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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윤 Jul 16. 2024

화끈함에 서사까지 업그레이드

조지 밀러 감독이 치밀하게 설계한 매력적인 세계관

내 기준 상반기 가장 기대작으로 뽑은 퓨리오사. 매드맥스의 세계관을 너무 좋아하는 난 비싼 영화표를 예매하는데도 스스럼없었다. 과거 조지 밀러 감독은 <분노의 도로>를 통해 관객들에게 풀악셀을 밟는 듯한 기분을 안기며 충격을 선사했다. 퓨리오사는 전작보다 직관적인 느낌이 덜하기 때문에 퇴보했다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퓨리오사라는 캐릭터를 설명하면서 전작처럼 시원시원한 액션을 같이 끌고 가기 어려운 점이 컸을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감독의 고뇌가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아무튼 전작보다는 스토리텔링 비중이 크기 때문에 퓨리오사라는 캐릭터의 내면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쉬는 시간이다. 하지만 달릴 때는 또 달려주는 영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를 보겠다.






관객들은 왜 전작과 비교해 후퇴했다고 얘기할까? 관객들은 시작부터 가슴 쫄깃한 긴장감을 선사했던 분노의 도로의 느낌을 다시 한번 느끼려 극장을 찾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번 작은 퓨리오사의 서사이기 때문에 러닝타임 내내 쭉 달리며 호방함만을 보여줄 수 없었을 것이다. 부제의 '사가saga'의 정의는 전설처럼 여겨지는 이야기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제처럼 퓨리오사가 어떻게 영웅으로 거듭나는지 미친 세상에서 왜 희망을 품게 되는지 내려져 오는 구담처럼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향으로 설정되어 있다. 전작과 가장 뚜렷한 차이로는 장별로 이야기가 나뉘어져 있고, 내레이션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다섯 단계의 시련을 온몸으로 맞이하여 퓨리오사는 성장해 나간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고 추방당했던 것처럼 퓨리오사 또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다

퓨리오사의 고향 풍요의 땅은 자연물이 남아있는 유일한 낙원이라고 할 수 있다. 초반부 어린 퓨리오사가 무리하게 복숭아를 따려다 무법자들에게 겁탈당하며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이때 카메라에 잡히는 복숭아는 굉장히 중요한 듯한 구도를 보이며 마치 금단의 열매 '선악과'처럼 상징성을 띤다. 이 일을 계기로 그녀는 모든 사건의 원흉인 디멘투스의 손아귀에 넘겨지고, 감금 생활이 이어지다 임모탄에 눈에 들어 시타델로 팔려 간다. 와중 호시탐탐 고향으로 도망칠 기회를 노리는 과정에서 근위대장 잭을 만나게 되고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는 사이가 되지만, 무법지대에서 희망이란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잭은 퓨리오사의 든든한 멘토가 되었으나 탈주를 돕다 디멘투스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고, 그녀는 자신의 고향이 그려진 왼팔을 잃는다.






안야 테일러-조이의 큰 눈이 퓨리오사의 감정을 더욱 극대화한다

눈치 빠른 관객이라면 결말로 치달을수록 퓨리오사가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할 운명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퓨리오사에게 있어서 왼팔을 잃었다는 것은 고향으로 돌아갈 지도(동력)를 잃었다는 의미이며, 시사점은 본인이 있어야 할 위치를 비로소 깨닫는 장치가 된다. 어머니의 죽음에 이은 큰 두 번째 좌절감을 맛본 퓨리오사는 오히려 결의에 가득 찬 반전의 눈빛을 보이는데,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시타델. 지금 이곳에서 희망을 갈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분노의 도로에서부터 그녀가 착용하고 있는 의수에 대한 궁금증이 해결됨과 동시에 결의를 확인할 수 있는 명장면이다. 자연스러운 인간의 몸이 아닌 무법지대다운 쇠붙이의 팔을 착용한 그녀의 모습은 자신의 자리가 시타델임을 직감한다. 자기 왼팔을 직접 떨쳐내고 디멘투스로부터 도망친 직후 풍요의 땅으로 도망칠 수 있었음에도 반대로 40일 전쟁에 참여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매몰차게 부는 폭풍 속에서도 자신만의 유토피아(희망)를 찾아 나서겠다는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디멘투스라는 그림자가 있기에 퓨리오사가 입체적으로 만들어진다

기나긴 추격을 끝으로 디멘투스와의 대담을 한 퓨리오사는 달라져 있었다. 그의 회유에도 복수심에 불타던 눈빛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퓨리오사의 내면에는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고, 디멘투스가 선사한 좌절들은 오히려 퓨리오사가 성장할 기회가 되었다. '리틀 D'라는 별칭을 지어줄 만큼 자신과 닮았다고 누누이 말해온 디멘투스는 자신처럼 증오로 가득 찬 인간이 될 거라 예상했지만, 둘은 다른 결과를 초래한다. 자그마한 희망도 품기 어려운 오탁악세(五濁惡世)의 세상에서 퓨리오사는 어머니의 씨앗을 전해 희망을 이어가는 유일무이한 캐릭터가 되었고, 교묘하고 허튼소리들로 바이크 군단을 이끄는 디멘투스의 모습은 그저 절망과 분노로 가득 찬 속이 빈 강정이었다. 둘은 확실하게 대조되는 캐릭터다.


후반부로 갈수록 디멘투스에게 너무 큰 비중을 실은 것이 아닌가란 의문에 사로잡히기도 했지만, 서른 줄도 채 되지 않는 퓨리오사의 대사량에 비해 촉새처럼 말 많은 그가 완전히 대조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퓨리오사가 많은 대사가 없었더라도 존재감을 뽐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의문점으로 마지막 디멘투스와의 대면에서 화려한 액션신 없이 대화(서사)만으로도 그녀가 깨달음을 얻는 모습에 납득이 갔다. 그리고 주관적인 감상 포인트지만, 크리스 헴스워스가 연기한 디멘투스는 이상하게도 크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대부분의 관객은 그가 토르의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좋은 연기를 펼쳤다며 호평 일색 하지만, 취향 차이인 것일지 카리스마가 있다기엔 장난스러운 느낌만 보이고 임팩트가 부족했다. 반대로 비호감 이미지를 너무 잘 표현해냈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받아들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3장의 롱테이크 추격신은 퓨리오사의 메인디쉬라고 해도 될 만큼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봐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확신한다. 탈출을 노리던 퓨리오사가 옥토보스 갱단과 전투를 벌이면서 끈질긴 전투 트럭 방어전이 시작되는데, 점점 격렬해지는 전투가 손에 땀을 쥐며 몰입하게 만든다. 여기서 침착함을 발휘하여 공을 세운 퓨리오사는 이후 잭을 보조하게 되는 유의미한 광경이라고 할 수 있는데, 침착함과 냉정함을 오가며 적을 하나둘씩 제거해 나가는 퓨리오사의 모습에 동화되어 침을 꿀떡꿀떡 삼키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 추격신은 분노의 도로보다도 더욱 발전된 연출을 보이고 있으며, 모든 액션신을 통틀어 가장 발군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쯤 되면 끝날 법도 한데라는 생각이 들 때쯤 한 번 더 치고 나가면서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하게 만드는 조지 밀러 감독의 역량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추가적으로 옥토보스라는 개성 넘치는 빌런이 글라이더를 타며 새롭게 공중전까지 펼치면서 신선함을 내보이는데, 이렇게 상상만 해오던 액션신들이 구현되어 새로운 긴장감을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모든 것을 압도하는 전투 트럭 방어전은 말 그대로 끝내준다고 표현하고 싶다.






사실 퓨리오사의 뭔가 더 대단한 서사를 기대하고 영화관을 찾았으나, 딱히 엄청난 새로운 사실도 없었다. 하지만, 이런 애매한 기분을 떨쳐내기에는 매드맥스의 세계관이 여전히 매력적이라는 거다. 서사가 부실하더라도 내게는 충분히 소득이 있던 시간이었다. 왜 시타델-가스 타운-무기 농장이 서로 교류하고 음해하는지 아포칼립스 시대의 광기가 디테일하게 묘사되어 있고, 깜짝 등장하는 맥스 그리고 개조된 온갖 탈것들을 보며 팬들은 조지 밀러 감독이 치밀하게 설계한 세계관에 빠져들며 재미를 느낄 수밖에 없다. 여전히 매력적인 이 설정들은 애매한 시선도 달리하게 만든다. 분노의 도로 이후 9년 만에 울리는 쩌렁쩌렁한 배기음이 반갑기까지 하다. 야만과 폭력을 대신하는 이 굉음은 사막을 가로지르는 자들의 소리인지 관객의 환호성인지 헷갈릴 정도로 오버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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