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에서 6월까지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강주헌 선생님의 <강주헌의 번역작가 양성 63기>를 들었다.
스케줄은 아래와 같았다.
1주차: 번역의 정의
2주차: 자기계발
3주차: 미래서
4주차: 환경
5주차: 자연과학
6주차: 종교
7주차: 비소설
8주차: 인문과학
9주차: 예술
10주차: 정치사회
11주차: 총정리
12주차: 기획서 쓰는 방법
장르는 다양하다(문학이 없어서 아쉽다. 어쩔 수 없이 문학의 경우, 내가 직접 원서를 보면서 공부했다). 배운 지 8개월이 넘어가니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그중 기억에 남는 사실과 번역하면서 꾸준히 기억에 남는 요령은 아래와 같다.
번역이란 영어로 쓰인 문장을 가장 적합한 한국어로 바꾸는 작업이다
번역의 정의이다. 서메리 선생님 강의에서도, 수많은 번역 관련 안내서에서도 누누이 언급된다. 말만 들으면 '당연한 거 아냐?'라고 생각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보자.
ex) It's not the disability that defines you; it's how you deal with the challenges the disability presents you with.
- Jim abbott
- 당신을 규정하는 것은 무능력이 아니고, 당신 앞에 놓여 있는 그 무능력을 어떻게 도전해서 잘 이겨내는가에 달려 있다.
어떤가? 어색한가? 안 어색한가? 어색하지 않다면 문장을 많이 읽지 않은 사람이다. 다시 한번 보라. 어색한가? 어색하다면, 어느 부분이 어색한가? 바로, disability를 무능력으로 번역한 부분을 보라. '무능력을 이겨내겠다.' 보다 '장애를 이겨내겠다.'가 더 자연스럽지 않은가?
번역을 할 때 단어의 뜻을 한 가지로 고정해서는 안 된다. determine의 경우도, '결정하다'보다 '밝혀내다' '알아내다'라고 번역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리고 세미콜론이나 대시의 경우 우리나라 문법에서 좀처럼 쓰이지 않는다. 언제 살리고 언제 버릴지 글 전체의 맥락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
of는 항상 '~의'일까?
'the painting of Rembrant'를 뭐라고 번역해야 할까? '렘브란트의 그림'이라고 번역해야 한다. 'the painting of Aristotle'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그림'이라고 번역하면 된다. 그러면, 'the painting of Aristotle of Rembrant'는 뭐라고 번역해야 할까? of 이하는 painting을 어떻게 수식하고 있을까? '렘브란트가 그린 아리스토텔레스의 그림', '렘브란트가 아리스토텔레스를 그렸다'이다. 렘브란트는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이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다. 즉, of를 '~의'로 퉁치지 말고 of가 의미하는 동사를 찾아 적절히 대입해야 한다. 렘브란트와 아리스토텔레스는 유명한 사람들이니 쉽게 검색할 수 있다. 그러니 렘브란트가 주어, 아리스토텔레스의 그림이 목적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the painting of John of Mary'의 경우 누가 주어이고 누가 목적어일까? 윗 문장에서 렘브란트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앞에 있었다. 이번에도 똑같다. 메리보다 존이 앞에 있으니 존이 목적어, 메리가 주어이다. 번역하면, '메리가 존을 그렸다', '메리가 그린 존의 그림'이 된다.
여기서 팁을 주자면, of 앞의 명사는 동사로 쓰인다.
렘브란트의 그림? 아리스토텔레스의 그림? 뭐라고 번역하지? (출처: 픽사베이)
명사 뒤에 동사가 온다?
우리는 영어 문법을 공부할 때 1형식부터 5형식까지 배운다. 주어-동사, 주어-동사-보어, 주어-동사-목적어, 주어-동사-간접목적어-직접목적어, 주어-동사-목적어-목적보어. 이 문장들의 공통점은 주어 뒤에 바로 동사가 온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문장은 어떻게 번역할까?
ex) Head erect, its tail a gentle vane turning
앞 문장은 '명사-형용사'이다. 뒷 문장은 '명사-명사-명사?형용사?'이다. 마지막 단어의 경우 동명사인지 현재분사인지도 분간이 어렵다. 원서를 보면 저런 구조가 심심치 않게 보이는데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 난감해진다. 그럴 때는 단어와 단어 사이에 'being'을 넣어 주면 된다.
ex) Head being erect, its tail being a gentle vane being turning
여기서, being은 동명사라고 생각하면 된다. 명사의 형태이지만 동사의 기능도 갖추고 있는 단어. 여기서 being은 be동사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꼬리는 가벼운 날개처럼 빙글빙글 돌리고 있다'라고 번역하면 된다('빙글빙글'은 turning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 추가한 단어이다). 학교 문법 시간에 이론으로 배우기만 하고 실제로 잘 써먹지 않던 동명사가 여기서 쓰인다.
'she=Mary'일까?
번역할 때 가장 골치 아픈 단어는 동사, 명사, 그중 대명사가 가장 어렵다. 누구, 무엇을 가리키는지 제대로 판단하지 않으면 잘못 번역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것, 그녀, 그'라고 그대로 번역하면 '대충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러니 여기서, 누가 메리가 아닌지 생각해보자.
a. As Mary is pretty, she is loved by everybody.
b. As Mary is pretty, Mary is loved by everybody.
c. She is loved by everybody, as Mary is pretty.
d. Mary is loved by everybody, as she is pretty.
각 문장의 주어 중 메리가 아닌 것은? 정답은 c의 'she'이다. 나머지는 모두 메리이다. 왜 아닐까? 정확히는 알 수 없다. 문맥에 따라 she가 메리인지, 딴 사람인지 갈라진다. 즉, 글 전체의 내용을 파악해야 she가 누구를 가리키는지 알 수 있다.
'번역이 영어를 한국말로 해석하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을 시절, 들은 강의이다. 그래서 부끄럽기도 하고 좌절도 많이 했다. 내 실력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냥 사전에 나온 대로 해석해서 강의실로 갔는데, 현란한 미사여구를 자랑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사람들도 선생님에게 핀잔을 들었다. 말을 만들지 말라고. 번역은 사람들이 알기 쉽게 전달하는 과정이지, 말을 아름답게 꾸미는 과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듣고 나면 피곤해서 바로 잤다. 복습도 못했다. 과제만 겨우겨우 해갈뿐. 과제도 왕복 5시간 동안, 지하철에서 해치웠다. 그래서 내 번역문이 이상했나 보다.
번역가가 힘들수록 독자가 편하다. 그 속에서 즐거움을 느껴야 한다.
이 말이 강의에서 얻었던 가장 큰 교훈이다. 비록, 기본보다 요령이나 글 중심의 강의여서 따라가기 어려웠지만 이 교훈을 얻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들을 가치가 있는 강의라고 생각된다. '이게 자연스럽게 읽히나?' '이 단어를 쓰는 것은 어떨까?' '왜 얘네가 이렇게 말할까?'같은 다양한 고민을 해 봐야 번역 실력이 늘어난다는 것을 1년이 지난 지금에야 알았다.
다음 편은 기획서를 쓰면서 겪었던 고난(?)을 다루어보도록 하겠다. 그리고 내가 왜 역사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꿈과 현실이 어떻게 괴리되어갔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기록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