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들국화 Sep 29. 2024

저는 쫓기듯이 살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경쟁, 투쟁과는 거리가 멉니다. 만약 10명 중 9명이 "그래도 경쟁을 해야 살아남지."라고 하여도 지금의 나는 나의 선택과 속도를 즐깁니다. 때때로 제 자신을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꺼내는 이야기가 있습니다.(그런 상황이 잦지는 않습니다.) 나는 게으르고, 느리다는 이야기를 꼭 꺼냅니다. 단점일 수 있지만 장점으로 발전하는 내 자신을 믿는 것이죠. 과거에는 등 떠 밀리듯 하게 되는 결정과 선택이 적지 않게 난무하였습니다. 그렇다 보니 원하지 않는 결과들을 수두룩하게 경험하기도 했죠. 그런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는 제 마음속에는 원인과 과정 그리고 결과까지 모든 것을 탓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탓의 대상은 외부에 많이 있었습니다. 스스로 준비가 되지 않았고, 원하지 않았던 상황에서 외부의 압박으로 인한 것들이 많았습니다.(물론 온전한 저의 선택도 많았습니다.) 저는 그렇게 누군가를 탓하기도 하였지만 혼자 속앓이만 하였던 경험도 여러 번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화살은 스스로의 대한 혐오로 이어집니다. '자존감'이라는 녀석은 "내가 어디까지 내려갈 수 있는지 잘 지켜봐." 하며 말 그대로 '심연'으로 숨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저는 인간으로서 존재의 의미와 여부,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까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의 저는 20대 중간 어디쯤에 있었습니다. 많은 실패와 후회의 마지막 화살은 정확하게 '나'라는 과녁 '심장'에 적중합니다. 지친 몸과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채로 어딘가로 향했습니다. 아무렇지 않은 척 밥 한 끼 얻어먹으러 말이죠. 도착한 어머니의 집. 정말 최선을 다해서 "난 아무 이상이 없고 그저 맛있는 밥을 먹는 아들이야!"의 연기를 하고 있는 제게 어머니가 묻습니다. "아들, 무슨 일 있어?" 한 마디에 눈물 잠금장치는 펑! 하고 터진 것처럼 혹은 갓난아기가 눈물 콧물을 쏟으며 우는 것처럼 울어댔습니다. 많이 놀란 어머니도 저를 따라 함께 눈물을 흘리며 꼭 안아주셨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부둥켜안고 있었죠. 이후로 '나'에게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가족의 사랑'이 짧은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서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지는 않겠죠? 저는 더 깊은 가족의 사랑에 대하여 생각하게 됩니다. 당연시 여겼던 가족의 사랑 앞에서 저는 부끄러웠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