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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정 May 30. 2023

안드레아의 쿠킹클래스-독일가정식 샐러드편  

방구석 독일 음식

독일에 간다면 사우어크라우트를 먹어보고 싶었다. 사우어크라우트는 독일어로 Sauerkraut다. Sauer는

시다, Kraut는 양배추이다. 사우어크라우트는 시큼한 양배추다. 양배추를 썰어 소금에 절여 일정 시간 두면 발효하여 신맛이 나는 독일김치다. 독일족발 학센, 독일 돈가스 슈니첼, 독일 소시지 부어스트에 곁들여 먹는다. 나는 소금과 양배추만 들어간, 맛에만 집중할 수 있는 사우어크라우트의 단순함과 단일성을 사랑해왔다. 사람을 한눈 팔지 않고 집중하고 몰입하게 하는 맛이다.


단순한 이 음식을 내가 집에서 맛을 내기는 쉽지 않았다. 소금에 절여 유리병에 담갔지만  어떤 날은 맛이 나기도 전에 색이 갈색으로 변해 버린 적도 있었다. 아니면 독일음식점에서 먹던, 숨이 죽어 마치 우리 보름날 무나물처럼 물러진 양배추의 식감을 내 손으로 구현하기도 어려웠다. 독일에 간다면 한국에 돌아올 때는 독일맛이 나는 사우어크라우트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 돌아오고 싶었다.


크라우트살라트지만, 괜찮아

사우어크라우트는 아니지만 독일음식을 배울 기회가 생겼다. 독일인 친구 안드레아가 독일음식 코크쿠어스를 집에서 열기로 한 것이다. 독일어로 코크 쿠어스 Kochkurs는 익숙한 말로 쿠킹클래스, 요리교실이다. 안드레아는 작년 8월 한국에 근무하기 시작했고 그녀의 한국어 선생님은 나의 독일어 선생님이기도 했다. 우리는 그런 인연으로 만나 전시회, 클래식콘서트, 생일파티, 그녀의 집에서의 파티 등 가족, 친구보다 최근 더 시간을 많이 보낸다.


목요일 밤 카톡 방에서 그녀는 우리를 불렀다. 코크쿠어스를 일요일 2시에 자신의 집에서 열겠다는 것이다. 요리는 독일인들이 집밥으로 많이 해서 먹는 샐러드였다. Kartoffelsalat, Griecher Salat, Krautsalat 그리고 Kräuterbutter. 안드레아는 재료는 본인이 준비한다며 가져온다면 다음과 같은 것을 가져오라고 주문했다. “배고픔, 좋은 분위기, 쌈장…Sauce für Fleisch, Fleischzange, 무의 조리법 “이었다. 그녀의 후모아(Humor)는 사람의 마음을 춤추게 한다.


그렇게 우리는 일요일 오후 그녀의 집에 모였다. 봄에서 여름으로의 전환을 재촉하는 빗방울 소리가 오케스트라 음악처럼 리듬있게 귓전을 두드리고 있었다.


오늘의 강사: 인생을 ‘맛있게 사는’ 독일여성 안드레아

안드레아의 요리감각은 타고났다. 그녀의 어머니는 80이 넘었지만 음식에서 무엇이 베스트인지 아는 분이라 한다. 그녀의 할머니는 콘디토라이(Konditorei), 우리말로 제과점을 운영하였다. 그녀에게는 요리사로서의 유전자가 있다.


그녀는 부지런하며 액티브하다. 게다가 예술적 안목에 있어 창의적이다. 자신의 취향을 믿고 신뢰하며 그림을 사는 컬렉터이자, 밤베르크 심포니의 음악을 즐기는 클래식 애호가이자(물론 노래방에서 take on me, every breathe you take 등 나의 중고생 시절 즐겨듣던 팝을 샤우팅하며 부르는 팝 애호가이기도 하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 천명관의 <고래>를 즐겨읽는 한국문학 러버이다.


거기에 그녀는 경제학박사이자 독일 정부에서 정책을 15년 담당했던 전략가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외보다 법과 원칙을 존중하는 정확한 독일인이다. 카토펠살라트 소스에 들어가야 하는 150그램 요구르트의 양을 조리 저울로 재야 직성이 풀리는 부류다. 타고난 요리 DNA, 부지런함과 적극성(바로바로 치우기 때문에 그녀의 요리는 번잡스럽지 않고 아주 심플하다), 예술적 안목과 창의성, 정확성과 전략적 기획력. 이것이 어우러져 그녀는 쿠킹클래스의 여주가 된 것이다.


안드레아의 카토펠살라트 레시피
Trockner Kartoffelsalat
야채 국물 들어간 젖은 감자샐러드(Nasser Kartoffelsalat)


첫번째 요리: 카토펠살라트(Kartoffelsalat)

독일어로 감자가 카토펠(Kartoffel)이다. 독일인들이 빵만큼 많이 먹는 것이 감자다. 감자는 대항해시대 신대륙에서 유럽으로 넘어왔다. 처음에는 맛이 없다고 해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감자의 힘에 주목한 인물은 18세기 프리드리히 대제다. 전쟁 속에 국민들을 먹여살릴 수 있는 양식으로 감자를 지목했다. 권고령을 내리거나, 왕실 주변에 감자를 재배하여 격을 높이는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국민들이 감자를 심게 했다. 그렇게 감자는 독일의 대표음식이되었고 프리드리히 대제는 국민을 굶주림에서 벗어나게 한 왕으로 추앙받고 있다.(포츠담 상수시의 그의 무덤에 가면, 지금도 꽃과 함께 바쳐진 감자를 간간히 볼 수 있다고 한다)


안드레아는 커다란 냄비에 감자를 15개 정도 스팀으로만 찌고 있었다. 물에 담그지 않고 증기를 이용해 삶는 이유는 감자 안에 들어있는 미네랄과 비타민이 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 했다. 찐 감자를 식힌 후 먹게 좋게 썰어 두 개의 볼에 담아 소금을 넣고 섞었다.


두 개의 볼에 담은 것은 이유가 있다. 두 가지 종류(마른감자 샐러드, 젖은감자 샐러드)의 샐러드를 하기 위해서였다. 안드레아의 냉장고에는 각 샐러드의 소스 레시피를 정리한 메모기 꽂혀 있었다.


마른 감자 샐러드(Trockener Kartoffelsalat)는 양파, 크림치즈, 요거트, 머스타드, 오이피클, 8분 삶은 달걀, 후추, 소금, 설탕, 파로 소스를 만들어 찐 감자에 붓고 잘 섞어주는 음식이다.


젖은 감자 샐러드(Nasser Kartoffelsalat)는 물을 끓인 후 야채 분말과 작게 썬 양파, 식용유 등으로 야채국물을 만들어 소스로 사용하는 요리다.


소금을 넣을 때 안드레아는 그 맛을 강화시키기 위해 설탕을 '아주 쪼금' 넣으라 했다. 그녀의 어머니로부터 전수받은 요리 비법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에게 늘 “소금이 들어갈 때는 Not too much의 설탕을 꼭 넣으라“ 했다고 한다.


두번째 요리: 크라우트살라트(Krautsalat)

드뎌 양배추 요리다. 크라우트살라트는 독일인들이 사우어크라우트만큼 많이 만들어 먹는 샐러드다. 두 단계로 진행된다.


먼저 양배추를 씻어 얇게 썰고 소금으로 밑간을 하는 단계다. 한 단 한 단 소금을 한 꼬집씩 뿌려가며 단을 쌓은 후 간이 잘 배도록 잘 섞어준다. 그렇게 30분이나 한 시간 기다린다.


그 다음은 강하지 않은 화이트와인 식초(또는 오뚜기 현미식초)와 포도씨유를 똑같은 비율로 넣고 섞어준다. 안드레아는 우리의 현미식초가 아주 마일드해 음식에 사용하기 좋다고 칭찬했다. 현미식초의 위력을 새삼 실감했다. 다른 음식의 맛을 해치지 않으며 어우러지는 맛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비법, 설탕을 조금 넣는 것이다.


끝났나 했다. 그러나 끝이 아니었다. 소금에 약간 절였다 식초와 오일로 완성된 크라우트살라트를 두 개의 그릇에 나누어 담었다. 그 중 하나에는 독일인들이 애정하는 향신료를 넣어 감칠맛을 돋우는 것이다. 바로 큄멜(Kümmel)이다. 흑갈색의 씨앗이다. 독일산 큄멜은 인도의 아주 강한 향을 풍기지 않는다는 평이다. 독일인들은 향신료를 선호하지 않지만 이 큄멜에 대한 사랑은 극진해서 빵에도 발라먹을 정도라 한다.(안드레아는 독일에서 가져온 큄멜을 우리에게 한 봉씩 선물로 주었다. 이게 왠 횡재~)


큄멜이 들어간 크라우트살라트와 큄멜이 들어가지 않은 크라우트살라트. 각각 자기의 맛이 있어 각자의 팬들이 따로 있는 법이다. 난 큄멜 들어간 크라우트 살라트파다.


독일인들이 애정하는 향신료 큄멜


세번째 요리: 그리스샐러드(Griecher Salat)

그리스사람들이 시작한 샐러드다. 독일어로 그리스는 Griech다. Salat는 남성명사라서 형용사 Griech에 형용사형어미 er이 븥는다. 그리스샐러드의 독일어 발음은 그리혀 살라트이다.


그리스가 지중해에 인접해서인지 이 샐러드에는 통통하고길죽한 먹음직한 올리브색의 올리브가 듬뿍 들어간다. 방울토마토, 오이가 토막썰기로 들어간다. 염소젖, 양젖을 소금에 절여 만든 그리스 대표치즈 페타치즈를 주사위 썰기(Würfel Schneiden)로 썰어 올린다.


이제 소스다. 식초 대신 레몬을 즙을 내서 사용하기로 했다. 안드레아는 레몬 즙 짜는 기구도 갖고 있다. 일상에서 늘 해오던 모습처럼 레몬 착즙기구로 레몬즙을 내서 소스의 기본베이스를 삼았다. 이번에는 엑스트라 버전의 올리브유를 사용했다. 중간중간 맛이 들었는지 계속 간을 보면서 진행했다. 반찬 만들 때 양념을 섞고 계속 그 간을 보던 우리 엄마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그리스샐러드는 샐러드 중 가장 맛있어 보이는 색을 담고 있다. 빨강색, 녹색, 올리브색, 흰색의 색 조합이 아주 멋지다. 스푸만테나 샴페인을 부르는 맛이다.


레몬 착즙 그리스샐러드


네번째 요리: 4가지 약초버터(Kräuterbutter)

독일은 빵에 진심인 나라다. 최근 우리도 빵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고 다양한 빵을 만들어내는 파티쉐도 많은 나라다. 그러나 독일에 비할 바 아니다. 빵에 진심인 나라 국민들은 곁들일 버터도 다양하게 민들어 먹는다. 그래서 준비한 안드레아의 코크쿠어스 마지막 요리는 4가지 약초버터다. 바로 크뢰이터부터Kräuterbutter)이다.


안드레아가 직접 옥상에서 기른 애플민트, 스위트바질을 따서 버터에 들어갈 만큼만 잘게 썰어놓았다. 슈퍼에서 산 녹색 부추도 잘게 썰었다. 붉은색은 파프리카 분말을 쓰기로 했다. 거기에 생마늘 두세 쪽을 까서 다져놓았다.


우리는 각자 버터에 들어갈 양념들을 골랐다. 애플민트와 갈릭, 스위트바질과 사각사각 알갱이 소금, 파프리카 분말, 부추와 갈릭이다. 네 가지 유형의 약초버터가 만들어졌다.

파프리카분말이 들어간 Krauterbutter


갈릭, 다른 세계가 공존하게 하는 맛

우리가 고른 약초버터에 유난히 많이 들어간 게 바로 마늘이다. 독일어로 크놉라우흐(Knoblauch). 냄새가 고약해서 마늘냄새에 민감한 독일사람은 정말 싫어한다. 오늘의 쉐프 안드레아도 마늘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생마을은. 그런 그녀가 이 약초버터의 양념, Gewürz로 생마을을 준비한 것이다. 마늘 좋아하는 우리가 그녀의 눈에 밟힌 것이다. 독일 여성의 배려심이란 이리 가히 없는 걸까. 앙겔라 메르켈이 위험을 무릅쓰고 시리아 난민을 받아들인 제너러스한 그 모습을 보아왔던 그녀가 우리 앞에서 그 정신을 실천하고 있는 것인가.


한국인들의 마늘 사랑은 극진하다. 내 친구는 마늘을 무던히 좋아한다. 그런데 일의 특성상 주중에는 마늘을 먹지 않는다. 마늘을 싫어하는 독일인들과 주중에 만나 일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주말에만 마늘이 들어간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는 고충. 먹고사는 일의 어려움이다.


독일에서 10여년 공부하고, 결혼하고, 그림을 그려온 화가 후배는 익숙해진 독일에서의 작가생활을 내려놓고 한국에 돌아왔다.남편은 독일에서 박사를 하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직장에서 이국생활에 이제 한시름 놓을 만한 때였다.


이유는 생각보다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대학 졸업후 권위적인 한국사회가 힘들어 다른 세계인 독일로 떠났던초심을 잊어버려서도 아니다. 나고 자란 고향이 그리워서다. 특히 우리나라의 맛이 그리워서다. 마늘도 그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마늘을 먹고 싶어도 힘께 사는 룸메이크나 아웃 Nachbarn에게 불편을 주고 싶지 않아 먹지 않았을 것이다. 후배는 누구보다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싫어하는 성정이다. 한국에 돌아오는 공항에서 바람에 실려 코에 스치는 그 정겨운 마늘 향에 와락 안기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다른 어떤 나라보다 마늘을 좋아하지 않는 독일인들과 갈릭에 진심인 우리. 화해할 수 없는 취향의 세계다. 다르다. (아마도 이건 생선이라면 그 비림을 참을 수 없어하는 남편과 집에서 고등어구이를 너무 먹고 싶어하는 나의 관계만큼 ‘화해할 수 없는 세계'다) 이 다름 때문에 내 후배는 독일을 떠나 한국으로 복귀했다. 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다른 문화에 대한 배려가 있기에 안드레아는 우리를 위해 마늘을 준비했다. 되려 화해할 수 없는 세계로부터 나온 그 공존이 더욱 귀하다. 마늘은 그러한 존재다.


통찰이 있기에 나이가 들어도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있는 실험미술 작가 이건용 선생님의 말이 떠오른다.


“너와 내가 다르기 때문에 내가 너를 만날 이유가 있고, 너와 내가 다르기 때문에 살맛이 있고 너와 내가 다르기 때문에 서로가 도울 일이 있다.”. (이건용, MMCA 작가인터뷰 중에서)


너와 내가 다르기 때문에 도울 일이 있다고 생각하며 마늘을 준비한  안드레아. 독일에 가서 요리를 배울 수 없지만, 서울 속 특별한 독일 마을이 내게 생겼다. 안드레아에게 배우는 독일 요리. 쉽게, 편하게, 가볍게 따라하는 독일맛이 물씬 나는 요리. 오늘 사우어크라우트는 아니지만 크라우트살라트를 배웠다. 나의 방구석 독일, 크라우트살라트지만 괜찮아~


쿠킹클래스 후 함께 둘러앉은 안드레아의 식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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