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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na Aug 19. 2022

병동에서 만난 사람들

때로는 비교가 위로가 될 때가 있다.

6개월에 한 번씩  처방약을 받기 위해 서울을 가는 날은 한없이 귀찮은 일이다. 왕복 7시간의 버스를 타고 서울을 가는 날이면 온몸에 기력이 다 빠지는 것 같다.

이렇게 애써 병원에 도착하면 고작 나에게 할애된 시간은 10분 남짓이니 더욱더 힘이 빠지는 것 같다.

처음 서울에 있는 병원을 갔을 때는 병만 괜찮아진다면 매일도 갈 수 있을 것 같았던 마음이 3년 정도 되니 일 년에 두 번가는 것도 일스럽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렇든 사람의 마음은 간사하기 그지없는 것 같다.


예약된 시간에 도착하기 위해서 지하철을 환승하고 순환버스를 타면 얼추 예약시간에 여유가 있다. 진료실 앞에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에 앉아 내 순서를 기다리다 나와 같은 뇌병변고 있는 환우들을 마주하게 된다. 나이로 보면 서른도 넘어 보이는 총각이 아버지 손을 잡고 병실 앞에 앉아 있는데 아들은 덩치만 컸지 아이와도 같다.

또 어떤 사람은 몸을 지탱할 수 조차 없을 정도로 몸이 떨려 엄마 곁에 꼭 붙어 있다. 그리고 어떤 할아버지는 자식을 데려올 수 없는 상황으로 대리처방을 받으러 온 눈치다.

분주함이 가득하여 시끌벅적한 병원과는 달리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에는 침묵만이 흘러내린다.

그 모습을 본 남편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 끌에 있는 창가 쪽으로 걸어갔다. 마음이 복잡하겠지...

아무리 보아도 이곳에서는 내가 가장 멀쩡한 것 같다.

남들이 겪고 있는 더 큰 아픔이 나의 아픔을 삼켜버리는 생각에 순간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겪는 아픔에 비하면 내 아픔의 무게는 가볍게만 느껴지는 것이다. 병원을 오는 일이 유난히도 고생스럽고 수고스러운 일이지만 이런 경우에는  오히려 힘을 얻어가는 느낌이다.

나에게는 이런 비교가 희망을 가져다 주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는 것 같다. 가끔은 나보다 힘든 아픔을 겪는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오롯이 혼자서 이 아픔을 감당하기가 버거워질 때는 비교가 가장 큰 위로가 될때가 있다. 시간이 흘러 혼자서도 충분히 아픔을 감당할 수 있게 된다면 비교하지 않고서도 스스로를 다독여줄수 있는 내가 되지 않을까?



사람들은 나보다 나은 사람들(외모, 학벌, 재산 등)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경향이 있다. 특히나 SNS에서 마주치게 되는 여러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며 내 처지를 비관하며 우울해하는 경우도 많다. 단순히 보이는 삶으로 자신의 삶을 비교하여 불행을 느끼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반대로 누군가의 삶보다는 내 삶이 나아 보일 때 우리는 안도감이나 행복을 느끼기도 한다.

TV에서 볼 수 있는 이혼위기의 부부이야기라던가 막장 드라마가 인기가 있는 이유도 이런 비교에 근간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전문가들은 비교가 낮은 열등감이나 자존감과 관계가 있다고 말을 한다. 그렇기에 자신을 먼저 수용하고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때로는 비교가 가장 큰 위로가 되는 것 같다.

그래도 나는 저분들보다 나은 것에 감사가 나오는 것 보니 말이다. 만약 당신이 정말 힘든 상황에 있다면 나보다 더 힘든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명심할 때 나보다 더 힘든 상황의 사람들의 아픔이 당신의 힘든 상황의 아픔을 삼켜버릴 것이다. 비교를 하든 안 하든 어쨌든 나는 당신도 그 상황에서 나처럼 벗어 나오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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