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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그늬 Jun 26. 2021

<한 글 자 제 목> : 푸

눈에 보이는 대로 읽으면 안 되는 사회


<한 글 자 제 목>은 각 에피소드가 한 음절의 제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돈', '눈', '총'처럼 한 글자 만으로도 통용되는 단어들보다는,

그 자체로는 많이 쓰이지 않는 글자들을 주로 골랐습니다. 

각각의 글자들로부터 흘러나온 저자의 얕고 좁은 생각들을 

독자들의 넓고 깊은 생각의 바다로 다시 흘려보낼까 합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면 종류, 특히나 라면을 어마무시하게 좋아했었다. 얼마나 라면을 좋아했던지, 크리스마스 선물로 누나들이 시중에 있는 웬만한 모든 라면을 다 낱개로 사서 준 적도 있다. 라면을 혼자 끓여먹는 것을 허락받기 위해 엄마 앞에서 가스레인지를 능숙하고 안전하게 다룬다는 사실을 계속 어필했고, 그 결과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수도 없이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성인이 된 지금도 주방 수납공간에 테트리스 게임처럼 예쁘게 나열되어 있는 수많은 봉지라면들을 보며 안정감과 만족감을 느끼곤 한다.


조끼 색깔이 신라면 같아서 이 사진을 골랐다(아무말).


내가 라면과 함께한 역사를 다 풀어내자면 책 한 권으로도 모자라겠지만, 가장 임팩트있는 사건을 하나만 꼽자면 당연히 신라면을 컵라면 큰 사이즈로 처음 접했던 다섯 살의 어느 날이다. 엄마는 읍내에서 기독교서적 및 교회에서 쓰는 물품을 판매하는 일을 하셨는데, 그다지 넓지 않은 가게에서 내가 음식 냄새를 풍기지 않으며 밥을 먹을 공간은 마땅치 않았다. 물론 엄마 손을 잡고 잠시 밖에 나가서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경우도 있었지만, 꼭 엄마가 바로 옆에 붙어있어야 뭔가를 먹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인근의 형 누나들과 어른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보호자(?)들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든든하게 느껴졌던 사람은 옆집 빵가게 민철이 형이었다. 길 건너에 있는 훼미리마트(CU편의점의 전신)에서 민철이 형은 내 얼굴보다 더 큰 빨간 뚜껑을 꼬깔모양으로 접어 나에게 라면 한 젓가락을 담아 나에게 건네주었다.


신세계였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맛이 날 수가 있지? 우리 집의 메인 봉지라면이던 <안성탕면>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또 다른 맛이었다. 씹을 틈도 주지 않고 바로 식도로 호로록 빨려 들어가는 면발, 맛있게 맵다는 게 뭔지 120% 보여주는 국물, 거기에 빨간 기름이 묻어 나오는 건더기까지.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봤더니 커다란 용기 사이즈 그리고 빨강 검정이 어우러진 강렬하고 공격적인 디자인이 합쳐져 엄청난 아우라를 풍기는....


그런데, 이거 뭐라고 읽어야 하지?


아니 내가 한글을 얼마나 일찍 깨우쳤는데, 우리말 중에 이런 자음은 없었다. 내가 모르는 어른들의 어려운 글씨체를 써서 그런 걸까? 그렇게 추측한다면 분명히 [푸라면] 아니면 [뿌라면] 둘 중 하나였다. 푸라면? 뿌라면? 흐음... 그래도 [푸라면]이라고 읽는 것이 더 맞지 싶었다. 아니, 정답은 푸라면이고 뿌라면은 매력적인 오답으로 보이지만 혹시나 그 반대일 수도 있으니깐 발음을 애매하게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겠다. 괜히 사람들 앞에서 오답을 당당하게 이야기했다간 망신을 당하고 '똘똘한 꼬맹이'의 자존심을 구길 수 있으니 말이다. 상품명을 좀 확실하게 써놓을 것이지, 사람 헷갈리게 참.


그런데 혼란은 멈추지 않고 오히려 증폭되었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대화 어디에서도 푸라면 또는 뿌라면에 대한 언급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맛있는데 아직 유명해지지 않은 걸까? 아니면 그 라면을 잘 찾지 않는, 내가 모르는 다른 이유라도 있는 걸까? 꽤 오래 고민해도 그 라면의 올바른 명칭은 알 수 없었지만, 단 하나 푸라면과 뿌라면 둘 다 오답이라는 사실만큼은 명백해졌다. 뭔가 다르게 부르는 명칭이 있는 듯했다. 자꾸만 그 치명적인 맛이 생각나서 먹고 싶었지만, 당당하게 "푸라면인가 뿌라면인가 그거 사주세요!"라고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이름을 모른다는 이유로, 아니 정확하게는 이름을 모른다는 사실을 들킬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한동안 나의 '최애' 라면을 먹을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꽤나 나중에야 내가 쩔쩔맸던 이유가 매울 신(辛)이라는 한자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사실에 대해 명쾌한 답을 얻었다는 마음보다는 오히려 의구심이 들었다. 불 화(火)나 물 수(水) 같은 한자들은 아는데, 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이런 낯선 한자를 상품 표지에 박아놓은 걸까? 신라면을 신라면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정말로 매울 신이라는 한자를 원래부터 알아서 신라면이라고 부르는 걸까? 하고 말이다(찾아보니 은 3급 한자라고 한다.).

비슷한 위기(?)는 몇 년 후에 또 한 번 찾아왔다. C H A N E L 이라고 적힌 쇼핑백을 보고서 말이다. 또래보다는 조금 늦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제는 영어 스펠링을 정확하게 안다는 자신감으로, 정직하게 [차넬]이라고 읽었다. 다행히도 마음속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샤넬은 프랑스의 고급 패션 브랜드이며, 따라서 영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읽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신라면의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와는 달리, 샤넬의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별다른 의문없이 그저 안도의 한숨만을 내쉬었다.



프랑스에는 샤넬보다도 높은 가격대의 패션 브랜드도 있다는 사실을 작년에 우연찮게 알게 되었다. 기자들 앞에서 이만희 회장이 매고 나온 노랑 넥타이 때문이다. 에르메스라는 브랜드인데, [헤르메스]라는 매력적인 오답을 곁들였다. 예나 지금이나 프랑스어에는 문외한이기에, 브랜드명과 로고를 매치시킬 때 약간의 버벅거림이 머릿속에서 발생했다. 브랜드명을 먼저 알고 난 뒤에 로고를 알게 된 것이 우습게도 참 다행이라고 느껴졌다.




3급 한자를 아는 것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가진 능력은 아니다. 프랑스어 고유명사를 보고 읽는 것도 마찬가지일 테다. 그런데 왜 나는 당당하게 푸라면인지 뿌라면인지 그거 사달라고 조르지 못했을까. 백화점 1층 명품관은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고 대형마트 1층 할인코너만 30년을 넘게 오간 우리 엄마가, 동창 모임에서 샤넬과 에르메스를 [차넬]과 [헤르메스]라고 읽을까봐 겁이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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