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3년 차에 밴드부에서 보컬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정도의 실력은 아니었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남들 눈치를 잘 살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어렸을 적 애정결핍의 크기가 조금 컸던 것 같습니다. 누구에게나 사랑을 받고 관심을 받고 싶은 욕망이 컸었죠. 애정결핍의 근원지는 아마도 아버지의 부재였던 것으로 예상합니다. 어머니와 이모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차고 넘치는 사랑을 받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아버지의 사랑은 받을 수 없었으니 말이죠.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애정결핍이 생겨나고 그 부분을 친구들과 연인들에게서 많이 채우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여기서 가장 많이 발현되는 능력은 바로 상대를 '관찰'하게 되는 것입니다.(저는 그러했습니다.) 미움받고 싶지 않다는 것은 그 사람이 무언가를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잘 알고 있어야 한다고 본능적으로 느꼈던 것 같습니다. 이 친구는 이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구나, 저 친구는 어쩌고 저쩌고... 였습니다. 그렇게 저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밝은 인간이 되어있었습니다. 여기저기 다른 여러 무리에도 속하게 되었죠. 이런 경험은 제가 노래를 뛰어나게 하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밴드부 보컬의 자리를 꿰차게 되었던 것입니다. 선생님과 다른 친구들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에 대해 알고 있었으니 부족한 실력을 처세술로 메꾸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게 밴드부의 활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스스로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내 노래가 부족하구나.' 하고 말이죠. 여기서 부족하다는 것은 밴드부 보컬의 자리를 차지하기에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이미 시작한 이상 멈출 수는 없었고 무대에서 수많은 삑사리와 흑역사를 남겼습니다. 그래도 노래가 좋았기에 고등학교를 진학한 뒤에는 어머니에게 노래를 배우고 싶다고 졸랐습니다. 그렇게 건너 건너 작곡가 선생님을 만났고 노래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 옆 동네에 노래 실력이 아주 뛰어난 친구가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고 우연히 노래방에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의 기억은 아직까지도 제 인생에 큰 충격 중에 하나입니다. 같은 나이의 고작 3개월 먼저 태어난 친구였지만 정말 말 그대로 다른 차원의 수준이었습니다. 부끄러웠고 시기와 질투를 느끼게 되었고 또 오기까지 생겼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경쟁이나 무언가에 집착해 본 경험이 없던 저로서는 인생의 첫 패배감을 느낀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혹은 정확하게 경험한 것일 수도 있죠. 저는 곧바로 작곡가 선생님을 찾아가 제가 겪은 일에 대해 설명을 드리고 "정말 노래를 잘하고 싶습니다."라고 악을 질렀습니다.
한 달. 정확히 한 달이 되었을 때 어머니가 제게 말씀하십니다. 집안 사정이 좋지 못해 노래 수업을 이어갈 수 없을 것 같다고요. 그렇게 미안한 표정은 처음 봤습니다. 그 문장을 입으로 뱉지 않고 표정만으로도 모든 걸 전달. 아니, 그 이상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곧바로 답하였습니다. 괜찮다고요. 어머니께서 저와 제 동생을 얼마나 사랑하고 모든 것을 주고 싶어 하시는지 충분히 알고 있었고 또한 저는 마냥 착한 아들은 아니었기 때문에 바로 수긍하는 편이 효도의 한 부분이라고 까지 생각했습니다. 저는 정말 괜찮았습니다.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머니께서 선견지명이 있으셨던 건지, 제가 만약 고집을 피워 노래 훈련을 꾸역꾸역 해왔다고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 거리네요. 그 계기로 저는 가벼워진 마음으로 그 친구와 베스트 프렌드가 되어 즐겁게 노래하는 고등학생 시절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추후에는 그 친구에게 또 노래도 배우게 되고 옆에서 영향을 많이 받아 아직도 듣는 좋은 노래들도 많이 알게 되었고 꾸준히 듣고 부른 탓에 귀가 많이 열린 것 같습니다. 이러한 과정들로 인하여 앞서 말씀드린 작곡가 친구에게 영향을 끼치는 카페사장이 된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