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여름

나에게는 다른 의미로 불편한 여름

by 조스톤



여름은 나에게 한 남자를 떠올리게 하는 계절이다.


냉기가 흐르는 사무실 밖을 나와, 눈살이 찌푸러지는 햇빛을 마주하고 숨이 턱 막히는 뜨거운 공기를 마시면 아버지가 가장 먼저 생각난다.


나의 어릴적 아버지는 흙먼지 속 고된 노동을 끝내고 돌아오면, 치킨 한 마리와 소주 한 병을 끼니 삼아 토끼 같은 자식들과 나눠먹으며 하루의 회포를 풀곤 하셨다. 스테이크니 여행이니 하는 것들은 그에게는 있는 것들의 사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아빠, 아빠가 하는 일은 노가다야?' 초등학교 저학년 당시, 아빠와 오빠와 함께 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빠에게 물었다.


당시 학교 숙제로 깜지를 자주 했던 교실 안에서 '깜지는 노가다'라는 말은 우리에게 유행어였다. 빈 종이가 꽉 차도록 교과서를 베껴쓰며 아무런 의미도 없고, 단순노동에 저릿한 팔목통증만 발생시키는 행위. 어린 아이들이 쓰는 노가다라는 말에는 그런 의미가 함축 되어있었다.


교실안에서 친구들끼리 웃으며 시덥지 않은 말을 주고받은 것처럼 그를 웃게하고 싶어 던진 초등학교 저학년의 철없는 질문이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내 말이 끝나자마자 아빠는 햇빛에 물든 검붉은 얼굴을 더욱 붉히며 '너 그런 이야기 어디서 배웠어'라고 소리를 쳤다. 그의 목소리 안에는 당혹감과 딸에 대한 분노가 합쳐진 듯 했다.


그날부터는 아빠의 직업에 대해 더 이상 궁금해하지도, 물어보지도 않았다. 세월이 흐르며 그날 아버지가 나에게 질렀던 고함 안에는 많은 감정들이 뒤섞여있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되었다.


그날의 사건처럼 아버지는 가정을 위해 묵묵히 일하셨지만 늘상 살갑거나 다정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가 가끔 피로를 잊고자 마시는 소주 한 잔은 술을 핑계 삼아 자식들에게 말을 걸 수 있는 좋은 기폭제였지만, 나에게 아빠가 유달리 살갑게 구는 날 그의 입에서 나는 술 냄새는 지독히도 맡기 싫은 악취였다.


어느 주말 오전 술을 마시지 않은 그는, ‘나에게 동인천으로 작업복을 사러 갈 건데 같이 갈거냐’ 물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 날은 맨얼굴의 아빠에게서 딸에게 선뜻 내민 용기가 보여서였는지 그를 따라나서고 싶었다. 용접을 하며 튀는 뜨거운 불똥을 막기위해 가위질에도 잘리지않는 좌판에 걸린 두꺼운 작업복을 보며, 아빠가 가족을 위해 매일 행하는 고된노동의 강도를 알게 되었다. 어린 나이었지만 용접공 아버지의 두꺼운 작업복 속 그가 흘리는 땀의 무게가 느껴지는 듯했다.


이후에도 뉴스에서 기록적인 폭염이라는 소식이 연신 떠들어대는 날이면, 집에 돌아오는 아버지의 표정은 유독 지쳐 보였다.


성인이 되고 퇴근 후 지독히도 힘든 날에 고단한 몸을 이끌고 술 한 잔을 할 때마다, 숨이 턱 막히는 여름 공기를 들이마실 때마다 아버지가 생각난다. 나에게 여름은 아빠를 떠올리게 하는 계절이며 초등학교 저학년 그에게 철없는 질문을 했던 그 순간의 부끄러움을 상기시키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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