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록(이태준)

by 궁금하다

광복 이후 북한행을 택한 작가, 그 유명한 '문장강화'의 저자이다. 읽어보진 못했다.


그리고 이것은 전에 읽은 베스트셀러 수필집에 대한 나의 감상이다.(엄청 팔렸다ㅜ.ㅜ)


뒤로 갈수록 점점 지겨워진다고 해야 할까? 나이도 어린 양반이 부처님 같은 말씀을 잘도 주절거리고 있구나.

......


그래서 수필을 읽는다는 것은 시집이나 소설보다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시나 소설의 화자는 어디까지나 작가가 아니라는 전제가 있다.

그러나 수필집에 나오는 '나'는 오롯이 작가 자신이기 때문에 그 작가에 대해서 상상하게 되고 작가가 영 마음에 들지 않게 되면 끝까지 읽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편의 수필을 우연히 읽게 되면 굉장히 마음에 들 수 있지만 한 권의 수필집이 마음에 들기는 쉽지 않다.

사람이 어디 다중인격자가 아닌 다음에야 비슷한 구성의 비슷한 깨달음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까 말한 베스트셀러라는 수필집도 지겨워졌던 것이다.


이 수필집도

처음에는 읽기가 쉽지 않더라.

익숙지 않은 말투, 옛 단어들,

짧은 수필집이라 가볍게 쉬는 시간에 읽으려고 했던 것인데, 문장이 눈에 들어오지 않으니

약간은 난감한 상황?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태준의 이 수필집은, 수필집이라는 이유로, 그리고 '뻔한 얘기 또 하네'하는 피로함이 없어서 좋았다.


고독

지금 내 옆에는 세 사람이 잔다. 안해와 두 아기다. 그들이 있거니 하고 돌아보니 그들의 숨소리가 인다.

안해의 숨소리, 제일 크다. 아기들의 숨소리, 하나는 들리지도 않는다. 이들의 숨소리는 모두 다르다. 지금 섬돌 위에 놓여 있을 이들의 세 신발이 모두 다른 것과 같이 이들의 숨소리는 모두 한가지가 아니다. 모두 다른 이 숨소리들을 모두 다를 이들의 발소리들과 같이 지금 모두 저대로 다른 세계를 걸음 걷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꿈도 모두 그럴 것이다.

자는 안해를 깨워볼까 자는 아기들을 깨워볼까 이들을 깨우기만 하면 이 외로움은 물러갈 것인가?

인생의 외로움은 안해가 없는 데, 아기가 없는 데 그치는 것일까. 안해와 아기가 옆에 있되 멀리 친구를 생각하는 것도 인생의 외로움이요, 오래 그리던 친구를 만났으되 그 친구가 도리어 귀찮음도 인생의 외로움일 것이다.


이성간 우정

아무튼 이성 간에 평범한 지면(知面) 정도라면 몰라, 우정이라고까지 특히 지목할 만한 관계라면, 그것은 일종 연정의 기형아로밖에는 볼 수 없을 듯하다. 기형 아이기 때문에 이성 간의 우정은 늘 감상성이 붙는다. 늘 일보 전에 비밀지대를 바라보는 듯한, 남은 한 페이지를 읽다 그치고 덮어놓는 듯한, 의(意)부진(不盡)한 데가 남는다. 우정 건축에 부적한 원료들이기 때문이다. 그 일보 전의 비밀지대, 못다 읽고 덮는 듯한 최후의 페이지, 그것은 피차의 인격보다도 오히려 환경의 지배를 더 받을 것이다. 한부모를 가진 한 피의 남매간이 아닌 이상, 제삼자의 시력이 불급하는 환경에 단둘이 오래 있어보라, 그 우정은 부부 이상엣 것에라도, 있기만 한다면 돌진하고 남을 것이다.


가끔 책을 빌리러 오는 친구가 있다. 나는 적이 질투를 느낀다. 흔히는 첫 한두 페이지밖에는 읽지 못하고 둔 책이기 때문이다. 그가 나에게 속삭여주려던 아름다운 긴 이야기를 다른 사나이에게 먼저 해버리려 가기 때문이다. 가면 여러 날 뒤에, 나는 아주 까맣게 잊어버렸을 때 그는 한껏 피로해져서 초라해져서 돌아오는 것이다. 친구는 고맙다는 말만으로 물러가지 않고 그를 평가까지 하는 것이다. 나는 그런 경우에 그 책에 대하얀 전혀 흥미를 잃어버리는 수가 많다.

빌려나간 책은 영원히 ‘노라’가 되어버리는 것도 있다.


소설

몇 해 전 일이다. 어느 시골서 여러 해만에 뵈입는 친구의 어르신네였다.

“요즘 자네가 글을 잘 져 이름이 난다데그려. 그래 무슨 글을 짓는가?”

무어라 여쭐지 몰라 망설이는데 그분의 아드님이 대신 대답해 드리기를,

“소설이랍니다. 꽤 재미있게 쓴답니다.”

하였다. 영감님, 의외라는 듯이 안색을 잠깐 흐리며

“소설? 거 이야기책 말이냐?”

하시었다. 이번에는 내가

“그렇습니다.”

한즉, 잠깐 민망해하시더니,

“거, 소설은 뭘허러 짓는가? 자고로 소설이란 패관 잡기로 들리던 걸세. 워낙 도청도설류에 불과하더든…….”

하시었다.


무서록(無序錄)이라는 책 제목처럼 순서 없이 묶여 있는 수필들이 제법 친근하게 느껴졌다.

조선시대 누구처럼 아주 멀게 느껴지는 것도 아니고 21세기에 친구들도 아닌

딱 할아버지의 옛날 일기장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우리 할아버지도 그전에는 고루한 늙은이들 때문에 스트레스받던 시절이 있었구먼?

남녀 간의 우정을 얘기하는 걸 보니 뭔가 썸씽이 있었나?

다른 건 몰라도 책 욕심은 좀 있었구먼?

하는 작가에 대한 상상이 구체화되는 것 같은

다른 베스트셀러 수필가들이라는 작가들의 글에게서 느끼는 위화감, 지루함 이런 게 오히려 없었다.

오히려 작가가 좋아졌다고 할까?


이런 것이 좋은 문장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무서록은 참 좋은 문장으로 채워진 수필집이다.


친구가 내게 권해주었듯 나도 친구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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