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연수 Feb 08. 2021

세상이 암울해도 사랑은 가능하다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에밀 졸라

이 소설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순박한 시골 소녀 드니즈와 거대 백화점의 사장 무레의 사랑 이야기이다. 하지만 단순한 사랑 이야기로 치부하기 좀 그렇다. 19세기 파리에 관해 생각보다 많은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달콤한 사랑'과 '비정한 현실' 파트로 나누어서 설명해 보겠다.


1. 달콤한 사랑

아버지를 여읜 후 시골에서 동생들을 데리고 파리로 상경한 드니즈. 큰아버지 집에서 살려고 했으나 거대한 백화점 때문에 형편이 어려워진 큰아버지 보뒤. 그래서 드니즈는 '봉 마르셰' 백화점에서 일을 시작한다. 거기서 백화점 사장 무레의 신화를 들으며 환상에 젖어 있을 무렵, 그녀는 무레 사장을 맞닥뜨린다. '나에게 이렇게 대한 여자는 네가 처음이야'가 현실화되나 싶었는데, 잘난 사장님은 자존심 때문에 드니즈에게 쉽게 마음을 주지 않는다. 사장님이 귀족들을 만나며 원대한 사업 계획을 설파할 동안, 촌스럽고 가난하다는 이유로 직원들에게 모진 텃세를 당하고 뜬구름 잡는 헛소문 때문에 괴로워하는 드니즈. 하지만 역경을 겪어야 사랑이 꽃피는 법. 무레는 그녀에게 남몰래 관심을 표현하고 있었다(사장실로 불러 머리를 귀 뒤로 넘기라 하는 장면, 드니즈가 잠시 백화점에서 잘렸을 때 무레가 사과를 하는 장면 등...). 무레에 대한 소문(클라라 등 많은 여자들을 만나신 화끈한 분;;;)을 알고 있던 드니즈는 쉽게 무레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무레가 요청한 저녁 식사를 거절한 드니즈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결론만 말하면 해피엔딩이다. 그 과정은 알아서 상상해보시라(중간중간 무레의 애인 데포르주 부인과 드니즈의 갈등 장면, 드니즈와 친분 있는 남자 판매원에게 질투하는 무레의 모습이 볼만하다).


2. 비정한 현실

하지만 드니즈와 무레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의 운명은 비극적이었다. 사위가 집을 나간 뒤 딸과 아내의 죽음을 바라보고 결국 가게를 내주었던 보뒤, 10만 프랑에도 넘기지 않겠다던 자신의 건물을 단돈 500프랑에 팔아야 했던 부라 영감, 아내의 지나친 사치 때문에 미쳐버린 마르티, 백화점에서 나간 뒤 방탕한 삶을 이어가는 클라라 등. 이들은 부자의 도움이 없으면 살아가기 어려운 서민들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신자유주의, 자본주의가 주류로 자리 잡으면서,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서민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계속 가난해진다. 백화점과 소상공인의 관계는 빈부격차가 현실화된 19세기 파리의 모습을 드러낸다.   


사랑에는 '세 번의 법칙'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적어도 3개는 있다는 뜻이다. 그만큼 사랑을 이루기 어렵다는 뜻이겠지? (출처: 픽사베이)


읽으면서 울다가 웃다가 화내다가 부끄러움 때문에 몸서리치다가, 참 다양한 감정으로 오르락내리락하게 해 주었던 작품이다.


괴롭힘 당하는 불쌍한 드니즈 때문에 울다가, 무레 사장님이 드니즈한테 반한 모습을 보고 웃다가, 아픈 약혼녀를 버리고 다른 여자 찾아 나선 콜롱방을 보고 화내다가, 무레가 드니즈에게 부수석 구매상 자리를 권할 때 호의를 보이는 모습을 보고 부끄러워했다. 똑같은 루공-마카르 총서인 <목로주점>이나 <나나>, <제르미날>하고는 다른 느낌이다. 자연주의? 유전학? 그런 건 소설에서 잘 안 보인다. '여인들 위에 군림하는 백화점 제왕' 무레와 '순박하면서 강인한 시골 소녀' 드니즈의 사랑 이야기만 보일뿐.


하지만 에밀 졸라의 소설답게 마냥 밝은 작품은 아니다. 거대한 백화점 앞에 쓰러져 가는 소상공인들. 그러면서, '자본주의'란 허울 앞에 항의조차 하지 못하고. 여인들은 남편의 재산을 축내며 소비하기에 그지없다. 명품 밝히는 모습이나 거대 기업에 잠식되는 모습은 21세기에도 변함없는데..(우리나라의 경우 배달 문화 때문에 대형마트도 죽고 있는 실정이지만) 이런 내용을 19세기에 써내다니. 에밀 졸라는 선구자인 게 분명하다.


<목로주점>에 이어 두 번째 루공-마카르 총서를 읽었다. 세 번째는 무엇을 읽을까? 머릿속에 저장해놓은 독서 목록에 다 동그라미 친 뒤, 고민해보자.



마지막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문구 하나를 인용하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가 만들어낸 작품의 위대함으로 인해 더욱더 그를 사랑했다. 패배한 이들의 신성한 고통 앞에서 느껴지는 분노로 끊임없이 눈물을 흐르는 가운데서도, 그의 힘이 날로 커지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를 향한 사랑 또한 점점 더 깊어져 갔다. -2권 p.262



<참고도서>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862425


* 네이버 블로그에도 게시된 글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이라는 것에 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