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 Arrival

그 끝을 알면서도 난 모든 걸 받아들여.

by 돌이


며칠 전,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친구였다.

"확실히 아이가 생기니까 다르지?"

내가 물었다. 친구는 깊은 공감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진짜 달라. 아내와 둘만 있을 때랑 아이까지 셋이 있을 때는 천지차이야."


친구와의 짧은 대화였지만, 100일을 갓 넘긴 아이에 대한 어떤 감정이 느껴졌다.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아이에게는 행복을 전해주겠다는 엄청난 부성애는 아니지만, 어쩌면 그런 엄청난 부성애로 꽃 피울 수도 있을 씨앗 같은 것이었달까.


나는 2016년에 개봉한 영화 <컨택트>, 원제 <Arrival>을 좋아한다.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재미없다고 해서,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르겠다고 해서 좋았다. 그런 영화를 즐겨보는 사람이 가지는 대외적인 이미지가 나는 그럴듯해 보였다. 나에게 그런 이미지를 덧씌우고자 더 재미있게, 더 좋게 본 것처럼 연기를 했을 수도 있다. 사실 영화를 한번 보았을 때는, 무슨 내용인지 작가와 감독이 던지고 싶었던 메시지가 무엇인지 전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블로그나 유튜브를 통해서 리뷰를 살피고, 원작을 읽었다. 옅은 연필심으로 드문드문 스케치된 도화지에 스케치를 조금 더 선명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오늘 영화를 다시 보기 전까지 나는 내가 영화를 이해한 수준이 고작 스케치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 또한 한 번 본 영화나 드라마를 두 번 세 번 찾아보지 않는다. 다만 그렇게 회귀하는 작품이 몇 개 있을 뿐이다. 나에겐 <매트릭스>나 <아저씨>,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들이 그렇다. 오늘 소재로 삼은 <콘택트> 또한 마찬가지다. 이미 본 것을 두 번, 세 번 보지 못하는 것은 이미 결말을 알기 때문이다. 결말을 알고 있다 보니,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도 알고 있다. 과정과 결과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다음에 나올 내용이 궁금하지가 않다. 궁금하지가 않기 때문에 플레이 버튼을 누르지 않는다.


여러 번 보는 영화 또한 마찬가지 일 것이다. 여러 번 보았기 때문에 과정과 결말을 더욱 선명하게 기억한다. 외우고 있는 대사도 있고, 주요 시퀀스는 줄줄이 외우고 있다. 그럼에도 다시 찾는다. 어떤 맛인지 알면서도 잊을만하면 찾는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영화는 그대로지만 영화를 수용하는 내가 영화를 시청할 때마다 달라져있기 때문이다. 대사부터 주요 등장인물, 배경음악 등 자세히 기억하고 있는 장면도 내 감정상태, 처한 환경, 당시의 주요 생각에 따라 다르게 다가온다. 매 번 볼 때마다 나에게 새로운 생각을 느끼게 해 준 작품들이 몇 남아 있는 것이다. <매트릭스>나 놀란의 작품, 그리고 <컨택트>처럼.


오늘 시청한 <컨택트>는 시작부터 내게 깊게 들어왔다. 결국 죽음을 맞이할 딸과의 추억이 기억의 편린처럼 주인공 루이스를 스쳐간다. 그 순간 영화의 결말이 떠올랐다.


'결국 루이스의 딸은 죽는다. 주인공 루이스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그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루이스는 딸을 낳는다. 그녀는 슬픔 속에서 딸을 떠나보낸다.'


딸을 떠나보내야 한다는 결말을 알고 있는 채로 그 길에 들어서는 엄마의 마음은 어떨까. 루이스의 남편 이안은 루이스가 사실은 딸의 죽음을 미리 알고도 결혼을 했고, 딸을 낳았다는 고백을 들은 뒤 그녀와 딸을 떠난다. 어쩌면 남편 이안의 반응은 일반적인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그와 대비되는 루이스의 모습들. 기억의 조각들을 통해서 비춰지는 루이스는 그 모든 순간을 덤덤하게 받아들인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매 순간을 살아간다.


'루이스는 왜 미래를 알고도 바꾸지 않았을까.'


그녀는 영화 말미에 이런 대사를 뱉는다.


"모든 여정을 알면서, 그 끝을 알면서도 난 모든 걸 받아들여. 그 모든 순간을 기쁘게 맞이하지."


루이스는 그저 덤덤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모든 순간을 기쁘게 맞이하려고 애썼을 것이다. 비록 자식이 죽음에 이를지라도 그 과정에서 자신과 딸이 어떤 것을 느낄지는 알 수 없다. 결국 죽음에 이른다고 해서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자체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스케치가 잘 되어있는 도화지에 어떻게 채색해 나갈지는 그 과정에 있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 루이스는 알고 있지 않았을까.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딸과 함께 스케치를 채색해 가는 모든 순간이 기쁨이라는 것을 말이다.


2026.01.02 365개의 글 중 81번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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