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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항해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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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리 Jan 28. 2023

나는 육지의 선원이다

바다 위에서 보낸 내 20대 청춘

20대 내 모든 청춘을 다 바쳐 배를 탔었다.

선원으로 갔었던 나라들




대학교 졸업 후 24살이 되던 해 바로 승선을 시작해서 29살이 되던 해 12월 27일에 배에서 내렸다.

나의 경우에 군대는 승선근무예비역으로 4주 수료였고 24살 첫 배를 승선하기 전에 다녀왔다. 사실 4주 수료라고 하면 사람들이 부러워하지만 거기에 플러스로 3년간 선원으로의 승선이 충족되어야 군복무가 끝난다. 승선 초기에는 승선기간이 군복무 기간이었다.


나의 20대 전부는 바다 위에서 그려지고 쓰였다.


나의 20대는 문자 그대로 선원의 삶이었다. 5대양 6대주를 항해하며 끝나지 않는 바다를 보며 살았었다. 한번 승선에 배에서 보내는 기간이 6~7개월, 육지에서 쉴 수 있는 휴가는 1~2개월이었으니 바다 위에서 보낸 시간이 육지에서 보낸 시간보다 몇 배는 더 많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배를 그렇게 탔을까 싶다.


그랬던 나는 지금 육지의 선원이다. '육지의 선원'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지만 이게 사실이다. 승선하는 동안 나는 이 직업으로 평생을 살 순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차근차근 육지에 내려서 할 일을 위한 준비를 했었다. 그리고 마침내 승선기간 동안 배웠던 지식을 바탕으로 배를 검사하는 직업을 가졌다.

선박검사원이 되었다. 이 직업 역시 흔히 알려져 있는 직업은 아니다. 선박을 검사하려면 1~2주 정도 조선소에 정박해서 수리를 하는 배에 올라가서 배의 상태를 검사하거나 아예 새롭게 만들어지는 배에 공정별로 올라가서 검사를 해서 배를 완성시킨다.


20대에는 바다에서 배를 탔지만 30대인 지금은 육지에서 배를 탄다.

아무래도 배와는 떨어질 수 없는 운명인가 보다.




TV 프로그램 '유퀴즈 온 더 블록'에 나온 어선 일항사를 본 적이 있다. 그분은 유튜브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승선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물론 나는 상선을 타기에 어선과는 약간 다르긴 하지만 일반인들의 눈에는 배라는 공통점이 있기에 똑같게 보일 것이라 생각한다. 또, '배를 타며 파도치는 내 마음을 읽습니다'의 저자 이동현은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이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이 선원이라는 직업에 대해서 생각보다 알려진 게 없다.

일반인들은 접하기 힘든 직업이기에 분명히 이 직업에 대해 여러 가지 방면에서 궁금한 사람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단순한 호기심을 가진 사람에서부터 이 직업을 가지기 위한 사람, 이 직업에 종사하는 선원분들의 가족인 부모님이나 배우자 등 여러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는 글을 통해서 승선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작게나마 내 글이 그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2013년에 6개월 정도 실습 생활을 했었고 실제 직업으로서는 2015년부터 2020년까지 햇수로 6년의 시간을 바다에서 보냈다. 선장, 기관장이 되어 정년까지 평생 이 직업에 종사하는 분들에 비해 긴 승선 기간은 아니지만 6년간의 기간 동안 많은 일을 경험했다고 자부할 수 있다. 생각지도 못한 회사의 파산으로 여러 회사를 경험하게 되었고 운이 좋아 선박 회사의 관리직도 비교적 이른 나이에 경험할 수 있었다. 지금은 선박 검사원이기에 이 쪽 계통에서는 몇십 년 경험의 관록을 가진 전문가는 아닐지라도 나이에 비해서는 전문성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승선하는 동안 남미를 제외하고 북미,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을 방문했다. 지금까지도 남미 항로를 다니는 선박을 탑승할 기회가 없었다는 게 너무나도 아쉽다. 남미가 빠져서 정확하게는 오대양 육대주를 배를 타고 누볐다고 말할 수가 없다. 

승선을 하는 동안 기회가 될 때마다 상륙을 나가서 여러 나라의 문화를 체험했었다. 이게 승선 생활의 최대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승선 생활 중 운이 좋으면 내 돈을 주고서도 가기 힘든 곳들을 가볼 수 있다. 나가서 다른 문화를 경험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했던 그 경험들이 모여서 지금의 나를 만들어줬다고 생각한다.


승, 하선을 반복하며 배의 안과 밖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보고, 배에서 일하다가 다치기도 했고 외로워 눈물을 흘리기도 했으며 밤하늘의 별을 보고 생각도 많이 했었다. 정말 희로애락을 다 느꼈었다. 이런 나의 에피소드들을 하나씩 풀어 나갈까 싶다.


가장 먼저 바다에서 두 달 동안 표류했던 에피소드를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만화도 아니고 표류라니? 분명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과장 없는 2016년 실제 내가 겪은 경험담이다.


자 그럼 다음 글에서.


마지막에 승선했던 배에서 본 캐나다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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