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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호영 May 04. 2022

8. 바람

  



 꾸리 할아버지는 수십 년 동안 해 온 것처럼 휘파람을 '휘이익'하고 불었다.

 

 히말라야 산지의 중턱에서 농사를 짓는 이들은 바람이 필요하면 휘파람을 분다. 그러면 바람이 와서 필요치 않은 쭉정이 곡식을 날려 보내는 일을 도와준다.

 휘파람과 바람은 옛 부터 동무다. 그래서 바람은 휘파람 소리를 멀리서도 금방 알아듣고 달려간다.

 “아이고 숨차. 내가 히말라야 꼭대기에 있었거든. 왜,무슨 일이 있어? 네 소리가 다급하게 들려서 빨리 왔어.”

 “응,꾸리 할아버지가 곡식의 검불을 골라 버리려 하는데 너무 힘들어하셔. 허리도 꼬부라지고 힘도 없으신 것 같아. 그래서 너의 도움이 필요해.”

 “그렇구나 그럼 센 바람이 있어야 되겠네.”

 “아니야,너무 세게 불면 곡식이 다 날아가버릴지도 몰라.”

 “알았어.”

 바람은 검불만을 날려 보내 주었습니다. 꾸리 할아버지는 주름진 이마에서 송골송골 나오는 땀을 씻으며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했습니다.

 “아이고 시원해라. 거 봐. 바람은 휘파람 소리를 들으면 반드시 와 준다니까. 정말 고마운 바람한테 보답이라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될까?”

 이때 처음으로 아기를 데리고 산 구경을 나온 엄마 '매'가 지나가다 할아버지가 하늘을 보며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매는 둥우리를 짓지 않고 해안가의 비를 맞지 않을 오목한 암벽에서 아기를 낳는답니다. 그래서 아기 매는 이런 멋진 산에는 처음 와 보았지요.

 엄마  매도 아직 어린 아기가 나는데 세찬 바람이라도 불면 어쩌나 걱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람은 산들산들 하니 아주 아기에게 나는 연습을 시키기에 적당하게 불어주어서 고마웠지요.

 그래서 바람에게 말했습니다.

 “바람아,고마워. 이렇게 상쾌한 바람을 불어 주어서. 우리 아기가 얼마나 즐거워하는지 몰라. 그런데 언제인가는 너무도 무섭고 세찬 바람이 불어와서 우리가 멀리 날아갈 수가 없었어. 우리는 겨울이 오면 따뜻한 곳으로 가서 살아야 하거든. 그때는 왜 그렇게 성이 난 거야?”

 “그랬니? 힘들었겠구나. 우리도 항상 포근하고 조용한 하늬바람만 불어주고 싶어. 그런데 때로는 차가운 곳에서 수축되어 무거운 공기가 내려오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덥고 습한 공기가 비를 내리게도 하지. 우리는 이러한 기후의 변화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다른 바람이 되기도 하는 거야. 우리도 나무를 쓸어 뜨리고 사람들을 해치는 바람으로 변 할 때는 너무 힘들어. 그리고 사람에게도 얼마나 미안한지 모른단다. 사람들은 무서운 폭풍이 대지를 할퀴고 갔다며 우리를 미워하고,된바람이 추위를 가져왔다고 하는데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너무 슬퍼.”

 “그렇구나. 나도 세찬 바람이 불어와 날지도 못할 때는 원망을 했지. 미안하다. 잘 몰라서 그랬어. 그러나 너의 바람이 없다면 나무도 살랑살랑 춤을 출 수도 없고,우리 새들도 멀리멀리 날아가는데 힘이 많이들 거야. 또 사람들도 더울 때 사늘한 바람이 불어오면 얼마나 시원하다고 좋아하는데. 꾸리 할아버지도 바람이 없으면 곡식을 거두는데 어려움이 많겠지? 그리고 예쁜 꽃잎들도 실바람에 얼굴을 간지럽히면 살살 웃으며 한껏 아름다움을 뽐낸단다. 또 홀씨가 되면 바람이 멀리멀리 데려다 주기도 하지 않니? 바람 따라 훨훨 하늘로 날아갈 때의 기분은 얼마나 좋겠어? 저 하늘의 구름이 저렇게 멋지게 흘러가는 것도 바람이 하는 일 이잖니. 구름이 항상 같은 곳에 머물러 있다면  답답하고, 사람들도 쳐다보며 많은 생각을 하지 못하겠지. 너의 들은 정말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있어서  모두가 고마워하지.”

 “그렇게 말해주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는구나. 고마워.”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휘파람이 말했지요.

 “바람아,꾸리 할아버지가 바람에 고마워하는 것처럼 이 세상에는 네가 돌봐주어야 할 곳이 너무도 많단다. 나는 너의 마음을 다 알아. 거센 바람으로 바뀌어야만  할 때 네가 얼마나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는지도.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 마. 네 잘못이 아니잖아. 그리고 네 곁에는 영원한 친구인 내가 있잖아. 네가 외롭고 슬플 때는 언제라도 나를 불러, 달려가서 위로해 줄게.”

 “알았어. 고마워. 너도 내가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불러. 쌩하니 달려올 테니. 나는 이만 가봐야겠다. 산 골짜기에서 나를 부르는 휘파람 소리가 들리네. 안녕.”

 휘파람, 그리고 엄마 매와 아기 매는  바람이 가는 곳을 오래도록 바라보았습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누군가의 도움을 때때로 받으면서 살아간다. 

 또한 자연의 도움 없이도 살아갈 수가 없다. 

 화분에 핀 장미꽃 한 송이도 우리에게 기쁨을 선사한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람이지만 바람은 우리에게 도움뿐 아니라 시도 짓게 하고 노래도 만들게 한다.

 나는 그 수많은 도움으로 살아가면서 주기는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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