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에서 온 첫 번째 편지
제가 여행을 준비할 때면 꼭 빼먹지 않고 그렇게 말했었죠.
처음으로 혼자 캐리어를 끌고 러시아로 향해 갔을 때도 그랬고 사하라 사막에 가봐야겠다며 모로코 행을 결정했을 때도 그랬어요. 종교적 이유 없이 걷는 것이 좋아 바다를 보며 걷는 포르투갈 순례길을 걸었을 땐 그나마 '유럽'이라서 괜찮다고 생각하셨죠.
3년 만에 다시 55L짜리 배낭을 챙기는데 어찌나 설레고 또 어찌나 어렵던지요. 가을과 겨울의 경계선의 여행, 미처 버리지 못한 목이 늘어난 반팔을 챙겼어요. 자세히 보면 이곳저곳에 얼룩이 진 맨투맨과 X와 커플로 사서 입기 괜스레 민망했던 남방도 챙겼습니다.
잃어버려도 괜찮은 것들, 하지만 버리지 못한 것들, 어쩌면 그런 것들을 등에 가득 메고 떠나는 것이 저의 여행일까요? 이사를 하거나 여행을 준비할 때면 정말 나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그제야 알게 됩니다. 여행과 이사를 반복하면서 조금 더 잘 쓰고 조금 더 잘 버리는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미련함이 남아있네요. 버렸어도 괜찮은 것들, 그런 걸 왜 저는 그리도 껴안고 살아가고 있는 걸까요?
그 말을 기억하나요? 짐이 무거우니 옷들은 입고 다 버리고 오라던, 그리고 너의 마음의 짐도 버리고 오라던 말을요. 그때 러시아에서 제가 버린 옷들은 어디로 흘러가 어디에서 처리되었을까요?
그것을 알 수 없듯 그때의 심란했던 마음도 어딘가로 흩어졌습니다. 아마 그때 러시아를 가지 않았더라면 전 죽었을지도 몰라요. 이미 좁고 작은 제 세상이 살아갈수록 더 작아지고 있었으니까요.
얼어붙은 바다의 수평선 너머가 궁금해졌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더 이상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을 거 같던 제 삶에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세상에 이토록 추운 곳이 있을까 싶었던 무르만스크에서도 그랬어요. 영하 30도가 이 정도라면 다큐멘터리에서 봤던 영하 50도는 어떤 추위일까 싶었죠.
끝없이 펼쳐진 바이칼 호수의 끝자락에서는 제 삶을 간신히 붙잡았습니다. 기차를 타고 오면서 봤던 눈 덮인 마을, 아마도 바이칼 호수 너머 어딘가의 그 사람들의 안녕이 궁금해졌어요. 저를 알지 못하는 어떤 이들도 저의 안녕을 궁금해할 것만 같은 이상한 기분이었습니다.
포르투갈에서 스페인을 향했던 산티아고 순례길의 길목마다 살아있단 걸 감사하게 됐어요. 살아있어서 다행이다, 심지어는 건강해서 두 다리로 이 길을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했어요. 살아있음에 감사하단 기분은 아무래도 처음 느껴본 감정이었어요. 그야말로 황량한 사하라 사막의 보드라운 모래를 만지면서도 마찬가지였어요. 밤에는 별을 쏟아내고 반짝 뜬 해 아래에선 충실히 빛나는 찬란한 모래산을 보면서 잘 살고 싶단 생각마저 들었다니까요.
죽기 전 마지막 숙제처럼 떠났던 러시아 여행이 끝난 지 1년도 지나지 않은 날이었어요. 그때 사는 건 참 알 수 없구나, 웃기다, 재미있다, 생각했어요. 그런 기억들이 저를 살게 했어요. 살고 보니 저에게는 그런 기억들이 꽤나 많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그런 곳에 갑니다.
붕붕 하염없이 부유하고 달뜬 마음이 도무지 가라앉는 올여름에 생각했어요. 조지아로 가야겠다고요. 마음에 자꾸 뜨거운 열이 오르던 여름은 어느새 지나갔습니다. 그때의 제가 저지른 이별들이 지나가는 가을, 정말이지 모든 것들과 이별하는 것만 같은 쓸쓸함도 이미 지났네요.
3년 간 매일같이 출근을 하던 디지털 미디어 시티 역으로 여행 가방을 앞 뒤로 메고 향하자니 정말 기분이 이상했어요. 그 시간들이 제 삶에 존재했던 것이 꿈같을 정도로 순식간에 지나갔더라고요. 사는 건 조금 쓸쓸한 일 같아요. 모두 제 삶을 스치고 가요. 제게 남아있는 건 무엇일까요?
조지아에서의 기억은 어떤 식으로 저를 살아가게 할지 궁금해지는 날, 첫 번째 편지를 씁니다.
2022년 10월 9일 알마티 공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