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혼자 중남미 여행/치아파스 커피, 멕시코 현지 음식 타말레스, 일상
2025_6/19
오늘은 9시 수업, 고양이 세수를 하고 양치만 하고 모자를 눌러쓰고 수업을 하러 갔다. 소피아가 콜렉티보 이슈로 20분을 지각했다. 그래도 카운터를 보는 환이 내게 와서 먼저 얘기를 해줬고 소피아가 오자마자 사과를 하며 내가 시간이 괜찮다면 오늘은 11시 20분까지 수업을 하자고 먼저 말해주어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수업은 오늘도 어려웠다. 영어도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껏 공부해도 지금도 제대로 쓰는지 모르는데 스페인어는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지만 그래도 꽤 힘들었다.
내일은 장소와 관련된 대화에 대한 걸 한다고 내일 외워올 것들도 미리 공부했다. 이번 여행에서는 힘들겠지만 중남미를 언젠가 또 오게 된다면 그때는 스페인어를 영어만큼 대화가 가능한 상태로 오고 싶단 열의가 타오른 날이었다.
집으로 돌아와선 빨래를 하고 널고, 점심을 간단히 해 먹었다. 또 토달볶을 하고 소시지도 하나 구웠다. 토달볶은 왜 안 질릴까. 한국에서는 해먹지도 않았는데 산크리스토발에서 맛 들인 토닭볶은 토마토 5개를 해 먹는 동안 오늘까지도 정말 맛있었다.
밥을 다 먹고는 시장에 갔다. 내일모레가 마지막(이어야 하는데 모르겠다. 만약 액션캠이 오지 않으면 하루 더 있어야겠지만)인데 오늘 시장을 한번 더 가고 싶었다. 우리 숙소에 온 여행자들은 거의 다 했다는 워킹투어는 정말 영 안 당겨서 결국 안 갔다.
시장으로 가는 길은 이제 익숙하다. 오늘은 마림바 공연이 더 본격적으로 차려져 있어서 잠깐 구경을 하고, 기념품 플리마켓도 구경을 했다. 뱅글뱅글 돌다가 로컬 시장에 가서 사람 구경들을 좀 했다. 돌아다니고 있으니 어떤 상점에 모여 놀던 아저씨들이 나에게 "꼬리아!" 이렇게 외쳤다. 맞다고 하니 자기들끼리 "꼬리아 맞지?", "그러게" 하면서 재패니즈 어쩌고 하는 거 보니 내가 동양인이라 신기해서 자기들끼리 어느 나라 사람인지 예측해봤나 보다. 재밌는 아저씨들이군.
그리고 마그넷을 사러 관광시장에 갔다. 역시나 멕시코는 영 디자인과 퀄리티가 별로다. 이걸 30페소나 줘야 한다니.. 그래도 귀여운 고래모양 나무 조각을 가지고 놀고 있던 귀여운 아기가 있는 상점에서 2개에 50페소에 해준다고 해서 2개를 샀다. 한 개에 30페소인데 천오백 원을 주면 하나가 더 생기면 사야지.. 마케팅이란 이런 것이지. (다른 가게 한 곳은 1개 30페소 2개 60페소 전략을 펼쳤고 안 샀다.)
그리고 저번에 지나가다가 보면서부터 사고 싶었던 인센스도 사러 갔다. 여기도 1개 25페소 3개 60페소 전략이었다. 그래도 인센스는 한국에서 충분히 구할 수 있는 거니까 여행하면서 피울 것 하나만 사기로 했다. 냄새를 맡고 황홀할 정도로 마음에 들었던 거 하나를 샀다.
숙소에서 짐을 싸면서 처리(?)해야 할 것들을 보며 곰곰이 생각을 했다. 밥은 지금 2끼 정도 먹을 게 남아있고 쌀도 2끼 분량 정도, 소시지나 참치 같은 식량도 남아있다. 고민했던 건 내가 산크리스토발에서 너무 숙소에만 있어서 기억할 것들이 거의 없을까 봐서였다. 그렇지만 아무리 곰곰이 생각해 봐도 밖에서 돈 주고 뭔갈 사 먹는 일보다 밥을 해 먹는 게 맛있고 즐겁고, 무엇보다 그것만이 산크리스토발의 추억이 될 거 같은 생각이 들었다. 체류 기간이 짧으면 혼자 다니는 터라 거하게 장보기도 애매해서 이런 경험도 쉽지 않을 거 같았다.
그렇게 생각을 하다 치아파스 커피가 유명하다는데 숙소랑 학원에서 마신 커피 말고는 제대로 된 커피를 마셔본 적 없는 게 너무 아쉬울 거 같았다. 그래서 밥은 최대한 집에서 해 먹되 오늘 커피는 나가서 먹자! 하며 길을 나섰다.
소피아가 둘째 날 수업때 근처에 카페 몇 개를 추천해 줬었는데 그중에 처음으로 입에서 튀어나온 카페는 El Tostador Cafe, Sucursal Guadalupe였다. 뭐든, 예를 들어 뭐 먹을래? 했을 때 “피자 먹을까? 아니면 치킨?”이러면 피자 쪽이 더 마음이 있는 거처럼 처음 나온 곳이 제일 괜찮은 곳 아니겠는가.
카페가 있는 골목은 왠지 해도 쩅쩅 들고 분위기가 또 달랐다. 카페도 아주 단정하고 가격도 저렴했다. 생각보다 저렴한 가격에 당근 케이크도 하나를 시켰다. 그리고 나온 커피는.. 정말.. 맛있었다. 이걸 안 먹고 치아파스를 떠났더라면 정말 나중에 난 아쉬워했을 거 같았다. 인생은 경험을 해봐야 좋은 것이든 싫은 것이든 기준이 생기기 마련인데 내가 먼 훗날에야 치아파스 커피를 마셨더라면 지난 기회를 많이 아쉬워했을 거다. 근 3-4년 중 내가 먹어본 커피 중에 가장 맛있었다.
소피아 말로는 여기가 베스트 커피는 아니지만 가격이 적당히 저렴하고 가까워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라고 했는데 그럼 더 맛있는 커피는 얼마나 더 맛있다는 이야긴 걸까? 치아파스 커피는 치아파스 주에서 관리 재배를 하기 때문에 품질 관리 검증이 잘되는 편이란다.
커피도 맛있지만 당근 케이크도 정말 맛있었다. 촉촉한 케이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불호라고 하겠지만 맛있고 향긋한 커피에 살짝 팍팍하고 달달한 케이크를 곁들여 먹는 걸 난 좋아한다. 러시아 여행을 할 때 좋아하던 카페에서 당근 케이크를 먹을 땐 커피를 (거기 커피는 맛없었지만) 촉촉한 레몬 케이크를 먹을 땐 차를 먹었다. 향긋한 커피엔 살짝 마른 케이크가 제격이다. 아까 생각한 대로 밥은 집에서 먹더라도 커피는 내일도 밖에서 사 먹어야지. 너무 좋은 선택이었다.
호스텔로 돌아오니 며칠 전부터 같은 방을 쓰고 매일 인사만 나누는 멕시칸 친구가 있었다. 내가 스페인어 학원을 다니는 걸 알고 있어서 스페인어 공부하는 거 괜찮냐고 안부를 물어주기에 이런 얘기를 하다가 자기는 케이 드라마를 좋아한다고 얘기했다. 내가 한국인이니까 그렇게 말하는 거려니 했는데, 자기가 본 한국 드라마 리스트를 쭉 보여주는데.. 아무래도 나보다 더 한국 드라마를 많이 봤지 싶다. 대단한 한국 드라마 마니아였다.
처음 본 드라마는 상속자들로 그걸 보고 한국 드라마의 세계에 빠졌고 최애 드라마는 이태원 클라쓰란다. 한국 드라마 얘기를 하면서 내가 재미있게 본 드라마들도 추천해 줬다. 친구는 바로 넷플릭스에 들어가 찜하기를 누르며 오늘부터 볼 거라고 설레어했다.
얘기를 나누고 나는 스페인어를 복습하러.. 복습을 하고 있으니 흰 수염 아저씨가 오며 가며 보다가 내가 틀리게 적은 것을 고쳐주었다. 좋은 관심 감사합니다. 내가 기분 나빠할까 봐서인지 아주 조그맣게 고쳐주는 게 웃기고 감사했다.
복습을 한 시간 동안 했지만 이제는 외우기 싸움이다. 동사든 뭐든 어쨌든 어휘가 받쳐줘야 사용을 할 수 있으니까, 원리만 안다고 되는 게 아니다. 근데 문제는 공부를 마지막으로 했던 게 언제였더라. 내 암기 실력이 못 미더웠다. 열심히 복습을 하고, 흰 수염 아저씨가 오며 가며 확인해 주고 그러면서 1시간 더 공부를 했다.
공부를 다 하고 시간을 벌써 8시였다. 참치 계란 볶음밥을 하려고 계란 2개랑 참치를 까 넣었는데 마지막에 소금을 쏟는 바람에 계란 2개를 더 추가했다. 그랬더니 간이 겨우 맞았다. 남아있던 밥 한 바가지를 다 넣고 볶아서 반은 냉장고에 넣어두고 반은 먹었다. 토달볶만큼은 아니지만 실망할 수 없는 익숙한 맛이다.
밥을 다 먹고 빨래를 거두려 테라스에 올라가니 오늘따라 더 많은 폭죽이 터지고 있다. 산 크리스토발에선 매일 폭죽이 터진다. (건기에는 모르겠지만) 하늘에 폭죽을 쏘면 비와 천둥이 멈춘다는 그런 미신 때문이라고 들었다.
오늘은 유독 가까운 집에서도 많이 터트려서 처음에는 이번엔 진짜 총인가? 하며 긴장을 했다. 테라스에서 보니 바로 앞집에서 터트리고 있었다. 또 더 멀리서도 폭죽은 계속 터졌다.
그리고 내려와서 일기를 쓰고 있는데 아까 드라마 이야기를 나눴던 멕시칸 친구가 멕시코 음식 Tamales를 같이 먹자며 새로 온 일본인 친구에게도 하나 들려주고 나에게도 하나 준다. 타말레스는 간 닭고기랑 콘이랑 섞은 후 뭉쳐서 찐 음식이었다. 살사 소스를 뿌려먹으면 약간 고소하고 약간 다이어트 음식 같은 맛이 난다.
엄청 맛있다거나 꼭 먹어야 하는 맛이다, 이런 건 아니지만 새로운 경험이고 처음 보는 음식이니 신기하긴 했다. 타마레스는 사 먹기도 하지만 보통은 집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해 먹는다고. 자기 집에서 하는 게 이것보다 더 맛있다고 한다. 멕시칸들의 만두 같은 개념인 걸까?
타마레스를 나눠먹으면서 스페인, 일본, 멕시코, 나 이렇게 넷이 스몰토크를 좀 하다가 친구들은 먼저 자러 갔다. 재밌었던 건 멕시코 사람들은 스페인 사람들의 스페인어가 엄청 빠르게 느껴진다는 거였다. 나는 나머지 일기를 좀 쓰고 곧 떠나야 하니 일정을 정비하며 데낄라를 마셨다. 결국 과나후아토에서 남겨온 데낄라는 혼자이긴 하지만 (수잔에게 단 한잔, 멕시칸 여자친구에게 한잔 빼고) 다 털고 갈 수 있게 되었다.
오늘은 커피, 그리고 타마레스. 새로운 맛과 세계를 알게 됐다. 내일 카메라가 올지 모르겠지만 오지 않아도 산크리스토발의 날들이 지겨울 거 같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