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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호영 May 25. 2022

10. 눈 오는 날에

 거리에 어둠이 내려앉으면서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사람 들은 종종걸음으로 귀가 길을 재촉한다.

 설이도 지하철에서 내려 입구를 나오려는데 한 할머니가 땅바닥에 여러 종류의 콩과 야채를 펴놓고 팔고 있었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떠올랐다.

 “할머니,이거 다 얼마예요? 내가 다 살 테니 주세요."

   "예? 이걸 다 산다구?"

   "네.  싸게 주지 마시고 받을 것 다 받으세요."

   "애기 엄마, 그게 정말 이유? "

   " 그럼 정말이지요. 그 대신 하나 약속해야 돼요. 내일은 더 춥다니까 장사하러 나오시면 안 돼요. 약속하시는 거죠?"

 “응? 으응. 알았어요. 그런데 애기 엄마 이거 다 사서 어떡하려고?” 

 할머니는 하얀 머리에 눈송이가 내려앉는 것도 모르고 무슨 영문인지 어안이 벙벙한 채로 검은 비닐봉지에 물건을 주섬주섬 담으면서도 손길은 가볍지가 않아 보였다. 기껏 천 원, 이 천 원어치씩 사가면서도 더 달라고 하는데 셈도 제대로 안 하고 모두 사겠다고만 하니. 

 “아이고,그런 걱정은 마세요. 다 먹을 거예요. 어서어서 주고 들어가세요. 조금 있으면 길이 미끄러울 테니 조심해서 빨리 가세요.”

 “애기 엄마,고마워요.” 할머니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엄마,이게 다 뭐야? 왜 이렇게 많아?”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아이가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응,너희들도 지하철 입구에서 할머니가 야채 파시는 거 가끔 보았지? 지금 눈이 오는데도 팔고 계시잖아. 그래서 엄마가 다 샀어.”

 “으응. 그 할머니 불쌍하다. 그런데 이거 언제 다 먹어?”

 “그건 걱정 마. 나눠 먹으면 되니까.”

 잠자리에 들려던 딸아이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늙은 할머니가 이렇게 추운 날에도 왜 장사를 하는 거지? 자식은 없나? 이 동네는 작은 집도 없던데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물건을 팔려고 멀리서 오시나?

 집에서는 할아버지가 기다리고 계실까?


 동화책에서 본 숲 속의 작은 오두막집이 생각났다.

 그곳에는 머리가 하얗고 허리가 꼬부라진 할머니가 오래전부터 홀로 살고 있었다.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가끔 산 토끼나 다람쥐가 먹을 것이 없나 하고 올 뿐이었다.

 할머니는 산나물이나 작은 텃밭에 채소를 심어 먹으며 살았다. 어느 날에는 아랫동네의 아저씨가 와서 작은 방을 마련해 줄 것이니 동네로 내려가서 살자고 했다. 그러나 할머니는 고개를 저으며 먼 먼 하늘을 쳐다보며 눈시울을 적셨다.

 “나는 아들이 돌아올 때까지 여기를 떠날 수가 없어요.”

 오래전에 아들은 돈을 벌어오겠다고 떠난 후 소식이 없었다. 할머니는 그 아들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것이다.


 딸아이는 마치 동화 속의 그 할머니인 것 같은 생각이 들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 아들은 돌아와서 할머니를 기쁘게 했을까? 


 며칠 후였다. 여전히 찬바람이 불면서 추운 날이다.

 딸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는데 지하철 입구에서 그 할머니가 여전히 땅바닥에 앉아 물건을 팔고 있었다. 손에는 거무스름한 얇은 장갑을 끼고 있었다. 딸아이의 손에는 작은 손난로가 쥐어져 있었다. 

 “할머니,이건 손 난로인데요 이렇게 흔들어서 쥐고 있으면 손이 따뜻해져요. 할머니 가지세요.”

 “응,그런 것도 있구나. 그런데 너도 손 시리잖아 날 주면 어떡해.”

 “아니요. 괜찮아요. 저는 집에 다 왔어요.”

 그날 밤 딸아이의 일기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초등학교에 들어오니 할 일이 많아졌다.

 어제는 학교 앞에서 어떤 할아버지가 땅바닥에서 아주 작은 구슬로 만든 조그만 인형을 팔고 있었다. 하나에 천 원이라고 하는데 사실 나는 그런 인형은 갖고 싶지 않지만 어쩐지 사야 될 것 같았다. 아이들은 둘러앉아 이것저것 만져만 보고 사지는 않았다. 내 주머니에는 필요할 때 쓰라고 엄마가 주신 오 천원이 있었다. 나는 망설이다가 다섯 개를 샀다. 마침 우리 반 아이들이 옆에 있어서 하나씩 주고, 날개 달린 작은 천사 모양의 인형은 동생에게,또 예쁜 꽃 인형은 할머니에게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늘은 돈이 없는데 지하철 입구에서 그 할머니를 보니 야채를 살 수도 없어서 어쩌나 했다. 다행히도 손난로가 있어서 기뻤다. 아직까지 할머니의 손은 따뜻하겠지?

 나는 어른이 되면 돈을 많이 벌어야 할 것 같다. 그래야 불쌍한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도와드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그리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차가운 땅바닥에 앉아서 물건을 팔지 않으니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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