속에서 벌어지는 불꽃놀이 향연, 식방풍꽃


                                      식방풍 (강원도 복주산 2014년 7월)


산속에 흰 불꽃놀이가 한참이다. 웬 소리냐구? 바로 이 약초, 식방풍의 자그마한 흰 꽃송이들이 좌악 펼쳐 있는 모습이 마치 불꽃놀이 향연처럼 보인다. 

자그맣게 무리 진 흰 불꽃이 터지다가 이내 더 큰 불꽃이 터져나가는 광경이다. 가장 정지되어 있는 꽃이 불꽃놀이 이미지의 가장 역동적인 모습으로 재탄생된 것이다. 무더위가 한참인 7월 하순 강원도 철원 복주산 자락에 식방풍의 꽃이 만개했다. 조그마한 꽃들은 우산처럼 펼쳐 있다 하여 산형화서(傘形花序, umbel,=우산꼴꽃차례)라 한다.




휘몰아치는 빨간 열매들의 질주, 야광나무


 야광나무 (경기도 명지산 2012년 11월)


후두둑, 갑자기 하늘에서 빨간 소나기가 쏟아지는 듯하다.

아니 붉은 보석이 흩날리는 듯하다. 야광나무 열매이다. 밤에도 빛이 난다고 해서 야광夜光나무라 한다. 어지러이 펼쳐있는 가지마다 제 자리를 찾아 빨간 열매가 달려 있다. 무질서 속의 질서, 혼돈 속의 정연함.

강렬한 빨간빛 열매의 향연은 마치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의 몰아치는 연주나 이무치치 비발디 사계 중 여름 3악장 초반, 바이올린의 격정적인 연주를 듣는 느낌이다.


2012년 11월 경기도 명지산 약초관찰 길, 잎들도 다 떨어져 적막해진 산에 빨간빛 향연이다. 여름 내내 녹색 천지가 사라지더니 더 강렬한 빨간색 잔치가 벌어진다. 가슴속엔 늦가을의 따사로움이 가득 차오른다.




뜨거운 여름날의 새악시 같은 도라지꽃


   도라지꽃 (충북 제천 주론산 2017년 7월)


내가 다가가니 귀를 쫑긋 세우고 누구세요 한다. 토끼보다 더 큰 귀로 말이다.

도라지의 보라색은 물감이나 컴퓨터 모니터 화소로 나타내기가 힘들다. 이것이 자연과 인공의 차이일까? 

약초들의 꽃 색깔은 붉거나 노랗거나 자줏빛이거나 다 제각기 울림을 준다. 컴퓨터나 스마트폰 사진의 1800만 화소로 나타내기 힘들다. 화려하지만 결코 질리지 않으며, 품격 있는 보석 빛깔 같다.


땅에 뿌리박고 하늘로 줄기가 뻗어간다. 길가는 사람을 향해 꽃봉오리가 방긋한다. 도라지 뿌리는 길경(桔梗Platycodon grandiflorum A. De Candolle)이라하는데, 목이 아픈데 좋다. 시골에서 목기침을 자주 하면 도라지와 배를 푹 고아서 자주 먹이고 했다. 지금도 병원 약을 먹기 꺼려하는 사람들은 민간요법으로 요긴하게 사용한다.




따사로운 가을 햇살에 빛나는 빨간 보석, 야광나무 열매


노박덩굴 (경기도 명지산 2012년 11월)


빨간 열매가 과감하게 노란 껍질을 툭하고 열어젖히며, 여봐라, 내가 여기 있노라 외친다. 

더 가까이 다가가 무어라 외치는지 듣고 싶지만, 인기척에 놀라 날갯짓하며 날아갈까 봐 발걸음을 멈춘다. 새악시 붉은 입술처럼 도드라져 보이는 열매의 곡선이 매끄럽다. 잔가지 끝에 매달린 열매가 마치 너른 창공으로 휙 날아갈 듯하다. 


노란 껍질과 빨간 열매, 기가 막힌 배색이다. 진하지 않은 노란색 덕분에 열매의 빨간색이 시선을 더 끌어당긴다. 수많은 잎들이 사라진 자리에 등장한 소수 정예의 열매들. 그래서 그런지 더 야무져 보인다. 꽃과 잎들이 떠나버린 자리, 그래서 적막할 것 같은 공허한 그 자리에서 벌어지는 열매의 패션쇼. 그 백미는 열매 자체가 아니다. 껍질의 코디에 힘입은 열매인 것이다.


노란 껍질 속에 담긴 빨간 열매. 여름날 작열하는 햇빛과 소나기를 받아들여 일구어 놓은 자신의 성과물이다. 과감히 벌려놓은 껍질 속에 담긴 빨간 열매가 도드라져 보인다. 원색이지만 편안하게 다가온다. 전혀 자극적이지 않다. 자연색이 인공 색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다.    




천연 보라색의 정수, 작살나무 열매


작살나무 (경기도 명지산 2012년 11월)


모든 잎들이 떨어져 버린 11월 초, 작살나무 가지에 열매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동네 마실에 모인 또래들 같다. 무성한 잎사귀들로 가득 찼을 때와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떨궈버린 잎 대신 홀연히 출현한 열매들이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모여서 무슨 얘기들을 나누고 있는 것일까. 근처 나무로 놀러 가자는 것일까. 아니면 다가올 겨울 채비 준비를 하자는 것일까.


날씨는 차가워지고 해는 저물어 가는 가을 녘, 열매들의 소곤거림이 있다. 그들이 있어 마른 가지가 죽은 것이 아님을, 생명의 호흡은 여전히 쉬고 있음을 보여준다. 열매의 보랏빛은 가을의 자수정 보석 같다. 보석의 윤기와 투명함은 없지만 여름의 무더위와 소나기를 이겨낸 생명에너지가 물씬 풍겨 나온다. 작살나무는 속명 ‘Callicarpa’는 아름답다는 뜻의 그리스어 ‘callos’와 열매를 의미하는 ‘carpos’의 합성어이다. 열매가 아름다운 식물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청초한 꽃들의 군무, 금낭화


금낭화 (경기도 고려산 2014년 4월)


분홍색 꽃들이 낭창낭창한 가지에 발맞추어 걸어가고 있다. 이 쪽 가지, 저 쪽 가지로 줄 맞추어 가고 있다. 귀걸이 같기도 하고 복주머니 같기도 하다. 금낭화를 '며느리주머니'라고도 한다. 옛날 여인들이 치마 속에 매달고 다니던 복주머니와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따뜻한 봄볕을 맞으며 어디로 소풍을 가는 것일까? 꽃 아래 펼쳐져 있는 녹색 잎들을 구경하는 것일까. 전깃줄에 앉은 참새들처럼 촘촘히 모여 앉아 이 산속에서 일어난 숨은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재잘 대는 듯하다. 꽃들이 땅을 향해 고개 숙이고 있는 모습 때문에 꽃말은 '당신을 따르겠습니다'이다. 겸손과 순종을 나타내고 있다.




똑같은 가지에도 철 따라 주인공은 다르다 

봄에는 연녹색의 새순이, 여름에는 짙푸른 나뭇잎이, 가을에는 빨간 열매가 겨울에는 가지 위에 적막함이 자리 잡고 있다. 나뭇가지 위에서도 출현했다가 사라지는 이 식물의 1년의 역사가 담겨 있는 것이다. 여름의 주인공인 짙푸른 나뭇잎이 물러난 자리에 빨간 열매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열매들이 한창인 이 가지에 눈이 내리고 녹기를 반복하면서 새봄의 움이 터오를 것이다. 저 빨간 열매 속엔 겨울을 지나고, 어느 봄날에 피어날 싹 기운을 품고 있을 게다. 꽃은 아름다움으로 열매는 탐스러움을 선사한다. 식물은 계절에 따른 변신만을 할 뿐이나 아름다움과 탐스러움을 느끼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저 열매가 있기까지 몇 번의 태풍과 몇 번의 벼락과 천둥을 견디고 살아남은 결과이다. 그런 만큼 열매의 원색은 보석보다 영롱해 보인다. 저 열매는 이름 모를 산새와 산짐승의 뱃속을 채워 주리라. 영양분은 그들 몸의 일부가 되게 하고 남은 씨앗은 나무의 후손으로 태어날 것이다. 열매는 가을 햇빛에 탐스러이 보이지만 곧 닥칠 겨울의 강추위를 맞이하리라.


벌과 나비가 암술과 수술을 건드릴 때 간지러운 듯 꽃잎이 바람결에 흔들거린다. 여름날 땡볕과 폭우를 견디고 살아남은 꽃에겐 보상으로 가을에 열매가 주어진다. 그렇기에 그 열매는 더욱 탐스러운 것이다. 가을 열매에는 마치 풍상을 겪은 노파의 깊게 패인 주름살 같은 흔적이 있다. 탐스런 열매가 달려있는 가지엔 여름의 비바람을 이겨낸 투박함과 까칠함이 있다. 가을산을 가게 되면 나뭇잎 떨어진 가지를 만져보라. 까칠하고 겉껍질이 벌어지는 것을 보라. 철 지난 해수욕장 같은, 연극이 끝난 무대 같은 쓸쓸함이 밀려올 것이다. 


하지만 가지에 달려있는 열매가 있기에 서글프지 않다. 노파에겐 애잔함이 느껴지지만 가을 열매는 풍성함이 느껴진다. 인간의 삶에는 식물에는 없는 무게감이 있지 않은가, 그래서 인간에게서는 연륜에서 오는 존경심을, 식물에게서는 생기와 활력을 얻는 것이다.


여름날 꽃은 맵시 좋게 나뭇잎으로 멋 부린다. 가을 열매는 오로지 열매 혼자만으로 승부를 건다. 마른나무 가지 위에 열매만 있을 뿐, 치장해줄 어떤 것도 없다. 


감히 말한다, 꽃보다 열매라고. 주변 도움 없이 자신만으로 평가받는 열매는 그래서 더 값져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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