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석 위에 놓인 수많은 나침반
어느 순간, 낱개로 흩뿌려져 있던 파편적인 사건들이 하나의 실로 꿰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걸 보통 '육감' 또는 '촉'이 왔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 느낌이 항상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높은 확률로 맞아떨어지기도 한다. 그 느낌이 맞아떨어질 확률은 내 기억에 남아있는 파편들이 하나의 방향을 일관되게 가리키면 가리킬수록 높아진다. 그런 느낌이 올 때면 나는 어김없이 나침반이 떠오른다.
우리에게 친근한 막대자석. 그 주변에는 자기장이 형성된다. 우리가 중학생 때 배웠듯이 자기력선은 막대자석의 N극에서 나와 S극으로 들어간다. 자기장이 형선되어 자기력선이 흐르는 그 위에 나침반을 올려두면 나침반은 자기력선에 맞게 일정한 방향을 가리킨다.
각자 제멋대로 가리키고 싶은 곳을 가리키던 나침반의 붉은 침이 주변에 자석을 놓는 순간 자석 주변에 흐르는 자기장의 영향을 받아 일정한 방향을 가리키는 것이다. 플라스틱 투명한 뚜껑 너머로 한쪽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 초침이 미세하게 흔들린다. 자석이 치워지는 순간 여러 개의 나침반을 일관성 있게 잡아끌던 힘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나침반들은 다시 무질서한 상태로 돌아간다.
무질서해 보이는 것들이 조금씩 질서를 찾아가며 결국에는 하나의 지점을 일제히 가리키는 것. 나는 예술이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무질서해 보이는 수많은 것들을 논리에 맞게 질서 있게 배치해 놓는 작업. 창작자의 논리가 창작물을 소비하는 사람에게 얼마나 설득력 있게 다가갔느냐에 따라 그 작품에 대한 평가가 매겨지는 것이다.
나는 소설이 너무나 인위적이라고 생각했었다. 만화 <명탐정 코난>에서 코난이 있는 곳에서만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것처럼 왜 작가들은 꼭 어떤 사건이 일어나는 순간을 이야기로 쓸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그 순간을 쓰면 안 될까? 생각해 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이야기를 써도 될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읽지 않을 것이다. 재미가 없기 때문에. 예술을 소비하는 사람들을 안달 나게 하는 순간, 바로 그 순간 그들은 재미를 느낀다. 재미는 상상력을 부추긴다. 다시 상상력은 더 큰 재미를 가져다준다. 때문에 창작자는 다른 순간이 아니라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그 순간을 포착해야 한다. 창작자 자신이 하고 싶은 말, 그 일이 바로 처음 일어난 그 순간 말이다.
예술은 인위적일 수밖에 없다. 창작자가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소비자가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설계를 한다.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진 물건이니 인위적일 수밖에. 핵심은 인위적인 그것이 얼마나 논리적인 설득력이 있는가이다. 설득력이 있는 창작물은 덜 인위적인 느낌을 주고ㅜ, 작품에 더 깊이 빠질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창작자의 의도. 그 의도가 바로 막대자석의 자기력선은 아닐까. 자석이 놓이는 순간 무질서하게 중구난방이었던 나침반들이 일정한 방향을 가리키는 것처럼.
2025.12.23 365개의 글 중 80번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