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14일 무더위를 넘어간 갈색의 계절. 인천 송도의 어느 공사 현장에서 숙식을 할 때였다. 무슨 무슨 연구소를 짓는다고 했던 것 같은데 이름은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지만, 그날은 나의 생일이었기에 날짜만은 잊을 수가 없다. 그 당시 나는 금속팀에 속해 있었는데, 그날 아침 반장님께서는 새로운 인원이 투입이 될 예정이고, 나와 비슷한 또래라며 잘 챙겨 달라고 했었다. 팀에서 막내였던 나는 설렘과 동시 약간의 불안함도 느끼며 그를 기다리는 시간을 가졌고, 그는 늦지 않게 현장에 도착했다. 평범한 체구에 조금 까무잡잡한 피부와 날카로운 눈매와 두터운 입술을 가지고 있었고, 이내 등을 살짝 굽히며 작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반장님과 형님들은 거칠고 따뜻한 인사로 환영해 주었고, 나를 따라다니며 일을 배우면 된다는 말과 함께 담배를 끄고 아침 조회장으로 향했다.
수백 명의 인부들과 함께 국민체조를 하고 안전 관련하여 몇 가지 당부를 듣고서 각자의 위치로 흩어진다. 인파 속 나는 새로 출근한 사내에게 다가가 몇 가지 질문을 건넸다.
“아,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민똥입니다.”
“네?”
“죄송해요. 김민성입니다.”
“아… 네. 줄자랑 샤프 챙기셨나요?”
“네, 챙겼습니다.”
그렇게 아주 짧은 첫 대화가 민성이 형과 첫 만남이었다. 나보다 한 살이 더 많은 나의 후배 김민성은 장난기가 많다 못해 넘쳐흘렀다. 첫인사에서 자신의 이름을 민똥이라고 이야기한 것은 실수가 아니었으며, 끓어오르는 장난기를 감추지 못한 것일 뿐이었다. 이제는 형의 장난을 이해할 수 있지만, 알아가는 기간 동안에 난감한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리고 첫 출근한 날이 자신의 생일이라고 했던 것은 아직도 의심을 하고 있다.(매년 생일을 함께 축하하고 있지만) 우리는 이상하리 만큼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 김민석, 김민성. 생일은 9월 14일. 둘 다 가족 없음. 같은 담배 등 작고 사소한 것들이 무수했다. 그러한 연유로 금세 가까워지는 것은 물론, 그것을 넘어 모종의 특별함 마저 느끼게 되었던 것 같다. 마치 가족처럼. 하지만, 사실 나는 가족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잘 알 수가 없었다. 가져 본 적이 없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연하게 ‘가족이 있다면 이런 느낌일지도 몰라.’했는데, 사실! 아주 오래전부터 ‘가족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