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서점알바 09화

애서가와 장서가

by 수경

당신은 책을 좋아하고 읽는 행위를 즐기는가? 그런 당신은 분명 애서가(愛書家)이다.

당신의 집에는 책이 많은가? 그렇다면 당신은 장서가(藏書家)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얼마나’의 문제를 벗어나면 누구나 독자, 독서인이다. 그런데 독서인도 여러 갈래도 나눠볼 수 있을 듯하다. 애서가(愛書家)와 장서가(藏書家)를 중심으로 심심파적 삼아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독서계를 하나의 무림으로 보자면, 가장 많은 부류가 애서가가 아닐까. 그 사랑의 방식이 참으로 다양할 것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행위부터 책을 만드는 행위까지, 독자에서 저자까지, 출판업자로부터 유통업자까지 무수한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책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다. 책을 읽음으로써도 사랑하고 읽지 않음으로써도 사랑할 수 있다. 사서 읽음으로써도 사랑하고 일 년에 한 권의 책도 사지 않아도 애서가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장서가는 좀 다르다. 장서가는 일단 가진 책이 많아야 한다. 자본주의적이지만 분노하지는 마시라. 자본이 많다고 곧바로 책을 쟁이지는 않는다. 물론 돈이 있고 적정한 규모의 집이 있으면, 품위 있는 서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장서가들은 수집가이거나 연구자일 경우가 많다. 물론 연구자이면서 수집가도 있다. 전북대학교의 강준만 교수가 이 사례에 속하지 않을까. 내 생각 속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책을 쓴 강준만 교수는 교수연구실 말고도 별도의 책과 자료들을 저장하는 공간이 따로 있다고 한다. 그것 없이 그 많은 저술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울러 장서가가 되려면 마니아나 오타쿠 기질이 반드시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정보를 수소문하고 발품을 팔는 일을, 반드시 손에 넣겠다는 실천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오래전에 장서가에 관련된 책을 읽었는데, 재미와 함께 공포를 느꼈던 기억이 있다. 일본의 어떤 장서가였는데, 책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주택이 무너진 이야기. 아마 목조주택이었을 것이다. 거기다 애써 수집한 수만 권의 책들이 화마에 사라진 이야기. 장서가에게 장소는 필수고, 그곳은 습기와 열기에 대비할 수 있어야 하겠다. 내가 소요서가에 와서 한 첫 걱정이 화재였다! (요, 이쁜 것들!!)


나는 아무래도 장서가는 될 수 없는 조건이지만, 분명 애서가이기는 하다. 어떤 애서가들은 장서가의 꿈도 꿀 것이다. 젊을 때 제본해서 읽었던 책이나 절판 후 다시 찍혀 나온 책들을 볼 때 특히 그렇다. 에리히 프롬의 책들은 시대를 넘어 출간되는데 표지가 변화무쌍하다는 것도 서점 알바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같은 책이라면 최신의 책들이 판형, 재질, 디자인 등 모든 면에서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번역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말이다. “병원이 병을 부른다”라고 말했던 어떤 생태주의자처럼 서점이 자꾸 책을 부른다. (아놔, 집 무너져!) 5년 전쯤 죽기 전에 다시 읽을 요량으로, (아니다! 솔직히 너무 예뻐서 구매했다.) 구매한 칸트의 ‘비판3부작+인간학’이다. 아름다운 장정이라 소장각이었다. 이 책 옆에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꽂혀있다. 1권을 넘겨본 적이 없으니까, 처음부터 읽을 요량으로 산 책이 아니다! 서점에도 칸트 ‘전집’이 구비되어 있다. 비판 이전, 유고까지 수십 권은 된다. 그것들을 보고 있노라면 약간의 경의와 함께 마음으로 질리곤 한다. 다만, 경의와 질림 속에서 무엇을 누군가를 안다는 것에 대한 자만도 옅어졌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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