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사랑’ vs ‘치사랑’
종종 요양병원에 계시는 모친께 안부 전화라도 드릴 참이면, 오히려 아들이 잘 지내는지 물으시는 바람에 ‘내리사랑’의 실체를 절감하곤 합니다. 국어사전에 실린 뜻풀이대로라면 ‘내리사랑’이란 손아랫사람에 대한 손윗사람의 사랑을 가리키는 것이요, 흔히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이를 때 쓰는 말이라고 하지요. 사실 그 반의어로 쓰이는 ‘치사랑’이란 말도 있긴 합니다만, 어찌 된 셈인지 비교하기조차 힘들 만큼 드문 일로 취급하곤 하니, 세대 간의 ‘사랑’이라면 대개 ‘내리사랑’을 먼저 떠올리곤 합니다. 물론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그 아름다운 마음을 두고서 굳이 방향성까지 따질 게 무에 있느냐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어찌 되었든 윗세대의 따뜻한 마음을 헤아릴 필요는 있지 않을까 싶어 시작한 이야기입니다.
사실 굳이 앞서 ‘내리사랑’을 떠올린 또 다른 이유는 한 세대를 더 건너뛰어 손주에 대한 조부모의 사랑도 한번 들여다보면 어떨까 싶어서였습니다. 어느덧 인생 2막에 접어들 무렵인 때문인지, 가끔 친구들과의 모임이라도 가질 참이면 뚫어져라 스마트폰 속에 담긴 손주 사진을 들여다보며 온통 얼굴에 환한 웃음빛을 띠는 이들을 보곤 합니다. 하도 그 모습이 도드라져 보여 그리도 좋으냐고 넌지시 물으면 역시나 웃음 띤 얼굴로 그저 고개만 격하게 끄덕일 따름이니, 그이의 심정을 미루어 짐작하기도 합니다. 사실 어린 시절의 흐릿한 기억을 더듬어 봐도 시골 조부 댁에서 보았던 손주를 향한 할아버지, 할머니의 그 주름진 눈웃음 역시 친구들의 그 얼굴빛과 그리 다르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만.
‘황혼 육아’에 대해서야 워낙 자주 언급하곤 하는지라 그리 관심을 두지는 않았던 편입니다만, 그러한 문화가 근래 들어 침체한 경기에 활기를 불어넣고 소비를 진작시키는 데 일조(一助)하고 있다니 이런 생뚱맞은 기사가 있나 싶어 얼른 눈길이 닿았습니다. 그러고는 격하게 무릎을 칠 수밖에 없었던 건 비록 노후의 모자란 경제력이지만 자식보다 더 귀하디귀한 손주에게 그 어떤 지원이라도 하지 못할 일인가 싶었으니 말입니다. 마침 ‘베이비부머(1955~1963)’ 세대가 인생 후반부를 설계할 시점에 다다랐으니, 그동안 나름대로 쌓아온 지력(知力)과 경제력(經濟力)을 모두 동원해서라도 제대로 된 내리사랑을 실천해야 할 일이다 싶습니다. 물론 반듯한 인성(人性)을 그 근간에 담아 제대로 된 철학(哲學)을 심어주는 일 역시 허투루 해서는 안 될 터이고 말입니다.
관련 기사 : "손주 학원비 그까이꺼"…'황혼 육아'에 지갑 여는 노인들 [조미현의 Fin코노미] / 한국경제 (2023.09.13.)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309135292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