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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na Aug 19. 2022

나는 여우 주연상

들음에서 출발하는 믿음

내가 처음 CT를 찍고 받은 진단은 "해마 경화증"였다.

아직까지 뚜렷한 원인은 모르나 해마 경화증은 측두엽 뇌전증의 원인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흔히들 알다시피 해마는 기억력을 관장하는 곳이고 이 부분에 경화가 일어나면  단기 기억에  문제가 생기게 되며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측두엽 발작을 오랫동안 지속하게 되면 해마의 뇌세포가 사멸하여  기억에 큰 장애가 오기에 치매와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내가 대학병원에서 신경과 선생님을 만난 것은 처음부터 잘못된 만남이었는지도 모르겠다. CT를 판독하던 선생님의 판독 실수와 그 사진을 토대로 진단을 내린 의사 선생님 덕에 나는 한 달간 치매환자의 삶을 살았으니 말이다.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 보면 선생님은 나의 질문에 그저 답을 해준 것뿐이었을 것이다.

해마가 경화되어 손상이 되면 기억을 잃어가는 것은 당연하고 그것이 치매와 같은 양상을 보인다는 말씀을 해준 것인데 나는 치매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처방된 약은 감정을 컨트롤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들었고 스스로 치매라고 믿어버린 후부터 그 믿음은 완벽히 나의 몸을 조종하고 있었다. 나는 아직까지 멀쩡한 거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 급격히 상태가 안좋아지게 되는 것일까? 정말 나의모든 기억이 사라지게 된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내가 치매라고 생각하니 덜컥 겁이 났다. 실수로 가스불을 켜놓진 않을까, 집 현관의 비밀번호를 생각해내지 못하진 않을까, 가까운 지인이나 가족까지 못 알아보진 않을까 등등의 일어나지도 않는 일을 생각하며 매일 신경을 곤두서며 살았다.

이성과 감정이 따로 노는 느낌에 감정의 소용돌이 속을 떠다니는 나 자신이, 감정마저 컨트롤할 수 없는 치매환자라 생각을 하니 매일이 우울했다.

뭔가 크게 잘못되고 있었고 그로 인해 나는 살고 싶지가 않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널뛰는 감정을 제어하는 것도 자꾸만 깜빡거리는 건망증도 모든 게 버겁게 느껴졌다.

참으로 나는 내 삶이 측은하게 느껴졌다.


가난한 농사꾼 집안에 장녀로 태어나 말 못 하게 가난했던 20대도. 살만하니 들이닥친 아빠의 병시중으로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던 30대도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 거라며 스스로를 다독여가며 버텨오던 나인데 40대의 결혼과 함께 시작된 병이라니... 이제는 감정을 추스를 수도 없이 내 마음도 너덜너덜해져 버렸다.

언젠가 나만큼 인생의 무게가 무거웠던 사람이 신께 울부짖으며 기도를 하길,

"왜 내가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합니까?"라고 물으니

마음 깊은 곳에서 신의 음성이 들리길,

"왜 너는 고통을 받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느냐?"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 나는 나게 주어진 상황에 원망은 하지 않았지만 가끔씩 내 스스로가 안타깝고 딱해 보여서 마음이 아팠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그것이 나의 인생의 계획표대로 진행되고 있는 것인 걸..

지나온 나의 삶을 영화로 만든다면 살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나 자신에게 여우 주연상을 주고 싶다. -물론 연기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천국에서 그 각본을 쓴 신에게 이렇게 묻고 싶다.

"내가 당신을 만난 것을 보니 나의 영화의 결말은 결국 해피엔딩이군요."

아직 내 영화의 클라이맥스에는 다다르지 않았지만 결국 내 영화는 해피엔딩이 될것을 믿어야겠다.



믿음이란 들음에서  생겨나서 뇌를 조종하고 뇌는 몸을 다스린다. 그렇기에 우리가 무엇을 보느냐보다는 무엇을 듣느냐가 더 중요할 수가 있다.

이제 막 태어난 신생아의 경우 눈을 뜨지 못한 상태에서도 엄마의 목소리에 반응을 하며 사랑을 느끼고 탄생과 반대의 경우인 사람이 죽음의 선을 넘는 그 순간에 심장은 멈추지만 청력은 살아있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으로부터 긍정의 메시지를 많이 듣고 자란 아이는 자신감이 많은 아이로 자라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결국은 성공을 한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비난과 책망을 듣고 자란 아이는 자존감마저 낮은 아이로 자라나 결국 자신의 삶마저도 제대로 펼치지 못하게 된다.

이처럼 무엇을 듣는가에 따라 믿음이 생겨나고 그것은 반드시 삶으로 증거 된다.

그렇지만 우리는 들음에 있어서 들을 가치가 없는 말은 가려듣는 지혜가 필요하다.

여기서 지혜란 진실된 말을 하는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라 볼 수 있겠다. 그 사람들은 때로 부모님일 수도 있고  선생님 또는 친구일 수도 있으며 강연이 되거나 책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지혜자의 말을 듣음으로써 우리 또한 진실된 말을 해줄 수 있는 또 한 명의 지혜자가 되어 누군가의 귀를 통해 믿음으로 증거 될 것이기에 나는 우리가 진실된 말을 하며 가치 있는 말을 들으면서  자신의 삶에 믿음의 증거자로 설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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