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서점알바 10화

우동 한 그릇, 책 한 권

by 수경

저녁 7시 20분쯤 되면 책을 팔 생각은 접어진다. 겨울보다 여름은 조금 더 늦게까지 손님이 있지만 드문 일이다. 그러니 알바생의 마음은 7시 반이 지나면 이미 파장하는 심경이다. 그럴 때 들이닥치는 손님이 있다. 1차 끝내고 2차로 향하는 중인 사람들로 추정된다. 여럿이 들어서지만, 그들 중 책을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술 마시는 마음과 책 사는 마음은 겹치지 않을 것 같다. 술 마신 사람은 누구도 믿을 만하지 않으니 현명한 선택이기도 하다. 취객들은 간혹 과한 말을 남기고 떠난다. “꼭 다시 올게요.”


이건 확률의 문제인데, 늦게 온 손님, 특히 커플 손님은 책을 사지 않는다. 늦게 온 손님 중 책을 사서 나가는 경우는 혼자 오신 손님일 경우다. 급하게 그 책을 사기 위해 서점에 달려드는 경우는 책이 팔린다. 거의 99% 그렇다.


어제는 파장으로 이미 마음이 돌아선 때에 손님들이 들이닥쳤다. 게다가 술기운도 없는 서너 팀 십여 명의 손님이 서점에 가득했다. “어라, 매상이 좀 오르겠다.” 기대와 다르게 ‘역시’ 책을 사 간 손님은 없었다. 오히려 문 닫는 시간만 10분 늦어졌다. 이럴 때 ‘알바생의 마음’과 ‘애서인의 마음’이 겨룬다. ‘정시 칼퇴’가 알바생의 정체성이다. 모든 준비는 근무 시간에 끝내고 정시에 컴퓨터를 끄고 문을 닫는다(야호!). 책을 사고 읽는 일은 모든 인간에게 이롭고 옳다는 정체성을 가진 애서인은 늦은 손님도 ‘혹시나 혹시’ 하면서 기다릴 수 있다. 대체로 애서인이 승리하지만, 약속이 있거나 피곤할 때는 알바생의 정체성이 올라온다. 물론 손님에 대한 응대는 거의 같다. (속마음을 감추며) “천천히 둘러보세요.”


그러다 다른 정체성을 만났다.

알바 시작하자마자 들어온 손님이 있었다. 없는 듯 조용히 책을 오간다. 책을 오가는 사람도 두 종류로 나뉜다. 어떤 책을 사야 할지 모르는 사람과 사고 싶은 책이 너무 많은 사람이다. 이 손님은 후자의 모습이었다. 책을 꺼내고 읽고 넣고, 다시 꺼내고 읽고 넣고, … “너를 갖고 싶어. 만나고 싶어.” 중간중간 다른 손님들이 있었고 하던 일도 있어서 잠시 그 손님을 잊었는데, 7시 넘어서까지 계속 그러고 있는 것 아닌가. 사실 어떤 책을 골라오실지 기대하고 있었는데, 손님은 잘 봤다는 인사를 남기고 나갔다. 풀이 죽은 뒷모습이었다. 거의 3시간이나 보던 책들을 한 권도 가져가지 못하는 마음은 어떨까. 달려 나가 이렇게 말할 뻔했다. “저기요 저기, 한 권 드릴게요. 드리고 싶어요.” 이상한 여자라고 생각하겠지.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하겠지.


서점에선 ‘우동 한 그릇’은 불가능한 것인가. 구리 료헤이의 그 유명한 삼인분 같은 일점오인분의 우동 이야기가 생각났다. 음식점에선 가능하고 아름답기도 한 이야기인데 서점에선 불가능하고 이상한 이야기. 헛헛한 마음에 우동 한 그릇 먹고 집에 갔다. 한 권의 책도, 한 그릇의 우동도 우리를 채워주는 것들이다. 다음 주는 비가 계속된다고 하니, 손님이 없을까 걱정이다. 나, 다중이인가?! 내 안에 내가 너무 많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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