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가 사라지지 않아도 괜찮아

ADHD 를 업으로 삼은 사람

by 지엔


ADHD는 완치가 되나요?”


많은 사람이 묻는 질문이다. 그런데 이 질문 안에는 오해가 숨어 있다.

사실, 결론은 간단하다. ADHD의 올바른 치료목표는 “없어지는 게 목표”가 아니라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는 게 목표”가 되어야 한다.


왜냐?

ADHD는 감기처럼 생겼다가 없어지는 질병이 아니기 때문이다. ADHD는 뇌 발달 특성이고, 타고난 신경 유형 중 하나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ADHD는 낫는다”는 표현 대신“기능이 회복된다” 또는 “삶의 적응력이 향상된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그렇다면 ADHD가 나아진다는 건 뭘까?

그건 증상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증상이 삶을 망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다르게 말하면, ADHD가 낫는다는 건 ADHD가 나를 끌고 다니지 못하도록

내가 내 삶의 핸들을 잡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그건 이런 모습으로 나타난다:

->미루더라도 결국 해내는 사람

->감정 폭발 대신 감정을 다루는 사람

->자기혐오 대신 자기 이해로 가는 사람

->루틴이 한 번 무너져도 다시 일어나는 사람

->나에게 맞는 전략과 환경을 만든 사람


요약하면, ADHD 치료의 핵심은 증상 제거가 아니라 “기능 회복, 자기 운영 능력, 자기 삶의 회복” 이

진짜 목표가 되는 것이다.


올해 1월에 ADHD를 진단받았다. 2월에 새로 들어간 회사에서는 두 달 만에 권고사직을 당했고, 3월에 시작한 대학원에서는 과제를 받은 날부터 계속 붙잡고 있음에도 늘 기한을 넘겨 헐레벌떡 제출하곤 했다.

그 시기 나는 정말 ADHD를 어떻게든 이겨내고 싶었다. 아니, 벗어나고 싶었다.


그와 동시에 묘한 감정도 느꼈다. 사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늘 이런 방식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주의가 흐트러지고, 해야 할 일을 미루고, 머릿속은 항상 여러 생각이 동시에 돌아가 혼란스러웠다. 그런데 주변에서는 늘 이렇게 말했다. “제대로 집중 좀 해.” “너는 마음만 먹으면 잘할 애야.” “대체 왜 그러는 거야?”

그 말들이 상처가 되기보다 더 힘들었던 건, 나조차 나를 설명할 언어가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답답함은 평생 나와 함께였지만,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데 ADHD 진단을 받고 나서야 처음으로 내가 왜 그런지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건 오랜 시간 나를 괴롭히던 의문이 풀리는 순간이기도 해서 솔직히 좋았다. 드디어 내 삶에 설명이 가능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해와 동시에 또 다른 문제와 마주했다. ADHD라는 사실을 안다고 해서 내 삶이 갑자기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증상은 여전히 지금 이 순간에도 작동하고 있었다. 회사에서는 업무의 우선순위를 정하지 못해 시간을 잃었고, 마감이 다가오면 갑자기 숨이 가빠지며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수십 번 마음을 다잡아도 실행이 되지 않는 나 자신에게 점점 지쳐갔다. 그 모든 게 여전히 내 일상이었다.

게다가 또 다른 어려움이 나를 흔들었다. 약을 먹는데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는 실행력 문제, 그리고 사람들의 말이었다. “너 ADHD 아니야.” “약 먹지 마.” “네가 무슨 ADHD야?”

나는 어느새 ‘내가 왜 이런지’뿐 아니라 ‘내가 ADHD라는 사실’까지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래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미친 듯이 파고들기 시작했다.

나를 설명하고 싶었고, 누군가의 의심 앞에서 침묵하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내 삶을 이해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ADHD를 설명하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다. 처음엔 주변 사람들에게 나를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하지만 학습이 깊어질수록 오히려 가장 많이 흔들린 사람은 나 자신이었다.

ADHD는 ‘노력 부족’이나 ‘의지 문제’가 아니라 실행 기능(Executive Function)의 어려움에서 비롯된 신경학적 특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게으르고 산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사실은 뇌가 정보를 처리하고 행동을 조직하는 방식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사실을 이해하자 내 삶의 장면들이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미루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인지-행동 전환(activation)이 어려웠던 것이고, 계획을 세우고도 실천하지 못했던 건 작업 기억과 시간 처리의 어려움 때문이었다. 사람들의 말을 중간에 끊은 건 무례해서가 아니라 충동 조절의 어려움, 해야 할 일을 앞두고 과도하게 긴장했던 건 정서 조절 시스템의 과부하 때문이었다.

문제의 원인을 이해하자 비로소 나를 미워하던 마음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공부의 목적이 변했다. ‘증명하기 위해’가 아니라 ‘살기 위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실행 전략, 시간관리 구조화 기법, 코칭 모델(STAR, GROW, STARMIND), 바클리의 실행기능 이론, ADHD 뇌과학 연구, 그리고 실질적인 삶의 개입 방법까지 파고들었다. 그러다 정보가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또 다른 현실과 마주했다. 사회에는 ADHD에 대한 왜곡된 정보가 너무 많았다.

“ADHD는 변명이지 병이 아니다”, “요즘은 다 ADHD래”, “약은 독하다” 같은 말들이 아무렇지 않게 떠돌았다.


진짜 문제는 ADHD가 아니라, ADHD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는 사회였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방향성을 갖게 됐다.

나 같은 사람들이 더 이상 설명해야 하는 위치에 서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방향성 말이다.


그러면서 나는 한 가지 결심을 하게 됐다.

"이제는 나 혼자만 살아남는 법을 찾는 게 아니라, 나처럼 헤매는 사람들에게도 길을 보여주고 싶다."


ADHD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다. 정보의 부재, 왜곡된 시선, 환경적 결핍이 얽혀 만들어진 사회적 문제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필요한 건 비난이나 훈육이 아니라 이해와 구조화된 지원, 그리고 실행 전략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익혀온 것들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사람, ADHD를 설명하고 다루는 방법을 함께 찾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단순히 이론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 삶의 언어로 ADHD를 해석할 수 있는 사람 말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상담과 코칭이라는 길을 선택하게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그게 직업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살아낸 이야기를 다시 누군가에게 건네는 일이었다.


나는 ADHD는 의지 부족이 아니라, 자신의 특별한 뇌에 대한 이해의 문제라는 것을 확신한다.

그리고 실패의 문제가 아니라, 뇌 운영 전략의 문제라는 것을 단언할 수 있다.

그동안 나는 나를 바꾸기 위해 싸워왔지만, 이제는 방향이 달라졌다.

나를 고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이해하고 다루는 법을 배우는 것—그게 진짜 변화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코칭과 심리상담을 모두 함께 다룰 수 있는 조력전문가의 길을 선택했다.

단순히 정보만 알고 있는 이론가가 아니라, 경험과 전문성을 함께 가진 상담자가 되기로 다짐했다.

감정 조절이 어려운 사람이 왜 감정코칭이 아니라 실행 전략부터 필요할 때가 있는지 설명할 줄 알고,

“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도 시작하지 못하는 내담자를 책임감 부족이 아닌 실행기능 문제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 바로 그런 상담자이자 코치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너무나도 증상이 다양하고 개인마다 천차만별인 ADHD 증상을 사람들이 함께 나누고 전문적인 정보를 얻어갈 수 있는 온/오프라인 ADHD 플랫폼도 운영시킬 생각이다.


그리고 한가지 깨달은 것이 더 있다. 이건 단지 나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문제라는 것이다.

ADHD는 혼자 살아내기엔 너무 설명하기 어려운 세계였다.

지금 사회는 여전히 ADHD를 편견으로 판단하고 있다.

정보는 난무하지만 정확한 전문 지식은 부족하고,

지원은 있지만 실제로 삶을 바꾸는 방법까지 안내해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래서 결심했다.
나는 이해를 연결하는 사람, 정보와 삶 사이의 브릿지를 만드는 사람이 되겠다.
ADHD 당사자의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전문가가 되겠다.


물론 오늘도 나는 립밤을 집에서 들고 나오리라 다짐했지만 립밤이 없다는걸 차에 타서 알았고,

차량 운전석 손잡이에서 내가 둔 기억이 없는 내가 사용하는 신용카드를 발견했으며,

그 카드를 주머니에 넣고온 줄 알고, 편의점에서 알바하면서 만나서 결제로 점심배달을 시켰는데,

배달기사님이 오셨을때 그제서야 카드를 차에 두고왔다는 사실을 깨달은 나이다.


내 삶은 ADHD 로 인한 구멍의 연속이지만, 그래도 나는 이 친구를 굳이 떠나보내지 않을 생각이다.

다만 내 삶에서 적절하게 기능하도록 다루어 갈 녀석일 뿐이다.

월, 화, 수, 목,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