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김화진)

by 궁금하다

동경 憧憬

1. 명사 어떤 것을 간절히 그리워하여 그것만을 생각함.


소설가 김화진에게 동경은 무엇일까?


작가의 말에서 김화진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혼자서는 떠날 용기가 더럭 나지 않는 아름을 이끌어주는 두 손, 민아와 해든의 이야기를 차례대로 쓰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세 사람이 만나 세 개의 마음이 어느 정도 근접한 거리에 머물게 되어 삼각형을 그리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 졌습니다. 소설에도 썼듯이 삼각형의 모양은 계속해서 변하겠지만 마음의 주인들이 자기가 꼭짓점이라는 걸 인지하고 인정하는 상태까지 되는 것이 목표였는데요.


그래서 이야기는, 서로 동경하는 삼각형의 세 인물에 대한 성격 묘사가 절반 이상이다.

삼각형의 첫 번째 인물, 아름


여름-한아름, 망설이는 사람


지각을 하게 되면 그냥 지각을 하면 될 텐데, 지각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다가 아예 회사를 안 나가버리는 식이었다. 그렇게 집에 혼자 누워 있으면서도 마음은 편치 않았다. 누구든 어느 시기에 아주 사소한 이유들이 뭉쳐 퇴사 욕구가 끓어 오르기도 하겠지만, 내가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 사랑하는 동료들을 실망시키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변명하지 않고 성실하게 맡은 바를 해내는 동안 나는 거의 네 살배기 아이처럼 제멋대로였는데 그런 사람을 받아줄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같아도 싫었다. 그런 동료는.


선배, 나처럼 흠 많은 애를…… 좋아해 줘서 고마워.


나는 그렇게 말하고도 선배가 누가 너 좋아한대?라고 말할까 봐 겁났다. 그 비슷한 말이라도, 농담으로라도 그런 말을 들으면 나는 당장 울어버릴지도 몰랐다.


그리고 두 번째 인물, 민아


가을-최민아, 꿈이 싫은 사람


혼자 있을 때 이런저런 생각 때문에 잠 못 들 걸 알면서도 또. 나는 언제나 그랬다. 내가 누구보다 겉과 속이 다르다는 걸 내가 제일 잘 알았다.


아름의 절대적인 긍정은 내게 힘이 되었다. 아름에게는 열심히 해서 더 좋은 데로 가자, 하고 머쓱하게 말했을 뿐이었지만. 아름은 그런 걸로 나를 위로했다. 내가 탐탁지 않아 하는 나의 현재, 나의 모습, 나의 성질을 모두 괜찮다고 해줬다. 선배, 그건 흠도 아니야. 아름이 그렇게 말하면 마음이 놓였다. 스스로를 향한 공격들을 멈출 수 있었다.


엄마에게 했던 말은 거짓말이었다. 나는 요즘도 여전히 마음이 죄어오면 택배를 뜯을 때 쓰는 아주 작은 커터칼을 들 때가 있다. 안 보이는 곳만 적당히 그으면 좋으련만 안 보이는 곳의 살들은 연하고 아파서 다만 피를 보려는 목적으로, 마음이 조금 후련해졌으면 하는 목적으로 훌찌럭훌찌럭 울면서 옷소매 근처 손목까지 상처를 낼 때가 있다. 그런 것은 말하지 못하겠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인물, 해든


겨울-이해든, 에버랜드에 가지 않는 사람


(아버지로부터) 날아온 전기면도기에 맞은 팔이 욱신거리다가 거기에 결국 푸른 멍이 남았다. 그것이 내가 집을 나오기 전 마지막으로 선명하게 남은 이미지다. 멍든 부위를 꾹꾹 누르면 통증이 둔중하게 퍼졌다. 나는 그 멍을 좋아했다. 나는 엄마나 아빠에게 내가 태어났을 때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는데, 그건 내가 직접 새긴 몽고반점 같아서 좋았다.


아름은 자주 의심하는 사람, 민아 언니는 후회하지 않기로 결심한 사람 같아 보였다. 그렇기에 상대적으로 아름이 민아 언니보다 약한 사람처럼 보였다. 둘은 그런 면이 있는 한편 공통점도 있었다. 성실한 사람이라는 점. 민아 언니는 책임감 때문에 성실히 살았고 아름은 자기를 의심했기 때문에 성실히 살았다.


분위기를 빨리 읽고 부드럽게 만드는 아름의 능력은 좋았지만 과도하게 눈치를 보고 스스로를 작게 만드는 아름의 버릇은 싫었다. 아름에게 털어놓지 못하는 어쩔 수 없는 일들, 어쩔 수 없어서 염불 외듯 계속 곱씹게 되는 옛일들을 털어놓는 민아는 좋았지만 그까짓 일을 털어놓는 데 적절한 분위기와 타이밍과 마음가짐이 필요한 민아의 유난한 자기 방어는 싫었다. 나는…… 싫은 게 참 많네. 그리고 이런 자신의 들쭉날쭉한 마음, 언제 어디서 뾰족하게 솟을지 모를 공격성을 두 사람이 모를 리 없다고, 누군가의 입을 다물게 하고 시선을 피하게 했다면 그 이전 자신의 입에서 튀어나간 말이, 순하지 않게 바라본 눈이 있었을 거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이런 식으로 각각의 인물에 대해서

그리고 각각의 인물들이 서로에게 가지는 심리들을 보여준다.

세 인물들은 마침내 서로에 대한 간절한 욕망을 버리고 자기 자신, 그리고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친구들이 된다.


이런 이야기다.(작가가 구상한 그대로)


복잡할 것 없는 이야기 구조 속에서 인물들은 서로에 대해 생각한다. 끊임없이.

좋게 말하면 동경이요 나쁘게 말하면 서로에 대한 시기, 질투다.

우리의 친구 관계, 그리고 인간관계라는 것이 그렇다.

그리고 그런 것은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느끼는 스트레스의 팔 할은 되는 것 같다.

또 그것이 나에게 더 스트레스가 되는 것은

그것이 나의 내밀한 치부와 연결되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친구들에 대한 열등감.

부러움.

생각하고 싶지는 않지만 내 젊은 시절의 상당 부분은 그런 것으로 채워져 있다.

그 시절 나는 왠지 주파수가 맞는 친구들과 친해졌었다. 그런대로 멀쩡한 집안에서 구김살 없이 잘 자란 듯한 모습에 부러움을 느꼈었지만 알고 보니 집구석에 커다란 문제가 하나씩 있었던 친구들.

그런 것이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는데도 이상하게 내 주변에는 그런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그게 아니면 내 주변뿐만이 아니라 세상 사람 모두들이 그런 사람들?)

나의 열등감은 술자리에서의 속 이야기들을 통해서 상당 부분 해소되었던 것 같고

그런 유치한 모습들은 지금에 와서는 생각만 해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이 소설은 그런 '관계'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독자인 나는 어떤 유형의 인물인가를 계속해서 반추하게 된다.(나 스스로 생각해 볼 때 나는 아무래도 아름이 같은 인물?)

그것이 나를 피곤하게 한다.


작가는 장편이 단편과는 확실히 다르다고 말한다.


장편소설...... 어렵더라고요...... 콕 집어 하나가 무척 어렵다, 이런 느낌이라기보다 아 이게 어려운데 저것도 어렵고...... 어 여기도 어렵네? 끝까지 어렵네...... 같은 느낌에 가깝습니다. 처음이라 그럴까요?


김화진의 단편에서 느꼈던 반짝반짝함(쿨함?)은 이 장편에서는 느끼기 힘들었다.


조금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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