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시당초 사랑이란 무엇일까?
나이를 제법 먹었는데도 사랑이 뭔지는 잘 모르겠다.
아니 나이와 상관없이 사랑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있을까?
이 짧은 소설은 여러 가지 상념을 불러일으킨다.
왜 '구'의 증명인가?
'구'는 죽어버렸는데, 오히려 '담'의 증명 아닌가?
왜 기괴한 설정(사람을 먹는)으로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걸까?
작가는 왜 이런 이야기를 썼을까? 작가의 악취미일까?
왜 이렇게 자극적으로 묘사했을까?
소설은 담이 구를 먹는 것에서 시작된다.(스포일러랄 것도 없다. 이야기의 시작이 그러하니 말이다)
소설의 여자주인공은 '담'이고, 담이 1인칭으로 서술할 때는 ○, 남자 주인공은 '구'이고, 구가 일인칭 서술자인 경우에는 ●, ○와 ●이 계속 반복되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헷갈리지 않아서 좋았다.
○
나는 너를 먹을 거야.
너를 먹고 아주 오랫동안 살아남을 거야. 우리를 사람 취급 안 하던 괴물 같은 놈들이 모조리 늙어 죽고 병들어 죽고 버림받아 죽고 그 주검이 산산이 흩어져 이 땅에서 완전히 사라진 다음에도, 나는 살아 있을 거야. 죽은 너와 끝까지 살아남아 내가 죽어야 너도 죽게 만들 거야. 너를 따라 죽는 게 아니라 나를 따라 죽게 만들 거야.
그리고는 두 사람의 사랑에 대한 내력을 풀어놓는다.
둘은 어려서부터 함께 자랐고 모든 추억을 공유하는 사이다. 세상에 끊임없이 상처받지만 둘은 서로 사랑한다.
●
부모님이 싸워도 담이 생각이 났다. 흰밥 한 숟갈을 퍼먹고 열무김치를 우적우적 씹을 때도 담이 생각이 났다. 저무는 낮의 노란 햇살을 봐도, 깊은 밤 골목에서 자박자박 울리는 발소리를 들어도, 느닷없이 자지가 단단해지는 밤과 새벽에도 담이 생각이 났다. 매일 밤 일기를 쓰듯 담이 집으로 갔다. 대문 앞에 서서 마음으로 담아 담아 불렀다. 골목에 발로 쓰는 나의 일기는 온통 담으로 채워졌다.
○
하지만 기다림은 공장 문 앞이 아니라 구와 헤어질 때부터 시작되었다.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학교에 있을 때도 내내 구를 기다렸다. 만날 시간은 분명 정해져 있고, 그때가 아니면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내 마음은 항상 대기 중이었다. 오분, 삼십 분, 한 시간이 아니라 하루 종일 기다리는 심정이었다. 심지어 구와 함께 있을 때에도 구를 기다리는 기분이었고, 구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때에도 내가 구를 기다리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사랑하는 '어린양들'이 편안하게 풀을 뜯기에는 녹록지 않다. 둘보다 한참 어리지만 친구라고 할 수 있었던 노마는 교통사고로 죽고(둘이 보는 앞에서 트럭에 치여) 둘을 걱정해 주던, 거의 유일한 어른이라 할 수 있는 담의 이모는 병으로 죽고, 구를 위로해 주었던 구의 공장 누나와는 헤어졌다.
○
노마를 잃은 뒤 우리는 한동안 서로를 피했다.
만나면, 서로의 눈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구의 마음에도 나와 같은 구멍이 파여 있었다. 그 구멍을 아는 척할 수도 위로할 수도 없었다. 그저 지켜보고만 있기도 힘들었다.
●
담을 생각하면 괴로웠다. 부모님을 마주해도 괴로웠다. 나의 앞날을 생각해도 괴로웠다. 괴로우면 누나를 찾았다.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누나 방으로 가고, 이젠 이러지 말자는 다짐을 하며 누나 방을 나서는 날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
아직 어리니까 시간은 충분하다.
각자의 길을 가자는 말보다 뒤에 덧붙인 말에 나는 상처받았다. 자기 주변에서 꺼지라는 말처럼 들렸다. 함께하지도, 지켜보지도 않을 거면서, 이제 영영 남남처럼 살 거면서, 헤어지자는 마당에 날 위한답시고 그런 말을 하는 누나에게 분노했다. 누가 그걸 모르냐고, 나도 다 안다고, 근데 씨발 아는 대로 살아지지가 않는다고, 그러니까 그렇게 쉽게 말하지 말라고 바락바락 악을 쓰며 대거리했다.
소설을 읽으며 떠오르는 구와 담의 이미지는 예쁘고 작은, 연약한 소년과 소녀다. 소년은 사채에 쫓기고 군에 다녀오고 공장에, 편의점에 알바로 먹고살지만, 계속 연약한 소년이다. 담도 학교를 졸업하고 정육코너에서 일을 하지만 계속 연약한 소녀다. 그런 소년과 소녀는 개 같은 사회의 압박 속에서도, 이 개 같은 자본주의 사회의 밑바닥에서도 사랑을 하고야 만다. 그렇지만 이 사회에서 사랑이란 특히 가난한 아이들의 사랑은 가능하지 않다. 살아서 사랑을 하기에는 가능하지 않다. 악귀 같은 사채 업자들은 구와 담이 어떤 산골짜기에 숨어들어도 귀신같이 찾아내고, 그리고 그 구타 끝에 구는 맞아 죽고 담은 구를 먹는다.
○
사람이란 뭘까.
구를 먹으며 생각했다. 나는 흉악범인가. 나는 사이코인가. 나는 변태성욕자인가. 마귀인가. 야만인인가. 식인종인가. 그 어떤 범주에도 나를 완전히 집어넣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사람인가. 아이는 물건에도 인격을 부여하지만 어른은 인간도 물건 취급한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무럭무럭 자라면서 우리는 이 세계를 유지시키고 있다. 사람은 돈으로 사고팔 수 있다. 사람은 뭐든 죽일 수 있고 먹을 수 있다........ 동물의 힘은 유전된다. 유전된 힘으로 강한 놈이 약한 놈을 잡아먹는다. 불과 도구 없이도, 다리와 턱뼈와 이빨만으로. 인간의 돈도 유전된다. 유전된 돈으로 돈 없는 자를 잡아먹는다. 돈이 없으면 살 수 있는 사람도 살지 못하고, 돈이 있으면 죽어 마땅한 사람도 기세 좋게 살아간다.
노마는 왜 죽었을까.
이모는.
구는 왜 죽었나.
교통사고와 병과 돈. 그런 것이 죽음의 이유가 될 수 있나. 성숙한 사람은 죽음을 의연히 받아들이는가. 그렇다면 나는 평생 성숙하고 싶지 않다. 나의 죽음이라면 받아들이겠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다.
.......
구는 길바닥에서 죽었다.
무엇이 구를 죽였는가.
나는 사람이길 원하는가.
●
담아.
이 멍청아.
이젠 됐어. 넌 다 했어. 이 장례를 끝내야지. 끝내고 살아야지. 아주 오래 살아야지.
너도 여기 있고 나도 여기 있다. 네가 여기 있어야 나도 여기 있어.
밖을 봐. 네가 밖을 봐야 나도 밖을 본다.
네가 살아야 나도 살아.
담아.
이 바보야.
구가 죽었다고 해서 그들의 사랑은 끝나지 않는다.
●
애무하듯 입술과 혀로 내 얼굴을 핥다가 조금씩 뜯어먹으며 담은 울었다. 울면서 구야, 구야, 내 이름을 불렀다. 부르며 말했다.
너는 나를 왜 이토록 괴롭게 하니.
너는 나를 왜 이토록 고통스럽게 해.
내가 살아 있을 때, 담은 내게 너 때문에 괴롭다고 말한 적 없었다.
이런 사랑이다.
이토록 처절한 사랑이 있다.
이것이 작가가 정말로, 진짜로, 레알(?) 전하고자 한 의도의 전부인가?
그것을 나는 모르겠고
그래서 나는
내마음대로 다시 궁금하다.
사랑이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