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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ina Ka Oct 08. 2022

성군의 조건, 아버지의 달걀 왕관

(6)공동황제 시절-2: 테오도로스 2세 라스카리스

지난 편

https://brunch.co.kr/@f635a2b84449453/140




공동황제인 테오도로스는 존경하는 스승 블렘미디스를 만나기 위해 순시할 준비를 했습니다. 수도원에서 관례적으로 방문하기를 원치 않았던 것이죠. 그는 아버지와 함께 궁 밖을 순시했고 수행원들과 백성들은 두 황제에게 예를 갖췄죠. 테오도로스는 "상례대로 나와 황제 폐하를 따르라"고 말하고요. 테오도로스와 바타치스는 텐트에서 신하들을 맞이한 뒤 블렘미디스의 탄원서를 받았습니다. 블렘미디스는 제자에게 나에게 만나자고 해서 고맙다고 감사를 표하고, 정치에 관한 여러 사항을 건의했습니다. 테오도로스가 수도원에 가한 재정 압박은 부당하다(블렘미디스는 수도사니까요..ㅠㅠ), 사마리아인들에게 토지세를 징수할 권한을 부여해달라(이렇게 해야 먹고 살잖아요), 그들이 수도원 밑에서 봉사하게 해달라, 수도원의 농장을 함부로 판매하지 말아달라고 했습니다. 테오도로스는 스승의 청을 들어주었습니다.


사실 황제가 궁 밖으로 순시하는 이유는 블렘미디스의 사례처럼 지역 백성들의 탄원서를 받으려는 의도였습니다. 테오도로스는 말을 타고 직접 순시해서 백성을 직접, 또는 서면으로 만났습니다. 그래야 백성들의 불만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니케아의 핵심 농업 지역을 바라보면서 "아시아의 가장 좋은 곳"을 방문했다고 낭만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러면서 두 황제가 묵은 텐트는 화려하게 꾸몄는데, 텐트의 천은 성인들의 모습을 수놓은 실크로 이루어졌죠. 이들이 사치를 좋아해서라기보다, 황제의 위엄을 과시하기 위해 성인의 모습을 새긴 텐트를 준비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테오도로스가 텐트의 화려함을 자랑하는 글을 쓰지 않은 걸로 보아, 아마 백성과 신하들의 눈치를 본 것으로 추측됩니다. 


앞에서 불법 판매를 번복한 것처럼 테오도로스는 공동황제로서 사법권, 특히 조세 자원의 분배와 관리에 대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왕실의 재판을 할 때 꼼꼼하고, 보편적인 사고방식으로 정치 전체의 안녕과 보존을 위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때 테오도로스는 어찰 등에서 자신을 "짐"이라고 불렀지요. 전쟁과 행정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궁궐에서 밝히기도 하고, 아버지가 추구했던 농업, 경제, 교육 정책 등을 시행하기도 했습니다. 이 때 그는 주위 비서들이 올리는 상소를 보고 자신만의 인장으로 도장을 찍었으니, 엄연히 황제의 권한을 갖고 있었다고 볼 수 있지요.


바타치스는 선정을 베풀어 많은 백성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는 정직한 세금 징수원을 선발하고 부패하고 탐욕스러운 징수원은 해고하는 것으로 명성이 높았습니다. 테오도로스는 아버지의 정치 방식을 본받아 곡물과 섬유 생산량을 증대하는 것을 목표로 두었습니다. 바타치스는 황실의 사유지를 농장으로 만들어 농민들을 정착시켰습니다. 그는 달걀과 포도 재배에 관심을 가졌고 농장 관리인을 직접 선발했습니다. 그는 백성들의 부유함이 나라의 강대함과 연결된다고 믿었기에, 백성들에게서 세금을 거두지 않았습니다. 대신 황실의 농장에서 얻은 수입으로 국고를 채웠고, 황후 이리니가 살아있을 시절에 농장에서 나온 달걀을 팔아 이리니에게 선물하여 존경을 받았던 적도 있었습니다. 테오도로스는 농장이 잘 운영되는지 관리인이 일을 제대로 하는지 감독했습니다. 그는 어떤 마을에서 어떤 농작물을 잘 생산하는지, 어느 계절에 밭을 갈아야 하는지 등을 잘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테오도로스가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버지의 일을 돕고 그 역시 농사에 관해 잘 아는 것으로 보아 아버지를 존경했을 수도 있습니다. 


테오도로스는 소아시아의 경제 상황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필라델피아가 가죽, 에페소스가 물고기나 육류 등으로 유명했다고 직접 언급했죠. 비단 상인들과 재단사들이 사기를 치고 부정한 관행을 일삼았다면서 분노하기도 했는데, 이는 아버지의 정의감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측됩니다. 또한 그는 아버지의 자선 사업과 공공 복지를 도왔습니다. 테오도로스는 블렘미디스에게서 수도원에 수도 병원을 세웠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면서 목욕탕을 병원에 추가하라고 조언했습니다. 특히 니케아에 있는 나병 병원은 갈라타의 동로마의 병원을 모방했는데, 두 황제는 니케아에 그 병원을 모방해서 짓고 적극적으로 후원했지요. 그 외 바타치스는 가난한 집, 노인들이 있는 양로원, 병원에 자금을 대었죠. 그의 지원을 받은 병원 중에 대표적으로 소산드라 수도원에 있는 병원이 있겠네요(소산드라 덜덜...). 테오도로스는 특히 공립 도서관을 지을 때 아버지를 열렬히 지원했는데, 그곳에서 서적을 수집하고 학자들을 불렀습니다. 더 이상 콘스탄티노플 도서관에 갈 수 없는 동로마의 학생들은 니케아듸 도서관에 몰려들었고, 블렘미디스도 바타치스의 지원을 받아 도서관에서 책을 찾았습니다. 테오도로스는 이때 아버지의 책 수집을 도왔지요.


테오도로스는 공동황제로서 사법권을 지녔습니다. 그는 위에서 언급한 블렘미디스 수도원에 의한 토지 매각을 취소하는 등 사소한 법적인 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반면, 반역죄나 불경죄 같은 중범죄는 바타치스의 법정에서 재판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20대의 테오도로스는 궁궐과 궁 밖을 오가며 백성들의 항소를 듣고, 부정행위를 바로잡고, 사찰을 수행하면서 견문을 넓혔습니다. 또한 아버지의 통치 방식, 특히 농장을 운영하고 세금을 걷는 방식을 보면서 '성군의 조건'이 무엇인지도 배웠지요. 검소함이 중요하다는 것을 몸에 익혔을 것입니다. 학자 군주로서 다른 학자들의 연구를 지원하고 도서관을 건립하기도 했고, 어려운 사람들, 특히 나병 환자들을 위한 병원을 짓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테오도로스는 아버지와 달리 역사에서 이름 있는 성군으로 기록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그에게 성군의 자질과 동시에 치명적인 약점을 물려주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계속 연재하면서 그 이유를 찾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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