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서점알바 08화

완간서점이냐 완독서점이냐

by 수경

알** 중고서점이 여기저기 생긴 후에 ‘헌’책은 ‘중고’책으로 변신했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부산에는 보수동 책방골목이 있었다. 하교 후에 그 골목을 가끔 들르곤 했다. 책을 사러 가기보다 그곳을 거쳐서 영화관이나 떡볶이 가게를 갔었다. 그래도 그 풍경은 내 기억의 한편에 새겨졌고, 이후에 책방골목의 규모가 줄어들고 보존 바람이 불면서 달라졌다. ‘헌’책에는 헌책의 냄새가 있는데 그 냄새가 조금 달려졌다.


책값을 아껴야 할 시절도 지났다. 생각해 보니 어른이 된 가장 좋은 점 중에 하나다. 벌이는 변변찮아도 최소한 책값은 고민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더불어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술을 마실 때 술값도 편하게 내고 싶다. n빵 같은 거 말고, 그냥 혼자서 기분 내고 술 깬 아침 아주 잠시만 과용이라고 생각하고 지나치는 삶이 좋을 것 같다. 문제는 이 두 가지가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것이다!

책값만 벌어서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책과 더불어 살기가 힘들다. 언젠가 집이 줄어들면서 소장했던 책의 삼분의 일을 처분할 수밖에 없었고, 서울로 올라오면서 다시 삼분의 일을 처분했다. 누구 주기도 애매하달까 애달팠달까. 거의 울부짖으며(속으로!) 분리수거를 했고, 중고서점도 서너 차례 이용했더랬다. 그때 안 사실, 중고서점은 ‘중고’를 판매하는 곳이 아니었다. 본문에 몇 군데 이상의 흔적이 있으면, 표지가 더럽거나 바래면, 재고가 많아도 받아주지 않았다. 소설이나 베스트셀러는 거의 천 원이나 이천 원 정도의 균일가였다. 균일가 매입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다시 팔릴 때는 가격이 달라진다. 중고 가격으로 책을 사서 읽고 싶은 사람의 욕구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내 경험에 의하면 중고서점의 책은 전혀 ‘중고’가 아니다. 중고서점에 가보라. 흔적도 냄새도 없다.

후배들이 가까이 살 때는 가끔 책을 빌려 가곤 했는데, 내가 남긴 흔적, 메모나 표시에 한마디씩 했다. 신경도 쓰이고, 약간 부끄럽기도 했다. 그 흔적들이 ‘지금의 나’가 아니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가급적이면 따로 정리를 한다. 워드로 정리하거나 서평을 써버리기도 한다. 시간이 꽤나 걸리는 방식이다. 중고서점을 경험한 이후에는 더욱더 흔적을 남기지 않게 되었다. 전자책이 저장이나 비용의 측면에서 유용하겠으나, 나는 책의 물성을 사랑하는 인간이다. 그것까지 바꾸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생각한 서점, 무엇보다 소요서가에서 알바하면서 생각하게 된 서점은 <완독서적을 판매하는 서점>이다.


소요서가에는 대표가 발품을 팔아 구해온 철학 관련 헌책들도 구비되어 있지만, 내 관심은 아니다. 절판이나 오래된 책은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보기도 한다. 코로나로 물리적·심리적 장애도 생겼고, 책의 상태가 말이 아닌 것도 있다. 빌린 책에 흔적을 남기는, 그것도 남의 독서에 방해가 될 만큼 남기는 인간은 어떤 부류의 사람일까, 분노의 생각을 하다가 책 읽기에 방해받기도 했다. 실제로 그런 사람을 만난 적도 있다. 공부모임이었는데, 도서관 마크가 찍힌 책을 읽는 후배가 있었다. 그런데 그 책을 너무나 막 보는 것이었다. 아, 미안하지만 나는 그 후배랑 ‘책’ 모임을 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그 후에도 오래 하긴 했다. 도서관의 책은 많은 이들을 위한 공공재이자 유산이기도 하다. 그렇게 사적으로(!) 볼 거라면 반드시 책을 사라, 새 책이든 헌 책이든!

잠깐 옆으로 샜다. 서점에서 일하니 책을 조금 더 사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사는 속도와 읽는 속도의 불일치도 문제고, 무엇보다 공간 부족이 문제다. 서점을 거닐고, 공간 부족도 메울 수 있는, 책을 대하는 기본 습성이 흠이나 티 없이 볼 수도 있어서 생각한 서점이다. 흠 없이 읽은 책을 다시 서점에 가져오는 것이다. 기한은 많이 주지 않는다. 책을 사고, 3일 이내에 읽은 ‘재미나지만’ 집에 보관까지 하고 싶지 않은 책을 파는 것이다. 봤으니 중고 가격으로 판다. 하지만 흠이 없으므로 약간의 차감만 한다. 정가의 20~30% 정도. 돈으로 돌려받기보다는 다른 책을 구매하는 형식이면 좋겠다. 물론 그 책을 다시 구매하는 사람에겐 <완독서적>임을 알려야 한다. 추가로 가장 좋았던 대목이나 결정적 한 문장을 인덱스 스티커로 붙이면 둘 사이의 은밀한 교류도 되고 <완독서적>이라는 표시도 되지 않을까.

소설가 김연수의 로망이었던 완간서점―읽은 이의 메모와 표시가 흔적으로 남은, 약간 지저분한―에 구비할 두 권의 책이 백석이 안서 김억에게서 빌려와 읽은 김소월의 노트와 백석의 『사슴』필사본이었다. 김연수는 백석을 사랑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흔적을 좋아하고, 누군가는 흔적 때문에 책 읽기에 방해를 받는 것이다. 누군가가 중요한 셈이다. 남의 책을 보다가 그 책에 남겨진 필체에 반한 기억은 내 인생에 딱 한 번이기도 했다. 아름다운 필체는 갈수록 드물다! 내가 생각한 <깨끗한 완독서적>은 그걸 보완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서점의 사장님은 싫어할 서점이리라. 로망이다, 노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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