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먼은 나에게 있어 키다리 아저씨와 같은 존재였다. 190은 족히 되어 보이는 큰 키에 위트 있는 말솜씨 거기다 지혜까지 겸비한 영국 신사인 사이먼은 내가 가장 애착하는 사람 중의 한 명이다.
나는 문제가 생기거나 고민거리가 있을 때마다 사이먼에게 상담을 요청하곤 했다. 우리가 만나는 장소와 시간은 늘 일정했다.
Where: **donut
When: 11am
Menu: chocolate donut and 2 cups of coffee
주문한 아메리카노와 도넛이 담긴 쟁반이 탁자에 놓이자마자 나는 나의 고민거리를 봇물처럼 쏟아냈고 사이먼은 달콤한 도넛을 한입 베어 먹으며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리고 나의 이야기가끝나면 아메리카노로 목을 축인 후 천천히 말을 시작했다.
나는 나의 모든 고민거리를 일기장과 사이먼에게만 오픈을 했다. 그래서 사이먼은 내가 치매 진단을 받은 후에도 그 후 뇌전증 진단을 받은 후에도 가족보다 빨리 소식을 들었던 분이었다.
"지나,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훌륭한 업적을 지닌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뇌전증을 겪었던 걸 아니?"
나는 사이먼의 질문이 꽤나 흥미롭게 느껴졌다.
"그래? 난 잘 몰랐는데?"
"정치인이나 과학자 예술가 등등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뇌전증을 겪었어."
"그래 맞아. 고흐도 뇌전증을 겪었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어."
고흐의 작품들 중 유명한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작품은 고흐가 발작 중에 그린 그림이라는 말 또한 들어본 것 같았다.
"지나, 너는 특별한 사람이야."
그래 나는 특별한 사람이지 문제가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다른 사람과 조금 다름을 가졌을 뿐이지 그 다름으로 인하여 의기소침해질 필요가 없었던 것이었다.
오늘도 사이먼은 측은한 눈빛으로 동정하는 말 한마디를 전하지 않고 나에게 가장 큰 위로를 해주었다.
눈은 입보다 많은 말을 한다. 음성으로 전달되는 말보다는 눈빛으로 전달되는 말이 때로는 더 큰 위로가 될 수도 있고 더 큰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 중 하나는 먼저 눈으로 상대방의 기를 꺾는 것이다. 큰 고함을 지르며 상대방에게 겁을 주려고 한다면 이미 그들은 하수인 것이다. 진정한 싸움의 고수는 말을 아끼는 법.
이 원리는 싸움뿐 아니라 힘든 상황에 처한 사람을 위로할 때도 쓰인다. 진정한 위로를 하고 싶다면 그 사람이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 이 말 저말 내뱉을 필요가 없다. 오히려 그것은 이미 너덜너덜해진 감정을 찢어놓는 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작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자신의 말을 소중하게 들어주는 것과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봐 주는 것이다. 때로는 입이 아닌 눈이 더 많은 말을 하기도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아야 한다. 그러니 눈빛이 대화할 수 있도록 입은 잠시 침묵의 상태를 유지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