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가치에 젊음이란 미래를

<코쿠리코 언덕에서>

by 머묾

역사의 가치에 젊음이란 미래를

<코쿠리코 언덕에서> ★★☆☆☆

“살아있다는 건 누구에게나 미래가 있다는 것.

뒤돌아보면 거기에 미래가 있다.”



<코쿠리코 언덕에서>는 주인공 ‘마츠자키 우미’와

학교 선배인 ‘카자마 슌’의

전쟁 후 격변하는 일본의 한 한적한 바닷가 마을을

배경으로 한 사랑이야기이다.



표면적으로는, 패전 후 도쿄 올림픽을 앞둔 일본의

1960년대를 겪은 사람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열정적이고 풋풋한 사랑이야기를 담았다.



그 시대를 제대로 반영하듯,

마치 대학생과 같이 사회의식이 높고

적극적이었던 당시 고등학생들의 모습으로

일본 운동권의 전성기를 주도하던 학생운동을

지브리만의 색으로 역동적이고

생동감 있게 잘 나타내었다.





“오래됐다고 없애는 건 과거의 기억을 버리는 거야.

사람이 세상에 태어났다 죽는 걸 무시하는 거라고! “



애니메이션에서 다루는 역사의 중요성은

나에겐 꽤나 신선한 소재로 다가왔다.



영화의 전반적인 메시지에 걸맞게

영화 초반, 카자마 슌이

학교 동아리 건물 철거를 반대하기 위해

학교 건물에서 다이빙을 하는 장면으로

영화의 시작을 알리며

학교의 오래된 전통 중 하나란 설명과 함께

영화의 주제를 학교의 전통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시작부터 이러한 장면을 보여주는 것은

학교의 역사와 과거부터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물려준

동아리건물을 중심으로 학생들의 모습을 통해

역사의 가치에 대한 중요성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후 동아리 건물에 대한 토론에서의

카자마 슌의 대사.



“새로운 것에 매달려 과거를 무시하는 네 녀석들에게 무슨 미래가 있지?”





주인공을 포함한 많은 학생들이

사랑하는 동아리건물의 역사를

보존하기 위한 말과 행동들을 통해

역사를 잊으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그렇지만 부과적인 설명도 없이

관객이 생각을 정리할 틈을 주지 않는 전개는,

영화의 시작과 엔딩에서 특히 아쉽게 느껴졌다..



특히 여러 요소를 고려했을 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지브리의 두 영화

‘바람이 분다’, ‘귀를 기울이면’ 급의

영화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개인적으로 더욱 이 영화가 아쉽다.



그렇다면 정확히 어떤 점이 아쉬웠던 걸까.



영화 제작 당시

50~60대의 사람들이 공감할 시나리오를

‘미야자키 하야오’는 40대인 자신의 아들 ‘고로’에게

감독을 맡긴 것이 이 영화의 첫 실수라 보면서도

이 시나리오의 한계라 본다.



훌륭한 영상미, 그 시절의 감성,

역동적이면서도 재밌는 애니메이션,

OST가 있었음에도

분명하지 않은 영화의 정체성과

핵심적인 내용을 위한 구체적인 설명 없이

빈약하게 영화가 끝나버리는 등,

끝내 미야자키 하야오의 명성에 걸맞은

지브리의 영화는 되지 못하였다.



애초에 그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킬

목적으로 만들었는데,

향수는 60대를 겨냥해 놓고 실관객층인

10대, 20대에겐 너무 먼 얘기이었다.



그리고 특히 20대의 한국인인 나에겐

오래 머물지 않았던 영화이다.



오히려 그 시절을 회상하며 그리워만 해야 할

이야기가 아니라.

주인공의 사랑 얘기를 중심으로

극적인 갈등구조로 관객들의 기억에 남을 장면들,

주인공들의 사랑을 확실히 다지는 장면 등을

넣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그렇지만 영화 속 메시지는

우리의 과거와 미래를 위해

충분히 생각해 볼 만한 주제임은 분명했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곳은,

단순히 지금의 공간만이 아니라

수많은 시간의 층들이 쌓여 만들어진 것.


새로운 것에 매달리며 과거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과거 위에 새로운 것을 덧대어야

진정한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영화 내내 학생들을 통해 우리에게 전했다.



학생들의 역사 그 자체인 동아리 건물은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잊혀가는 기억 속에서도 서로를 이어주고

시간을 연결해 주는 다리 같았다.



마음 한편에 잠들어 있던 작은 기억들,

그 기억들이 하나하나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 기억들이야말로

살아가는 이유가 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해 준다.





영화를 보며, 우미와 슌이 이복남매였다고 오해하는

충격적인 전개에

불필요한, 너무 과한 설정이라 느꼈지만,

우미와 슌의 오해를 푸는 과정에서

왜 이런 설정을 넣었는지

조금은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동아리 건물이란 소재는

누군가의 시간과 기억들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었다.

그런 기억 위에 지어진 동아리 건물은

우리를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지금까지의 나의 노력과,

내가 알지는 못하더라도

내가 존재할 수 있게 해 준 모든 사건들이

누군가의 기억 속에 존재하기에

나는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다



슌도 이와 같이 본인은 몰랐지만

부모님이 항해를 하다 죽은 친구를 위해

아이를 대신 키워주게 된 데에서부터 시작된 오해였고

누군가가 그 기억을 안고 살아갔기에

오해도 풀 수 있었다.





비록 이야기의 전개는 아쉬움이 남았고,

흥미로운 갈등 구조는 부족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깊은 메시지는

나를 붙잡았다.



“살아있다는 건 누구에게나 미래가 있다는 것.

뒤돌아보면 거기에 미래가 있다.”



마치 스쳐 지나가는 한 줄의 대사처럼 들렸지만,

이 말은 내 마음속에서 잔잔히 파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런 파문이

내가 당장 느끼진 못하더라도,

언젠가의 나를 바꾸었을까.



그래서 언젠가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된다면

그때의 나는 지금과는 또 다른 눈으로,

또 다른 감정으로,

다시 이 언덕 위에 서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때의 나는,

이 글을 쓰는 지금의 나보다

조금은 더 과거를 이해하고,

조금은 더 미래를 사랑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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