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를 귀하게 여기고 아끼는 마음, 또는 그러한 행위. 나를 귀하게 여기고 아끼는 마음이나 행동은 뭘까. 나에게 좋은 물건을 선물하는 일, 나에게 좋은 옷을 입혀주고, 좋은 것을 먹이면 나를 귀하게 여기고 아끼는 걸까. 내가 건강할 수 있도록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고, 몸에 해로운 것들은 멀리하는 일은 나를 귀하게 여기고 아끼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오늘 아침, 운동을 하려고 헬스장에 갔다. 러닝머신 위를 달리는 사람들이 10명 남짓, 다양한 기구로 근육을 단련하는 사람들도 10명 정도. 헬스장에는 턱걸이를 할 수 있는 기구가 3개 있는데, 오늘은 모두 사용이 가능했다. 그중에 가장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기구로 가서 턱걸이를 했다. 등과 팔, 가슴 근육에 점진적인 자극이 느껴졌다. 6번 정도 반복했을 때에는 오른쪽에 살짝 통증이 느껴지기도 했다. 턱걸이를 마치고 팔 굽혀 펴기를 했다. 전면거울이 있는 공간으로 자리를 옮겼다.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았다. 풍선에 바람을 넣은 것처럼 몸이 살짝 부풀려져 있었다. 특히 어깨와 가슴이. 근력 운동을 마치고, 밖에서 달리기를 할 수 있는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기온이 영상 0도에서 5도 사이일 경우에 나는 바람을 막아줄 정도의 긴 바지와 반팔티셔츠와 긴팔 티셔츠를 입도 달린다. 간혹 바람이 차가울 때면 조끼도 걸친다. 오늘은 조끼까지 걸치고 밖으로 나섰다.
핸드폰도 이어폰도 두고 나왔다. 몇 가지 생각을 새롭게 떠올리고, 몇 가지 생각을 충분히 한 뒤에 흘려보내고자 했다. 어젯밤에 떠올랐던 단어들, 상대성 이론, 중력, 이끌림, 공간의 왜곡, 시간의 상대성, 그리고 사랑. 공기가 차가운 날 달릴 때 코로 숨을 쉬면 익숙하지 않은 냄새가 풍겨온다. 병원이나 약국에서나 풍겨올 것 같은 알코올향이 섞인 묘한 냄새가. 인위적이고, 유쾌하지 않은 냄새가 추운 날 밖을 달리며 코로 숨을 쉴 때마다 내 코를 들고나간다.
7킬로쯤 달렸을 때, 문득 생각이 들었다. 3킬로를 마저 달리고 헬스장 전면거울 앞으로 걸어가 근육에 바람이 얼마나 들어가 있는지 비교해 본다면 어떨까. 달리기를 하기 전과 달리기를 마친 뒤, 내 근육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근력운동을 한 뒤에 과도한 유산소 운동이 근육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어 달리기 전에 했던 근력운동이 모두 무위로 돌아간다면, 나는 끙끙 신음소리를 내며 왜 턱걸이를 하고 팔 굽혀 펴기를 했던 것일까.
그 순간 커다란 근육을 가진 헬스맨들이 떠올랐다. 근육을 키우고, 더 무거운 것을 드는 일을 즐기는 사람들. 그들이 무거운 것을 들어서 보다 큰 근육을 갖도록 만드는 동기는 무엇일까. 더 강해지고 싶은 마음? 아니면 더 커다란 몸을 갖고 싶은 욕망? 아무나 들 수 없는 무게를 들 수 있다는 사실에서 느끼는 만족감? 혹은 다른 생각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운동 시간 그 자체?
나는 달리면 풍선 바람 빠지듯 픽, 빠져버릴 근육들에 왜 바람을 넣었을까. 열심히 바람을 불어넣은 근육들이 한 시간 동안 달리면 모두 빠져버릴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난 왜 달렸을까.
사랑, 순우리말인 사랑의 어원은 한자"사량"에서 왔다는 학설이 가장 유력하다고 한다. "사량". 생각하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생각하고 생각한다는 뜻을 가진 "사량"이라는 단어를 선택해 "사랑"으로 사용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 사람들에게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고 생각하는 것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를 귀하게 여기고 아끼는 마음이나 행위도 사랑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전에, 나를 귀하게 여기고 아끼기 전에 나에 대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일, 그것이 나를 사랑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성장하는 과정에서 부정적인 경험과 긍정적인 경험을 수도 없이 겪는다. 긍정적인 경험은 수면뒤로 드러나 나의 생각과 행동을 지속적으로 강화하지만 많은 이들이 부정적인 경험은 저 밑에 묻어둔다. 방치되니 부정적인 경험은 사람이 성장할수록 더 깊은 곳에 묻힌다. 가끔이라도 들여다보지 않았던 사람은 어느 순간엔 그 부정적인 경험이 있었는지 조차 까맣게 잊어버린다. 그러나 그 부정적인 경험을 겪었던 나는 분명히 존재한다. 부정적인 경험이 빚어낸 나의 일면도 분명히 존재한다. 어쩌면 우리는 똑같은 부정적인 경험을 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를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나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나는 수면에 드러난 내가 아닌 그 밑에, 그 밑이 아주 깊은 곳이더라도 조금씩 조금씩 다가가 결국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것을 들여다보는 일은 간단하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것이다. 짧은 시간 "사량"해서 나의 부정적인 경험이 보인다면 너무나 다행이다. 아직 해저 깊은 곳에 묻히지 않았다는 뜻이니. 그러나 그것을 생각하는 일, 그 자체는 힘이 들 것이다. 보기 싫어 치워 둔 것을 헤짚어 열어보아야만 하니 말이다.
하지만 너무나 깊은 곳에 있어, 그것이 있는지 조차 알지 못한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그럼에도 결국 자기 스스로 생각하고 생각해 내야 하는 일이다.
나는 왜 열심히 근육에 바람을 넣었고, 또다시 근육에 바람을 빼었던 걸까.
2026.01.13 365개의 글 중 82번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