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씬은 조금 허무맹랑하다만, 그래도 듄이었다.
듄 pt. 2의 전반적인 흐름은 영웅서사에 대한 경고이다. 그런 점에서 원작자 허버트의 뜻을 잘 담아낸 듯하다. 구세주로 낙점된 폴은 그런 자신의 타고난 운명을 역으로 거스르길 원하지만, 주변 환경이 녹록 않다. 자 아들을 <퀴사츠 해더락>으로 증명시키기 위해 프레멘을 현혹는 제시카부터 시작해서 어느샌가 폴의 행동 하나하나를 리산 알 가입의 예언에 끼워맞추는 스틸가까지 그를 추앙한다. 주변인들은 폴을 점점 동료로서가 아닌 리산 알 가입 외치며 마디로서 맞이한다. 영웅이길 원치 않는 폴은 꿈을 통해 파멸적인 미래를 예견하며 내적 갈등을 일으키지만, 오히려 자기 자신을 메시아인 줄 모른다며 포장되어 주변은 점점 더 광신도적으로 폴을 따르기 시작하며 그는 그렇게 무앗딥이 된다.
영상미는 하나의 다큐멘터리 같았으며, 전편은 상황 설명이라면 본편은 상황에 뛰어들기 시작했다는 것. 이제는 프레멘과 하코넨의 대결 구도가 한층 더 치열하다. 재미적으로 따지자면 전작보다 뛰어나다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액션의 볼륨이 너무나도 작기 때문에 개인적으론 아쉬움이 남을 뿐이다. 영상미의 극치에 달하는 드니 빌뇌브 이름만으로도 이 문제를 상쇄하고도 남지만, 전작 아트레이데스라는 대가문이 너무나도 쉽게 몰락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황제가 가진 권력에 비해 속절없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다소 긴장감이 떨어진다. 끝 무렵 콜로세움에서 보인 임팩트에 비해 맥없이 사라지는 페이드 로타도 그렇다. 사막의 지형을 가장 잘 이해하고 활용할 줄 아는 프레멘이 당연히 홈그라운드에서 강력하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겠으나, 하코넨이 보인 위압감과 최고의 병사단이라는 사다우카는 타이틀이 무색하게도 허무맹랑하게 당하고 만다.
한 가지 더 아쉬운 점이라면 등장하는 인물들은 많지만 짧은 시간 안에 매력적으로 표현되지 않았던 것 같다. 앞서 말했듯이 소시오패스라는 살벌한 설정을 들고 등장한 로타는 카리스마에 비해 그저 지나가는 제물에 불과한 느낌이었고, 펜링은 스토리 진행상 급하게 끼워서 맞춘 느낌이다. 그에 반해 부각되는 두 캐릭터도 확인할 수 있었는데, 프레멘의 대모가 된 제시카와 독립적인 존재로 거듭나는 챠니가 있다. 대모가 된 이후로 인상이 뒤바뀌어 보일 정도로 독기를 품은 레베카 퍼거슨의 연기력은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챠니는 메시아의 구원을 바라는 수동적인 사람들과는 다른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입체적인 캐릭터처럼 보인다. 서칭 결과 원작과는 가장 다른 행보를 가지는 것이 챠니라고 하는데, 현대의 진취적인 여성상이 반영된 결과처럼 보인다. 앞으로 보일 pt. 3에서는 폴과는 다른 신념을 가지고 적대자가 되어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빠진다.
앞으로 폴은 아트레이데스 리산 알 가입에 하코넨의 손자이며 황제 가문의 공주를 맞이하고, 퀴사츠 해더락이 될 예정이다. 요즘 트렌드인 <회빙환> 장르의 주인공처럼 모든 능력을 다 갖추고 있다는 말이다. 먼치킨스럽고 시원한 전개가 이목을 끌지만 폴이라는 캐릭터에 감정이 동화되긴 어려웠다. 아트레이데스의 부흥을 위해 그저 프레멘의 결핍을 이용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고, 사람의 중시하던 아버지와는 반대되는 길을 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또 폴을 탓할 수만은 없는 것이 어머니의 등쌀과 광신도처럼 따르는 주변인들 덕에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였을 뿐이고, 그 결과 메시아라는 뽕에 취해 복수에 눈이 멀어버린 것이다. 바로 허버트가 말하는 영웅주의의 파멸적인 말로를 나타내고 있다.
(...)위대한 자는 지도자가 되려 하지 않고 '부름에 응답한다' 하셨지,
그 부름을 거절한대도
- 레토 공작이 폴에게
영웅주의 외에 프레멘의 태도에서도 종교적 교훈을 얻기도 한다. <베네 게세리트>가 수십 년간을 걸쳐 설계한 서사시에 의해 프레멘은 메시아로부터 구원받기를 기다리며 수동적인 자세를 취한다. 아라키스는 사람의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척박하고 무시무시한 곳이기 때문에 이 가혹함이 프레멘들에게는 결핍을 가져다주었다. 영웅 서사시는 그들에게 있어 단비이며, 버팀목이었을 것이다. 언젠가 '마디'가 나타나 자신들을 낙원으로 이끌어줄 것을 기대하며 버텼을 것이다. 그래서 폴에게 모든 것을 대입하여 끼워서 맞춘다. 종교에 목숨을 걸고 맹신하는 광신도처럼 말이다. 제시카가 대모가 된 이후로 폴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 가장 불온전한 사람들부터 공략하라는 말을 본다면 현대의 사이비 종교에서 교원을 포섭하는 방법으로 내면의 결핍을 파고드는 것처럼 비슷한 결을 가진다. 맹신하는 종교는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무지함으로 이끈다는 것이다.
긴 러닝타임도 감수할 만큼 화장실을 가고 싶은 마음도 참아낼 만큼 재미있었다. 방대한 내용을 빠르게 전개해야 하므로 흐름이 자연스럽지 못한 부분도 캐치할 수 있었지만, 그만큼 듄이라는 세계관이 엄청난 파급력을 가진 것이 아닐까? 척박한 사막에서 적응해 나가는 폴과 제시카가 성장하는 모습과 <샤이 훌루드>를 타고 돌진할 때의 짜릿함은 내게 꽤 잔영을 남겼다. 흔히 '듄친자'라고 불리는 이들이 벌써 pt. 3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나도 뭉게구름처럼 기대가 커져만 간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듄은 반지의 제왕 이후로 가장 괜찮은 시리즈물이 될 것 같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