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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호영 Apr 29. 2022

7. 오월이 오면

 

 


 신록이 아름다운 오월이 오면 어김없이 그때의 기억이 찾아온다.

 개교기념일이 오월의 가운데에 있었다.

 그날이 다가오면 일 년 중에 오로지 나 혼자만이 즐길 수 있는 보너스 같기에 무엇을 할까 며칠 전부터 궁리를 한다.

 오래 전의 그 해에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뒹굴뒹굴하면서 나도 여유로움을 만끽해 보리라 하고 내심 부풀어 있었다.

 아침 6시면 일어나던 것도 느긋하니 일어나 남편 출근과 아이들 등교를 도와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느긋함은 항상 팽팽하게 긴장되었던 세포들이 가벼운 콧노래를 부르는 듯했다.

 그런데 시간이 되었는데도 남편이 일어날 생각을 안 하는 것이다.

 “이봐요.일어나요”

 “응.회사 안 가.”

 “뭐 라 구 요? 안 간다니 그게 무슨 말이 예요?”

 “휴가 냈어.”

 “아니,왜 휴가를 내요? 무슨 일 있어요?”

 “으응,자기 오늘 개교기념일이라고 했잖아.”

 “내 개교기념일에 왜 자기가 휴가를 내?”

 “자기가 심심할 것 같아서 놀아 주려고.”

 아 뿔 사! 이게 무슨 일인가? 세상에나 아무 소리 하지 말걸.

 왜 학교 안 간다는 말을 미리 했을까? 그럼 내 계획은?

 하나,이미 엎질러진 진 물. 어휴,내 팔자야.

 내년부터는 절대로,절대로 말하지 않으리라.

 눈치코치 지겹게 없는 사람은 혼자만 신이 났다.

 한 술 더 떠서 남한 산성으로 놀이 가잔다.

 이런 날은 비라도 오면 좋으련만 날씨는 왜 이리 화창한지.

 속이 부글부글,와글와글 끓어올라와 뜨거운 김이 입으로,코로 나오고 있었다.

 말도 못 하고 소 고삐 잡혀 끌려가듯이 갈 수밖에 없는 신세.

 그러나 남편은 나를 위해 크게 선심을 쓰는 듯 아주 기분이 째졌다.

 붉은 자주색 차를 타고 남한산성에를 갔다. 평일이라서 인지 한산했다.

 음식점 앞에 이르니 종업원이 제일 구석의 어둑한 방으로 안내한다. 앞 쪽의 방도 비어있는데 아마도 예약이 되어있나 보다 하고 따라 들어갔다. 그러나 점심을 다 먹고 나올 때까지도 그 방들은 비어 있었다.

 ‘이상도 하지?’ 혼자 중얼대다가 ‘아하,그거였구나.’ 하고 웃으니 남편이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평일 대낮에 선 그라스 낀 여자가 붉은색 차를 운전하고 남자와 호젓한 남한산성에를 가니,틀림없는 불륜의 한 부류로 짐작했으리라.

 그러면 남자는 제비족일 것이다.

 나는 물주?

 어디 제비족처럼 생겼나 볼까?

 더 웃음이 나와 한바탕 웃고 나니 기분이 상쾌해졌다.

 산성의 푸르른 나무들도 호들갑스럽게 따라 웃는 듯이 한들거리며 시원한 소리를 냈다.

  비로소 주위를 둘러보며 아름다운 자연에 감사하고 신선한 공기를 깊숙이 들이마셨다.


 그날은 하루를 빼앗긴 것 같아 억울해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그립다. 이제는 아무리 새빨간 오픈 스포츠 카를 타고 옆에 뺀질한 제비를 태우고 다녀도 제비라 하지 않고  ' 손자를 옆에 태우고  운전해보는구나.'라고  할 것이다.

 지금은 그 옆에 있던 사람도 없다. 

 그 또한 세월과 함께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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