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루스라는 영원의 안녕을 내 마음속의 이상에게

<천공의 성 라퓨타>

by 머묾


바루스라는 영원의 안녕을 내 마음속의 이상에게

<천공의 성 라퓨타> ★★★★☆

'하늘로 띄울 순수함의 힘으로, 파괴가 아닌, 순수함을 네게로'




멸망의 주문 '바루스'..


라퓨타를 붕괴시킨 건 단 한마디였다.

고대 문명인 라퓨타를 멸망시킬 주문이

이토록 짧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주인공 '파즈'는 광산촌에서

기계 견습공으로 일하던 도중,

시타의 라퓨타로 이어주는 비행석을 노리던

정부와 해적들한테서 도망치다 의식을 잃은

'시타'를 그들로부터 구하면서

라퓨타를 향한 파츠와 시타의 모험이 시작된다.





라퓨타는 전설 속에 존재하던 하늘섬으로,

고대 문명의 흔적과 그 문명이 남긴

막대한 보물이 잠들어있다는 전설이었다.


전설일 뿐이었지만,

하늘에서 라퓨타의 로봇이 떨어지며

군대는 라퓨타의 존재를 확신하게 되었고

시타가 갖고 있던 비행석을 노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멸망의 주문이 이토록 짧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는 순수함뿐만 아니라

한 가지의 메시지가 하나 더 있다.



라퓨타의 사람들은 진보된 과학기술을 가졌음에도

라퓨타의 정원을 지킬 로봇을 만들 정도로

자연을 사랑하고 또 사랑하였다.





라퓨타는 분명 과거 인간이 만든 문명이고 장소였다.

그렇지만 라퓨타를 향한 욕망과

보물을 얻기 위해 라퓨타를 훼손하는 모습을 보며

인간과 어른들에게 느끼는 혐오의 감정.



그것이 숨은 메시지 하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러한 감정을 느끼는 것은 무엇이고 왜일까



지브리의 '천공의 성 라퓨타'를 포함한

'모노노케 히메',

'하울의 움직이는 성'과 같은 작품들에서

이러한 인간 혐오와 비슷한 감정이 느껴지는 것은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가

여러 작품에서 보여준 패턴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모노노케 히메'에서는

자연을 훼손하는 인간의 추악한 모습을,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는

인간들의 무의미하고 잔혹한 전쟁의 피해를,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는

인간의 폭력성과 자기중심성을,


그리고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는

인간의 탐욕과 로봇보다도 못한

본성을 보여주며 비판을 해왔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저 인간을 싫어하는 것이 아닌,

인간을 사랑하기에 포기 못했고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이러한 인간들의 모습에도 놓아주지 못하는 하야오는

작품 속 멸망의 주문을 넣어두며 순수한 어린아이인 '파즈'와 '시타'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그리고 라퓨타의 기술로 피해를 주기 싫었던 시타는 라퓨타의 붕괴를 택하게 된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인간을 끝내 믿지 못하면서도,

언제나 인간의 순수함만을 담고있는

아이들의 손에 세상의 미래를 쥐여준다.



그리고 그런 순수한 아이들인,

파즈와 시타가 라퓨타를 무너뜨린 건

기술도 폭력도 아닌,

오직 순수한 마음의 결단이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파괴의 서사가 아니라,

세상을 지켜내기 위한 마지막 선택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렇기에 미야자키는 오히려

간결함 속에 감정을 압축해 둔 것이다.

길고 복잡한 주문은 '의식'이지만,

짧고 즉각적인 건 '결단'이다.



마치 “안녕”이라는 말이

한 마디로 이별을 말할 수 있는 것처럼.

한 마디라서 잔혹하고,

한 마디라서 오래 남았다.



이상은 무너졌다.

그러나 그 무너짐 속에도,

파즈와 시타는 끝내 지켜낸 순수함이 있었다.



그런 감정 하나쯤은

현실에 치여 살아가

우리의 마음속 라퓨타에도 남아 있는 걸까.


그리고 그대의 마음에도... 아직 이상은 존재하는가





바루스라는 영원의 안녕을
내 마음속의 이상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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