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다’는 식의 사고는 제게 굉장히 위험했던 것 같습니다. 마땅히 사용할 수 있는 형용사이지만 가볍게 여긴다면 독이 될 수도 있다고 해야 할까요? 어떤 상황이나 사건, 관계에 있어서도 합리화를 하기에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본질을 파악하기보다는 그 순간 마음을 편히 만들기 좋았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나는 이런 사람이야. 그러니, 난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 아니야?”라고 대답한다면 상대방은 대화 의지를 잃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 예상됩니다. (예를 들기 위해서 적어놨지만 읽는 것만으로도 답답합니다.) 또 저번 이야기와 연결을 지어 보자면, ‘가족이니까 당연히 사랑해야지. 혹은 가족끼리 당연히 이해해야지.’와 같은 생각들은 또 어떤가요? 제가 보기에는 너무 일방적인 형태로 보입니다. 관계라는 것은 나와 또 다른 누군가와 맺어지는 것인데 말이죠. 주고받는 것. 상호 간에 존중이 필히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제 과거에서 당연하다는 식의 사고를 가졌던 것은 존중하는 법을 잘 몰랐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내가 나를 존중하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데 과연 상대를 존중할 수 있냐는 것이죠. 우리는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믿고 사랑하는 것을 여러 경로를 통해 접하게 됩니다. 도대체 ‘나를 사랑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적확한 공식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혼란을 불러일으킵니다.
저는 첫째로 저의 장단점을 분리했습니다. 내가 인정할 수 있는 장점 몇 가지를 되새김질하고 상기시켰습니다. 여기서 내가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것들과 나를 제외한 주변에서 일러 줬던 장점이 맞물린다면 인식하는데 더욱이 도움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믿으려 노력해야 합니다. (이런 마음의 영역 또한 훈련을 한다면 분명한 성과가 있습니다.) 그래야만 마음의 변화가 생기는 것이죠. 다음으로 단점은 사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고된 일이었습니다. 거울 앞에 서서 건너편의 나를 바라봅니다. 분명히 ‘나’이지만 내가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 마구마구 차올라 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모습 또한 내가 맞습니다. 그런 모습을 인정하고 싶지 않고 바라보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외면한다면 미래에 더 큰 아픔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어느 날, 문득 잊고 싶었던 기억이 회상되는 그날에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